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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서

눈 내리는 날이면…

눈 내리는 날이면…

눈 내리는 날이면…
“엄마, 눈이 내렸어요.”

“그래, 창문 오래 열어 놓지 마라. 감기 걸릴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자 어릴 적 내게 하시던 그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1급 소아마비 장애인인 내가 어린시절 눈이 펑펑 쏟아져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하루종일 창문에 매달려 지낼 때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뇌졸중으로 시력을 잃으신 어머니의 뇌리에는 어릴 적 내 모습이 눈에 선하신가 보다. 눈을 한 세숫대야씩 퍼다가 집안 화분 하나 하나에 소복소복 말없이 담으시던 어머니는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3년전 부모 곁을 떠나 서울 고덕동에서 같은 장애여성 4명과 함께 살게 되면서 ‘어머니의 마음’ 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고덕동에서 첫 번째 맞은 겨울, 눈이 유난히도 펑펑 내리던 밤이었다. 네 명이 식사준비를 하다가 막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언니들, 우리 나가자.”



“뭐? 어떻게 나가니? 휠체어로 나가려면 힘들어.”

우리는 순간 멈칫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판을 징검다리삼아 대문 밖까지 나가고 있었다. 어린시절 아이들이 눈 속에서 뒹굴며 놀던 것을 부러워했는데 그 눈 속에 내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눈을 뭉쳐 던지고 머리와 얼굴에 눈을 잔뜩 뒤집어썼다. 우린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장애인 여동생들은 눈이 내리면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얼음판에 넘어져 무릎에 피를 흘리고 들어오거나 어딘가를 다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눈이 오면 아예 외출을 포기할 때가 많다.

작년 11월에 결혼한 동생 한 명은 양쪽 다리에 힘이 없어 유난히도 잘 넘어졌다. 눈 내린 날은 어김없이 “언니, 나 또 넘어졌어, 아파”하며 들어왔다. 그 아이는 대구가 고향이라 눈 내릴 때 운전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 퇴근길에 눈이 내리면 무서워서 운전을 못하겠다고 징징거리며 전화를 해 내 속을 태우기도 했다.

눈 내리는 날에는 오랜 친구들이 생각나고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면 또 ‘감기 조심하라’고 하시겠지만 그 한마디가 지친 내 마음에 힘을 주는 것임을 새록새록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날에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어 전화를 걸게 되는가 보다.

나도 우리 엄마와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남에게 힘을 줄 수 있을지 모르니 눈오는 날이면 가까운 이들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



주간동아 2000.02.10 221호 (p12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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