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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이창동의 ‘박하사탕’

그는 왜 박하사탕을 모았을까?

그는 왜 박하사탕을 모았을까?

그는 왜 박하사탕을 모았을까?
지금은 배우라기보다 스크린쿼터 감시단장으로, 한국 영화 제작자로 더 바쁜 명계남씨는 이런 저런 자리에 설 때마다 자신이 제작한 ‘박하사탕’(감독 이창동)이 “대표적인 한국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자신한다”고 자랑했었다. 그의 발언은 언제나 스크린쿼터 사수 의지 갈파에 이어진 것이었기에 ‘박하사탕’에 대한 기대는 다른 한국 영화에 대한 것과 사뭇 달랐다. 그래서 ‘박하사탕’은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99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계남씨는 ‘박하사탕’을 자랑할 만했다. 할리우드 시스템의 복사판으로 귀결돼 가는 한국 영화계에서 ‘박하사탕’은 나름대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타를 배제한 대신 이야기꾼으로서 감독의 스타일을 성실하게 밀고나간다는 것이다.

소설가에서 영화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이창동감독은 ‘박하사탕’을 1999년 현재에서 1994년, 1987년, 1984년, 1980년, 1979년까지 역으로 끌고간다. 그것은 1999년 오늘, 옛 친구들의 야유회에 술에 취해 불청객으로 참석한 영호라는 남자의 삶을 40세에서 20세까지 되짚어보는 것이다. 관객들은 지금 영호가 직업도 없고 증권회사와 사채업자에게 가진 돈을 모두 뜯겼으며 부인에게 쫓겨난 상황이라는 것과, 그런 그가 왜 어울리지 않게 새 양복을 입었으며, 왜 박하사탕을 모았는지, 그리고 왜 야유회에 찾아왔는지를 차츰 차츰 알게 된다.

1979년 영호는 구로공단에 있었다. 이어 그는 군인으로 광주에 있었으며, 한때 형사였고 90년대 초엔 사업과 주식투자로 돈도 꽤 벌었다. 박하사탕은 그 20년 동안 유일하게 변질되지 않은 첫사랑의 싸한 맛이다. 과거로 거슬러가는 감독의 이야기 방식은 현재라는 시간이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과거의 연장일 뿐이라는 것, 현재의 모든 것이 과거를 말해주는 증거물일 뿐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개인이나 사회나 마찬가지다. 감독은 1999년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여전히’ 본다. 동시에 영호의 급작스런 변화는 인간 내면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박하사탕’은 이창동감독과 명계남제작자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인 설경구라는 배우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첫사랑에 겨운 행복한 눈물과 중산층에 막 진입한 남자의 징그러운 표정, 모든 것을 잃은 40대의 절망을 한 얼굴에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연극배우에서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단역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해 영화 데뷔 초 ‘한석규처럼 하라’는 감독들의 요구에 지독하게 시달렸다는 그는 이미 한석규 콤플렉스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월1일 개봉.



주간동아 216호 (p9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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