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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창호 인터뷰

“바둑은 9단, 연애는 9급”

5년 연속 MVP의 바둑과 사랑… “예쁘고 발랄한 여자와 연애결혼하고 싶어”

“바둑은 9단, 연애는 9급”

95년 12월 31일자 ‘워싱톤 포스트‘지에는 지난 1000년간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과 사건들을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선정한 기사가 발표된 적이 있다.

가장 주목된 ‘천년(Millenium)의 인물‘로는 몽골의 징기즈칸이 선정됐다. 12세기 10만 병사를 이끌고 중앙아시아와 유럽대륙을 휩쓴 그의 정복전쟁은 인종의 대대적인 이동과 기술의 이동을 가져왔고, 이는 유럽역사의 기본적인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세계를 뒤바꾼 것이 선정의 이유였다.

단언하건데, 이창호 9단은 ‘반상(盤上)의 징기즈칸‘이다. 이제 고작 스물다섯살인 이 바둑계의 정복자는 20세기말에 혜성처럼 나타나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하고 있다. 거칠 것 없는 그의 말발굽 아래 세계의 내로라 하는 고수들이 이미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한 100수 이상은 내다보지요”

99년 12월 23일. 바둑담당 기자들이 한국기원에 모여 투표로 결정한 99바둑문화상 수상자 선정에서 이창호 9단은 ‘당연히‘ 만장일치로 MVP에 뽑혔다. 95년 이래 5년 연속이다. 그의 목에 방울을 달 또다른 이창호가 새 천년에 나타나지 않는 한 21세기도 역시 이창호의 세상으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새 천년을 맞는 이 정복자의 심경을 몇가지 들어보았다.



축하합니다. 5년 연속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만큼 독주했다는 얘기인데 바둑팬의 입장에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나친 일인독주는 재미없는 일인데요(웃음)…

”그런가요? 죄송합니다(웃음). 제 실력이라기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승부세계에는 영원한 승자가 없으므로 저도 언젠가 내리막길을 걸을 날이 오겠지요.”

새 천년 바둑계의 화두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9단의 목에 방울을 달 기사가 과연 언제 나타나느냐.... 눈에 띄는 후배가 있습니까.

”…….”(전에는 그래도 10여년 가까이 나이차가 나는 이세돌이나 이회성 2단 같은 어린 기사들을 더러 대더니 이번엔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덧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선배인 유창혁 9단이 장가를 들자 몹시 부러워했다는 후문인데요, 결혼계획이 있습니까? 이9단이야말로 일등 신랑감이니만큼 대한민국 여성 팬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나이도 있고 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가능하다면 연애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강태공처럼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9단의 기풍으로 미루어보면 오히려 중매결혼 쪽일 것 같은데….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합니까. 전에 어떤 기사를 보니 탤런트 고소영씨 같은 타입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그런 기사가 났었나요? 제가 별로 말이 없는 편이므로 발랄한 성격에 저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여자면 좋을 것 같습니다.(매우 수줍은 표정으로) 거기에다 얼굴도 예쁘면 금상첨화겠지요.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지만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승부사의 세계란 참으로 고독하거든요. 선후배의 소개로 다섯 번 정도 소개팅을 가졌는데 뜻대고 잘 안되더군요. 한 번은 괜찮은 상대를 만났지만 두세 번 만나고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바둑은 9단이지만 여자에 관해선 9급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99년 이9단의 공식 상금수입을 보니까 8억 12000만원에 달하더군요. 바둑계로 치면 빌 게이츠 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이용하더군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공인으로서 불편한 점이 적지 않을텐데….

”대국시간에 한 시간 지각하면 기권패로 처리됩니다. 그 점에서 지하철은 확실한 보증수표지요. 제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그런 뜻도 있고… 무엇보다 제가 사업하는 사람도 아니므로 특별히 자가운전에 대한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때로 운전을 배웠으면 하는 생각도 있긴 하지만 제 성격상 바둑 이외의 것은 처음 시작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꼭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 국한되는 일은 아닙니다만, 저도 인간인데 어떤 경우에는 팬들이 아는 체 말아주셨으면 할 상황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제 바람과는 달리 사인을 부탁한다든지 아는 체 해 오실 때는 참으로 난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 바둑이 좋고 저를 아껴주시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것은 바둑 두는 모든 팬들의 궁금사항인데, 수읽기를 할 때 보통 몇 수 앞까지 내다보나요.

”뻔한 외길 장면이라면, 프로라면 누구나 100여 수는 볼 것입니다. 저도 물론 100수 정도는 내다봅니다만 모든 경우에 이런 수읽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한 수 앞을 못보는 수도 있어 바둑을 망치기도 하지요. 이건 비밀인데… 제가 수읽기하는 방법은, 보통 열 가지 정도의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하나 하나씩 수읽기를 해나갑니다. 20~30수 정도 읽다가 모양이 아니다 싶으면 버리고 다른 수에 대해 읽기 시작합니다. 그러다보면 한두 가지로 좁혀지게 되는데 이때는 100수 이상 읽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려운 것은 이렇게 수를 읽는 것보다는 그 한두 가지의 수를 놓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입니다. 이런 순간은 참으로 고통스럽죠.”

은퇴한 선동렬선수가 일본야구는 ‘미시적 야구‘라고 평한 대목이 있더군요. 투수의 미세한 버릇, 표정 하나까지 잡아내 공략하는 그들 야구를 미처 몰라 첫해에 죽을 쒔다고요. 이창호 9단이야 말로 표정없는 ‘돌부처‘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포커 페이스‘의 대명사이기도 한데, 야구를 해도 뛰어났을 것 같습니다.

”음치에게 노래에 소질이 있을 것이란 칭찬을 하는 것과 같은 격이군요. 탁구를 즐겨하다 요즘은 테니스로 체력을 다지고 있긴 하지만, 전 운동소질이 매우 없는 축입니다. 그리고 다들 제가 바둑판 앞에서 무표정하다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잘 살펴보면 그 변화를 금방 알아차릴 겁니다. 그 이상은 비밀입니다. 하하.”

그렇다면 이9단의 대국장에 몰래카메라를 갖다 놓고 표정변화부터 연구하는 것이 공략의 첫걸음이겠군요. 하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창호, 군화끈도 못매나?”

훈련병시절 느림보…열받은 조교, 군화에 똑딱단추 달아줘


바둑에 관한 한 이창호 9단은 불멸의 거장이다. 반상에선 그토록 번뜩이고 날렵한 비마(飛馬))행마를 하는 그도 바둑판을 한 발짝만 벗어나면 행마가 빈삼각에 우형 투성이(?)다. 하느님은 한 사람에게 절대로 두 가지 이상의 뛰어난 재능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을 입증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이창호 9단이 공익근무요원 명령을 받고 한달간 병영훈련소에 들어갔을 때의 에피소드 하나.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화, 이른바 '워커'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창호 9단이 세계에서 최초로 군화끈 대신 똑딱단추가 달린 군화를 신은 주인공이란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세상에 똑딱단추 군화가 어디 있느냐고? 그 속사정은 이렇다.

이창호의 걸음걸이는, 한없이 기다리는 그의 기풍처럼 어릴 때부터 느려터진 팔자걸음이었다. 걸음걸이뿐 아니라 매사가 느릿느릿, 어릿어릿 행동이 굼뜬 편이다. 이런 사람이 훈련소에 들어갔으니 조교가 오죽 열불났을까. 워낙 국보급 존재이다보니 두들겨 팰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연병장 선착순 집합"만 했다 하면 꼭 머리숫자 하나가 모자란다. 번번히 군화끈을 제대로 못매 처지는 이창호 훈병이다.

열받은 조교 "이창호 훈병은 사회에서 구두도 한번 안신어봤나?"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이창호, "…예, … 운동화만 신어봤는데요."

이창호가 작은 엄마라고 부르는 조훈현 9단 부인 정미화여사의 말에 따르면 내제자로 데리고 있던 시절엔 찍찍이 운동화만 신게 했다는 것이다. 운동화 끈이 한번 풀어지면 며칠이고 풀린 채로 지렁이 매달고 다니듯 신고 다녔기 때문이다. 머리를 혼자 감는 것은 물론 세수조차 제 손으로 제대로 못해 정여사는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고 1, 2년간은 손수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긴 하지만 그 나이면 누구나 세면 정도는 할 줄 아는 게 정상인데, 아마도 워낙 어린 나이에 부모 품을 떠나왔던 탓도 있겠지만 이창호는 선천적으로 이런 것에 둔한 체질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이창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번갈아가며 상경해 창호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본 영향도 있었으리라.

어쨌든 이쯤 되면 목마른 놈이 샘 파는 법. 조교가 궁리 끝에 밤새 바느질을 해 만들어낸 것이 바로 똑딱단추 군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똑딱단추 군화는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주간동아 216호 (p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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