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6

2000.01.06

실업통계는 요술?

통계실업은 97만명, 체감 실업은 150만명… ‘숨겨진 실업찾기’ 머리싸움

  • 입력2006-05-25 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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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통계는 요술?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 디즈레일리가 남긴 비아냥거림이다. 통계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주고 결정적 증거를 들이대는 힘을 갖고 있지만 통계의 마술에 넋을 잃고 있다 보면 명백한 사실 왜곡도 놓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통계가 갖는 이런 함정을 염두에 두고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11월 실업률 통계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IMF 위기로 인해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한 지 거의 2년만에 처음으로 실업자수가 100만명 이하로 떨어지고 실업률이 4.4%를 기록했다는 정부의 발표는 미안하지만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김대중대통령도 얼마 전 실업자가 IMF 사태 이후 처음으로 97만여명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구직 단념자·불완전 취업자 빠져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실업자는 이른바 구직 단념자와 불완전 취업자를 제외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실업자수는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정부가 11월 실업 통계를 발표하면서 끼워넣기 식으로 발표한 구직 단념자수 19만8000여명만을 더하더라도 실업자 ‘100만명 이하’ 라는 통계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공식 실업자수가 체감 실업지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것이다.



    구직 단념자 또는 실망실업자(discouraged worker)는 일자리를 갖기를 원하지만 노동시장 상황을 보고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아 아예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을 말한다. 엄밀하게 통계적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즉시라도 취업할 의사가 있어야 하고, 육아나 가정 환경 등 개인적 이유로 인해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디까지가 구직 단념자이고 어디까지가 자발적 실업자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완전 취업자(under employment) 역시 파트타임 취업자 등 ‘비자발적’ 이유로 전일 근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중 구직 활동을 한 사람 등을 말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국제적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구직 단념자들을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고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고 있다. 국제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도 98년부터 이와 관련한 조사는 벌이고 있지만 상세한 공식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한국노동연구원 같은 국책 연구기관에도 구직 단념자에 관한 통계만은 가려진 채 제공되어 왔다. 정부는 앞으로 구직 단념자도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시행에 들어갔지만 세부 자료까지 공개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정부가 아예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을 발표한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한국노총 등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구직 단념자 19만8000명’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최소한 50만명은 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구직 의사를 갖고 있는지 여부 등 실업 관련 통계 지표들은 매달 한번씩 3만개의 표본 가구를 통한 통계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들 가구의 구성원들을 상대로 면접 조사를 벌여 구직 의사가 있는지, 실제로 구직 활동을 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놀고먹는 데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구직 의사가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고 직장을 알아보러 다니면서도 구직 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답변하는 사람들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통계상 허점을 방지하기 위해 면접원들을 교육시키고 머리를 짜내고 있지만 아직 이러한 면접 조사 방식의 맹점을 완전히 메워줄 방법은 별로 없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숨겨진 실업’을 찾아내거나 감추기 위한 치열한 머리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구직을 아예 포기한 구직 단념자들이 20만명에 이른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조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통계적 환상’을 즐기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강순희박사는 “구직 단념자가 많다는 것은 노동시장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는 소득의 불균형을 잉태할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고 말했다.

    실업률 통계를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으로 발표할 것인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할 것인지도 늘 논란의 대상이다. 당장 실업자가 10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정부의 발표(ILO 기준)도 OECD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거짓임이 드러난다. 조사기간 이전 1주일당 한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하는 ILO 기준과 달리 OECD 기준을 적용할 경우 실업자수는 103만7000명으로 늘어난다. ILO 기준 실업자수보다 6만6000명, 실업률보다는 0.3%나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ILO나 OECD 기준에 의한 실업률을 함께 발표하는 것은 물론 실업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실업률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업률 통계가 다양한 만큼 실업대책 또한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실업률 통계는 무려 여섯 가지 형태로 발표된다. 노동력 인구 중 15주 이상의 장기실업자 비율을 나타내는 장기 실업률, 실업자에 구직 단념자를 더한 사람들의 비율, 또는 여기에다 기타 한계실업자 비율까지 더한 수치 등 각각의 실업률 통계는 상황에 맞는 실업대책을 수립하는 근거 자료가 된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OECD 기준 실업 통계를 ‘보조 지표’ 형태로 함께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감사 등 공식석상에서는 OECD 기준 실업률을 98년 1월부터 발표한다고 해놓고 이보다 5개월 늦은 6월에 들어서야 OECD 기준 실업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눈치를 보다가 실업률이 낮아지기 시작하는 시점을 잡아 OECD 기준 수치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통계 환상’ 즐기다 큰코다칠 수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통계와 현실, 지표상의 진실과 거리의 진실을 일치시키는 작업은 아직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강순희박사는 “정부가 실업 관련 통계를 악의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한 조사를 위한 인프라가 아직 취약한 상황이다 ”고 지적했다. 또한 조사해 놓은 통계를 충분히 다듬은 다음에 공표하는 것까지는 이해하더라도 일단 조사된 정보는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최대열홍보국장도 “정부의 실업대책은 공공근로사업 등 양적인 측면에 치중하는 것 같다. 어차피 고실업 시대가 장기화될 것이 분명한 마당에 이제 질적인 실업대책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계는 진실인가 허상인가. 통계가 거짓말이나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한 ‘첨단 거짓말’이라는 디즈레일리의 독설을 무색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통계 선진국으로 가는 방법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 출발점은 실업 통계와 같은 ‘민감성 지표’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지금은 디즈레일리 시대와 같은 ‘주판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구직 단념자 통계 안하나 못하나

    정부 공개 거부`… “신뢰성 저하 인정하는 꼴”


    ‘통계 수치 하나를 놓고 소송을 벌인다?’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같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업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화여대 조순경교수(여성학)는 오는 2월 자신 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의 판결 하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 판결 여부에 따라서 우리나 라 실업 통계가 갖고 있는 ‘숫자의 비밀’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교수는 통계청이 실시한 경제활동 인구조사(97년1월~99년3월)의 원자료(raw data)를 공개할 것을 요 구하는 정보공개 청구를 냈다가 거부당하자 지난 6월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통계청이 조 교수의 요구사항 중 일부만 공개하고 끝내 공개하기를 거부한 핵심 자료들은 실업률 조사에 참가한 대 상자들의 응답 사항 중 △비경제 활동 인구의 취업 가능성 △구직을 하지 않은 이유 △지난 6개월 또는 1년간 구직 여부 △1년 이내 구직 의사 여부 등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구직 단념자 통계와 관련된 사항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구직 단념자에 관한 통계를 발표하 는 것 자체를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물론 정부의 논리는 통계 결과나 원자료를 공개했을 때 이를 특정 이익 단체에서 자의적으로 활용하면 서 정책 혼란을 유발할지 모른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법적 근거도 없는 것은 아니다. 통계법 시행령 16 조는 ‘통계 결과의 신뢰성이 저하되어 통계 자료의 이용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통 계 결과는 공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정부가 공개를 거부한 자료들 이 ‘신뢰성이 저하된’ 자료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미 통계청이 2000 년부터는 구직 단념자 통계를 발표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이들과 관련한 통 계 수치들이 ‘비밀 해제’의 운명을 맞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단순한 최종 통계를 발표하는 것만은 의미가 없으며 구직의 유형이나 구직 의사 등 에 관한 세부 정보를 알 수 있을 때만 이에 맞는 실업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신뢰성이 나 사회적 혼란 등의 이유를 들어 특정한 분야의 통계 수치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통계 후진 국’이라는 불명예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길 수밖에 없다. 조순경교수는 “만약 조사 과정에서의 신뢰도 문제가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면 이는 정부가 직 무유기를 범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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