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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담당 임원들의 명암

재무도사들 승천할까 추락할까

재계 인사철 앞두고 관심…IMF 사태 땐 저승사자, 새 밀레니엄엔?

재무도사들 승천할까 추락할까



최근 12월 셋째주로 예정된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전면 개편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올해 그룹 전체로 6조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에서 이학수실장이 이끄는 구조조정본부 체제의 유지-강화보다는 전면 개편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의외의 일이라는 게 재계의 분위기.

현재까지 삼성그룹 안팎에서 나돌고 있는 구조조정본부 개편의 핵심 내용은 기획 라인의 전진 배치. 특히 올 연말 스탠퍼드대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는 지승림 전 구조조정본부기획팀장(부사장)은 어떤 식으로든 중용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반면 재무팀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팀 입지 약화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은 부채비율 200% 목표를 무난히 달성, 상대적으로 재무팀에 힘을 실어줄 필요성이 감소한 데다 재무팀의 기아자동차 인수 반대 및 삼성자동차 처리 과정의 미숙함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잘 알려진 대로 삼성은 작년 말 재무팀의 반대로 기아자동차 국제입찰 과정에서 막판에 응찰을 포기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자동차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면서 기아자동차는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올 6월 말 발표한,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를 위한 이건희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 출연 계획도 이회장의 장남 이재용씨에 대한 편법 증여 의혹으로 번져 오히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는 등 재무팀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삼성 일각에서는 “당시 지승림부사장 등이 주장했던 대로 기아를 인수하고 대신 이건희회장이 삼성자동차 정상화를 위해 1조원의 사재를 출연했더라면 자동차 사업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구체적인 인사 내용이야 실제 뚜껑이 열려봐야 알겠지만 삼성 안팎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삼성 내에서 재무파트의 위상에 변화 조짐이 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의 관리-재무파트는 93년 이건희회장이 ‘신경영’ 선언과 함께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신바람을 낼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잘하는 ‘큰 관리’를 하라”고 주문하면서 그 위상이 위축됐으나 IMF 체제의 시작과 함께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다시 강화됐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들은 고위 임원들을 기획통이나 재무통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한다. 이학수본부장만 해도 삼성화재 대표이사 시절 삼성화재의 위상을 올려놓는 등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업적이 많은 마당에 아직까지 재무통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재계에서는 설사 삼성 재무팀의 위상에 실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삼성 재무담당 임원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IMF 사태 직후 시장금리가 30%까지 치솟는 상황에도 “삼성에서는 미리 수조원의 현금을 비축해 놓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겠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최근 재계에서 삼성 재무팀을 특히 부러워하는 곳은 대우그룹 재무팀. 대우 주력 계열사의 한 임원은 “최근 대우 계열사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특별감리에 착수하기 위한 전단계로 예비조사를 진행중이어서 재무-회계담당 임원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임원은 이어 “최악의 경우 대우 재무담당 임원들은 부실경영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김우중전회장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반적으로 재무담당 임원은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경영 실적을 관리할 뿐 아니라 자금 조달과 기업회계까지 담당하는 등 기업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한마디로 기업의 ‘돈줄’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서는 기업가치 극대화가 경영의 한 목표로 대두되면서 투자자관리(IR)도 이들의 업무로 추가되고 있다.

재무담당 임원이 한 그룹이나 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룹에 따라 또 그룹 내에서도 계열 기업에 따라, 그리고 시기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규 사업을 검토하고 이를 추진하는 전략-기획파트의 목소리가 강했던 과거 고도성장 시대와 달리 IMF 체제 이후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무담당 임원들의 입지가 넓어진 것도 공통된 흐름이라고 할 만하다.

재무담당 임원들은 IMF 이후 은행은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으나 국세청쪽은 여전히 신경쓰이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특히 최근 들어 국세청이 세수 확보를 위해 조사국을 강화하면서 국세청의 눈치를 더 살필 수밖에 없게 됐다. 최근 국세청 내에서 삼성전자 C부사장을 두고 ‘국세청 직원이 상을 당하면 국세청 직원보다 먼저 알고 상가에 나타나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무담당 임원의 역할이 막중한 만큼 이 자리에는 당연히 그룹총수 또는 최고경영자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 임명될 수밖에 없다. 특히 그룹총수를 직접 보좌하는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재무담당 임원은 그룹 내 재무통 가운데 가장 우수한 인재들 중에서도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 선발된다. 당연히 다른 임원에 비해 승진도 빠르다.

그러나 승진이 빠르고 총수의 신임이 두터운 만큼 재무담당 임원들은 총수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경력 20년의 한 공인회계사는 “그동안 우리나라 일부 기업들의 재무담당 임원들은 총수의 비자금 조성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고, 92년 현대중공업 비자금사건 당시 구속된 박세용회장의 경우에서 보듯 총수와 함께 구속된 경우도 많았다”면서 “특히 IMF 사태 이후 워크아웃 대상 기업 임직원들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재산 추적 과정에 재무담당 임원들이 집중적인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룹총수의 눈과 귀를 가림으로써 회사를 파탄으로 이르게 하는 것도 재무담당 임원들이라는 지적도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작년 초 다른 회계법인이 외부감사를 맡았던 ㈜대농을 감사하면서 살펴보니 재고자산이 1000억원이라고 장부에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공장에 내려가서 실사를 해보니 그만한 재고를 쌓아둘 만한 장소도 없어 한눈에 회계분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면서 “이는 재무담당 임원들이 박용학회장의 눈과 귀를 가린 결과였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나중에 박용학회장이 이를 알고 ‘전문경영인들을 너무 믿은 내 잘못’이라고 탄식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외국 기업 관계자들도 한국 기업 재무담당 임원들의 이런 행태를 모를 리 없다.

오랫동안 우리 기업들의 국제거래를 자문한 법무법인 태평양 오양호변호사는 “외국 기업들이 우리 기업에 지분 참여를 하는 경우 외국 기업쪽에서 요구하는 자리는 대부분 최고재무담당자(CFO)”라면서 “이는 복잡한 경영에 간여하기보다는 ‘돈줄’을 확실히 장악해 우리 경영진들이 회사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게 감시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LG그룹이 일찍부터 전자 화학 등 주력 계열사 내에 CFO를 두고 대표이사를 보좌하도록 한 것은 의미있는 일로 평가된다. 현재 LG전자의 CFO는 정병철총괄사장이 겸하고 있고, LG화학은 김갑렬부사장이 CFO를 맡고 있다.

그러나 LG그룹의 CFO들도 과연 그룹총수로부터 자율성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이들이 여전히 그룹총수에 의해 임명되기 때문에 임명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인식.

결국 재무담당 임원이 오너 경영자의 ‘경리직원’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게 재무담당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 기업의 경우처럼 소액주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외이사 등이 포함된 독립적인 이사회에서 CFO를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는 김대중정부가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김대중정부의 재벌개혁 성패에 따라 재무담당 임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주간동아 213호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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