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3

1999.12.16

DJ의 핫바지라도 모셔와라

기업들 ‘방패막이’용 줄찾기 혈안… 대외담당 임원 호남출신 대거 영입

  • 입력2007-05-02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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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대통령의 처조카로 더 잘 알려진 예금보험공사 이형택전무는 최근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신동아그룹의 최순영회장 구명 로비 의혹의 중심에 있는 박시언 전 신동아그룹부회장의 경우처럼 자신도 하마터면 엄청난 의혹의 대상이 될 뻔했기 때문이다.

    얘기는 작년 하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6월 자신이 근무하던 동화은행이 퇴출당하자 집에서 쉬고 있던 그에게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가 그럴 듯한 제의를 해왔다. 구체적인 직책은 거론하지 않은 채 한진그룹에 와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이전무는 이런 제의를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과 상의했고, 민정비서관실은 “말되 안되는 소리” 라며 펄쩍 뛰었다. 대통령 친인척이 민간 기업에 들어가면 그 자체로 오해의 소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이전무는 결국 한진행을 포기하고 재정경제부의 ‘배려’로 예금보험공사에 전무로 입성했다.

    이전무가 자신을 영입하려는 한진의 의도를 어렴풋이 깨달은 것은 올 6월말 한진그룹에 대한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가 전격 실시됐을 때였다. 바로 이런 사태에 대비해 자신을 ‘방패막이’로 이용하려 한 게 아닌가 생각됐던 것이다. 이전무는 “만약 당시 한진에 들어갔다면 한진 세무조사 및 조양호회장 구속 이후 대통령 친인척이 한진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의혹의 대상이 됐을 것이고, 결국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기업들이 유사시 ‘방패막이’로 영입을 시도하는 것은 대통령 친인척만이 아니다. 김대통령 및 여권 핵심 인사들과 연이 닿는 인사들도 그 대상이다. 최근 신동아그룹 최순영전회장 구명 로비 의혹의 중심 인물로 떠오른 박시언씨 역시 80년대 초반 김대통령의 미국망명시절 김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고 얘기하고 다닌 게 최순영전회장이 그를 부회장으로 영입한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청와대 관계자들은 박씨에 대한 김대통령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고 말한다.

    스티븐 솔라즈 전 미국하원의원이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우리 기업들의 영입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가 김대통령의 미국망명시절부터 친분을 쌓은 인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국제문제 컨설팅 회사인 솔라즈사 회장인 그는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삼성자동차의 국제담당 고문으로 위촉된 데 이어 작년 7월에는 김대통령과 신낙균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을 만나 리츠칼튼 호텔에 카지노장을 신규 허가해 달라는 로비를 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자동차가 그를 고문으로 영입한 것도 ‘로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이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과 관련, 외환위기 원죄론을 거론하는 등 삼성에 대한 여권의 시각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자 삼성의 입장을 요로에 전달하기 위해 영입한 게 아닌가 하는 시각이 그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들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한다. 삼성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마당에 이제 와서 이를 거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면서 “당시로서는 삼성차의 해외 수출 문제 등 국제문제와 관련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영입했다”고 해명했다.

    일부 기업들이 김대통령과 줄이 닿는 인사를 영입하거나 영입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들 나름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만하다. 실제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대통령 공략에만 성공하면 만사가 형통이었다.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사건 수사에서 봤듯 재벌들이 수백억원씩 싸들고 청와대를 방문, 대통령을 면담한 뒤에는 어김없이 재벌들의 ‘숙원사업’이 해결됐던 것도 이를 말해주고 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전회장이 박시언씨를 영입했던 것 역시 과거 대통령을 움직여 자신의 목적 달성에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신동아 관계자들의 얘기다. 신동아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80년대 초반 도심 과밀현상 유발 및 군사상 이유로 서울 여의도 63빌딩 건축 허가가 나지 않자 당시 독실한 기독교인인 신군부 고위 인사의 주선으로 전두환대통령을 면담, 허가를 받아냈다”고 밝혔다.

    당시 전두환대통령은 최회장의 명쾌하고도 단순한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즉시 건축허가를 내락했다는 후문. 최회장은 전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간 성냥갑을 꺼내 “각하, 이 안에는 성냥이 많이 들어 있는데, 성냥갑을 세워놓으나 눕혀놓으나 성냥갑의 밀도는 똑같습니다. 그리고 고층 빌딩을 지어놓으면 군사상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고 설득했다는 것.

    권력과 연이 닿은 사람들에 대한 기업들의 이런 수요는 반대로 ‘브로커’들이 활개칠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다. 물론 청와대를 사칭한 브로커들에 대해서는 사정당국의 단속이 계속되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도 상당하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얘기.

    SK텔레콤이 작년 가을 무렵 겪었던 일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당시 유종근 전북지사 등 현 정부 핵심 경제 브레인을 잘 안다고 자처하는 한 인사가 회사를 찾아와 자신을 고위 임원으로 영입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나름대로 뒷조사를 해본 결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털어놓았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우리 기업들이 권력 핵심 인사와 잘 안다고 주장하는 인사를 영입하거나 영입하려는 행태는 정경유착이 온존하던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통했던 방식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런 방식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정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현 정권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

    실제 이들의 주장대로 현재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만 새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햇볕정책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현대와 현 정부의 밀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경련 관계자도 현대의 LG반도체 인수는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할 만큼 현대의 기아자동차와 LG반도체 인수에 대한 특혜 주장은 다른 그룹들의 시샘 섞인 해석이라고 할 만하다는 평가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여전히 로비스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로비스트란 은밀한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부정적 의미의 로비스트가 아니다. 정부 관계자들을 꾸준히 접촉하면서 정부 정책 방향을 탐지하고 되도록 자신들의 입장을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서 이 일은 보통 각 기업의 대외 업무 담당 임원이 전담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김대중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 기업의 대외 업무 담당 임원에 호남 출신이 많이 등용됐다는 점. 호남 출신 임원들이 현 정권 실세뿐 아니라 정부 핵심 관계자들과 인연이 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97년 7월 회사를 떠났다가 작년 5월 상무로 다시 영입된 대우증권 김모 상무의 경우도 이런 경우라고 할 만하다. 대우증권이 그를 다시 영입한 것은 그가 광주일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와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들과 학연 및 지연이 겹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 회사 관계자는 말한다. 물론 김상무 본인은 “현재 법인영업과 기업금융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뿐 대외 업무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기업들의 이런 행태를 일방적으로 비난만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전경련 유한수전무는 “우리의 법과 제도가 투명하지 않아 공무원들의 재량권이 비교적 넓기 때문에 기업들이 권력에 의존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법과 제도가 투명화될 때에만 대통령이나 여권 핵심 주변 인사들에 대한 기업들의 공략이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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