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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국의 로비스트

“최회장 살려라” 필사의 로비

신동아그룹 로비 전말… 박시언-권력 핵심, 하병국-언론, 이형자-안방마님 잡기 3각작전

“최회장 살려라” 필사의 로비



지난 2월11일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회장이 구속되기까지 검찰의 최전회장 외화밀반출사건 수사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검찰은 98년 5월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으나 2개월만인 7월 돌연 수사유보를 발표했고, 12월 가까스로 최전회장을 구속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으나 실제 구속은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그룹총수의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1년 가까이 진행된 신동아그룹의 로비는 그만큼 집요하고도 필사적인 것이었다.

신동아그룹의 로비전은 98년 5월 서울지검 특수1부가 최전회장의 외화밀반출 혐의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5월말 최전회장이 두차례에 걸쳐 소환조사를 받게 되고 그룹회장 비서실과 경리부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게 되자 다급해진 신동아측은 6월1일 여권 실세들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박시언씨를 그룹 부회장으로 영입해 전면적인 로비태세를 갖췄다.

새 정부의 여권 실세들과 별다른 연줄이 없었던 신동아그룹으로서는 박씨 영입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물론 신동아그룹은 외화밀반출에 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97년 11월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K변호사를 새로 그룹 고문변호사로 영입하는 등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검찰수사에 빈틈없는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재벌총수에 대한 사법처리가 단순히 검찰의 판단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박씨 영입은 검찰수뇌부는 물론 그보다 윗선에 대한 고단위처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박씨 영입은 곧바로 효과를 나타냈다. 박씨는 당시 검찰총장이던 김태정 전 법무장관과 청와대비서실의 사정책임자인 박주선 전 법무비서관을 접촉하면서 활발한 구명로비에 나섰다. 꼭 박씨의 역할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전회장은 98년 6월 김대중대통령의 미국방문길을 수행하게 됐고, 미국 메트로폴리탄생명보험사와 회사지분 50%를 양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10억달러 외자유치 가협정서에 조인하게 된다.

이때부터 최전회장의 구속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던 검찰수사에 급제동이 걸렸다. 신동아측은 ‘최전회장에 대한 수사는 IMF 위기극복 차원에서 진행되는 외자유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검찰수사를 아예 백지화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로비공세에 나섰다. 외자유치 논리가 쉽게 먹혀들자 신동아측은 협상이 시작되는 것을 ‘협상이 다됐다’는 식으로, 외자도입 제의가 있었던 것을 ‘외자가 들어온다’는 식으로 실제 협상진전상황을 부풀려 발표하는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98년 7월말 검찰이 “외자유치협상을 지켜보겠다”며 수사유보를 발표하면서 신동아측의 로비는 거의 성공한 듯했다. 수사팀은 “외자유치협상은 구속을 피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나타냈으나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결정’이라는 수뇌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시의 수사유보결정이 검찰 외부의 뜻에 의해 이뤄졌으며 신동아측의 로비가 정부 차원의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권의 실력자들에게까지 깊숙이 진행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김전법무장관의 집무실에는 여권의 한 실력자로부터 최전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전화가 4, 5차례나 걸려 왔다고 한다.

당시 신동아그룹측의 대외로비는 최전회장을 정점으로 해 박시언그룹부회장 하병국비서실장 등 측근그룹이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씨가 김태정검찰총장과 박주선비서관을 비롯해 여권인사를 맡았고 하실장은 언론계 등 외곽을 담당했다고 한다. 최전회장은 구여권 인맥과 경기고 동문, 교회쪽을 통해 로비에 나섰다는 후문.

그러나 98년 10월 들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로비의혹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데다 11월 박시언씨가 당시 김규섭 서울지검3차장검사를 집무실에서 만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신동아측의 로비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당장 검찰총장실을 수시로 드나들던 박씨의 발이 묶여버렸다.

신동아측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게 된 검찰도 대검찰청이 직접 최전회장 사건기록을 가져다 검토했고 그 결과 최전회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론이 나면서 연내 사법처리쪽으로 선회했다. 서울지검 특수1부의 수사팀에도 “최전회장 문제는 전적으로 수사팀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지침이 내려졌다. 언론에는 신동아측의 외자유치협상이 지지부진하며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박시언씨의 입지가 약화되고 여러 가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신동아측은 최전회장의 부인 이형자씨로 하여금 대통령부인을 비롯한 ‘안방마님’들을 향한 로비의 전면에 나서게 했다. 라스포사의상실 사장 정일순씨에게 일부러 비싼 옷을 사주며 접근한 것도 대통령부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여기에다 98년 12월23일 최전회장의 구속이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최전회장을 협박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바로 전날인 22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종은씨가 검찰에 덜컥 국외재산도피혐의의 공범으로 구속된 것. 검찰이 다른 공범인 최전회장도 구속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동아측은 더욱 궁지에 몰렸고 이때부터 사생결단식의 태도로 바뀌었다. 이형자씨측이 운보 김기창화백 등 유명화가의 그림을 대량 매입해 로비에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이씨측에 의해 ‘검찰총장 부인 등을 상대로 옷로비를 벌였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 옷로비 루머가 퍼지면서 사직동팀의 내사가 시작됐고 검찰의 최전회장 구속도 미뤄졌다.

당시 신동아쪽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일각에서는 최후의 ‘옥쇄’작전에 들어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재벌기업들이 대형이권사업이 걸린 로비를 하다가 주무장관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아예 권력핵심부의 힘을 빌려 제거해버린 예가 있었던 것처럼 김태정검찰총장을 낙마시킨다는 마지막 시나리오 실행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검찰은 신동아측의 전방위로비의혹에 대해 당장 수사에 착수할 뜻을 내비치지 않고 있지만 갈수록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어서 수사착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검찰이 신동아측의 로비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경우 검찰수사는 브레이크 없는 전방위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일선검사들의 분위기부터 살벌하다. ‘감옥에 갇힌’ 검찰의 명예를 위해서도 여권실력자건 누구건간에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격앙된 분위기다.



주간동아 213호 (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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