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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20세기를 빛낸 경영인

‘자동차 왕’ 포드가 없었다면…

포천 誌 4인 선정… GM의 슬로운·IBM의 왓슨·MS의 빌 게이츠도 꼽아

  • 김상현 기자 walf@donga.com

‘자동차 왕’ 포드가 없었다면…



그는 자동차를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자동차 산업을 발명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1863~1946) 얘기다. 경제 전문지 ‘포천’(11월22일자)은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영자 네명 중 한명으로 헨리 포드를 뽑았다. 나머지 세명은 포드보다 뒤늦게 출발했으나 결국 포드를 ‘만년 2위’로 밀어낸 세계 제1위의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앨프리드 P. 슬로운 주니어 회장(1876~ 1966)과 ‘빅블루’(Big Blue) IBM을 급신장시킨 토머스 J. 왓슨 주니어(1914~1993), 그리고 ‘소프트웨어 왕국’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44)이었다.

▲ 헨리 포드

그가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던 1903년 무렵만 해도 자동차는 복잡하고 요란하며 쉽게 고장나는 데다 값까지 비싼 사치품이었다. 포드는 이를 단순하고 견고하며 값싼 생활필수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천재성을 과시했고, 그 대가로 20세기 초반의 최대 거부로 떠올랐다. 당시 그의 재산은 약 10억달러로,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360억달러에 이르렀다.

특히 ‘모델 T’는 그가 내놓은 걸작이었다. 19년 동안 1550만대나 팔린, 자동차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 셀러이기도 했다. 모델 T는 비록 멋은 없었지만 가볍고 단순했으며 저렴했다(당시 가격은 850달러). 포드가 발명한 것은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었다. 그는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각 직원이 맡은 부분만을 담당하는 이른바 ‘포드 시스템’ ―“볼트를 넣는 사람은 너트를 끼우지 않으며, 너트를 끼우는 사람은 이를 죄지 않는다”―을 개발했다. 포드 자동차의 번창과 함께 단순노동자들이 급증했고, 이는 ‘블루칼라’ 계층을 만들었으며, 포드의 뜻과는 무관하게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졌다.



말년의 경영 실패와 노조 탄압 등, 화려했던 전력(前歷)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포드가 오늘날의 자동차 산업에 기여한 공로까지 부정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앨프리드 P. 슬로운 주니어

슬로운은 20세기 초반까지 포드 자동차에 롤러 베어링을 팔았으나 얼마 안있어 포드 자동차를 거의 그의 발아래 무릎 꿇렸다. 슬로운은 1898년 그의 부친이 5000달러에 사들인 하이야트 롤러 베어링사의 자산가치를 무려 2700배나 늘려 1916년 1350만달러에 파는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그가 GM에 뛰어든 것은 그로부터 2년 뒤. 부사장 겸 경영위원회 위원으로서였다. 당시만 해도 GM의 경영 상태는 엉망이었다. 빚은 점점 늘어만 갔고, 자동차 판매는 바닥이었다.

1923년 그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태는 역전되기 시작한다. 1946년까지 23년 동안 그는 GM을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회사로 화려하게 되살려 놓았다. 중앙집중제와 분권제를 적절히 배합, 경영의 묘미를 살렸다. 1908~27년, 포드가 오직 ‘모델 T’ 하나만을 고집한 반면 GM은 캐딜락으로부터 셰브롤레에 이르는 다양한 생산라인을 구축, 대상 소비자를 구분했다. 그 결과 포드의 미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55.7%에서 18.9%로 급전직하한 반면 GM은 12.7%에서 47.5%로 급상승했다.

▲ 토머스 J. 왓슨 주니어

IBM을 설립한 것은 토머스 J. 왓슨 시니어였지만 이를 컴퓨터의 상징 같은 회사로 탈바꿈시킨 것은 그의 아들인 주니어였다. 왓슨은 1956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IBM의 최고경영자(CEO)가 됐고, IBM 역사상 가장 찬란한 성공신화를 일궜다. 그의 CEO 취임 당시 IBM과 힘겨루기를 했던 제너럴 일렉트릭(GE), RCA, 스페리-유니백 등 거대기업들은, 1971년 그가 CEO직을 물러날 때에는 그 규모와 중요도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처지게 됐다.

그의 경영 수완은 1987년 포천지가 그를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본가”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의 아버지는 에니악(ENIAC) 같은 공룡 컴퓨터에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했지만 아들은 달랐다. 그는 엄청난 잠재력과 위기를 함께 읽었다. 그는 자체 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하고 막대한 자본을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대형 컴퓨터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는 기업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57세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평화 사절로, 요트 항해사로 삶을 즐겼다.

▲ 윌리엄 H. 게이츠 3세

‘트릴리어네어’(‘조’(兆) 단위의 재산가)라는 신조어가 어울리는 세계 최대의 거부. 20세기 정보화 사회의 한 상징. 빌 게이츠에 대한 일반의 인식에는 애증이 교차한다.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분명한 것은 그가 컴퓨터기술자와 기업가, 경영자 등을 공평하게 배합한, 가장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맨이라는 사실이다.

익히 잘 알려진 대로, 빌 게이츠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CEO다. 포드가 자동차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게이츠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던 컴퓨터 기술을 대중화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MS도스나 윈도즈 같은 MS의 운영체제들은 종종 자동차 산업의 ‘모델T’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게이츠의 업적은 더욱 경이로운 것 같다. 게이츠와 폴 앨런이 MS를 설립하기 전까지는 순수한 소프트웨어 회사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하드웨어 회사들이 ‘필요하지만 거추장스러운 도구’ 정도로 여겼던 소프트웨어로부터, 게이츠는 엄청난 비즈니스의 기회를 찾아냈던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모든 종업원들에 대한 보상체계로 ‘스톡옵션’ 제도를 도입한 첫 기업인이기도 했다. 그 결과 MS는 지난 10년 동안에만 100배나 성장하는 ‘기록’을 올렸고, 빌 게이츠에게는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됐다.

한편 포천은 20세기를 빛낸 여러 상품과 아이디어도 소개했다. 어린이를 가장 즐겁게 해준 장난감으로 는 블록으로 유명한 레고가 뽑혔고, 집안일을 가장 획기적으로 도와준 제품으로는 진공청소기가 뽑혔다. 독서 인구를 크게 높여준 것으로 평가된 페이퍼백 표지, 면도를 더없이 안전한 일상사로 만들어준 다중날 면도기도 세기적인 상품으로 선정됐다.



주간동아 210호 (p86~87)

김상현 기자 wa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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