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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軍 징집

러 젊은이들 “잔인한 가을”

만 18세 대상 입대… “6개월 기본훈련 후 체첸전 투입” 불안감

  •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러 젊은이들 “잔인한 가을”



올해 18세가 된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이번 가을은 잔인한 계절이다. 체첸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징집 기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영장을 받아들고 입대하는 마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송아지’ 같은 심정이다. 신병들도 입대후 6개월의 기본훈련만 받고 바로 전선에 투입할 수 있다는 대통령령이 이미 내려진 상태다. 군당국에 따르면 전사자 수가 이미 300여명에 이른다.

친구들과 작별의 보드카를 마시고 부모님과 애인의 눈물을 뒤로한 채 떠나는 길이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최근 동네 영화관이나 체육관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마을 출신 청년들을 군대로 떠나보내는 환송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행사들은 구소련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무전유죄 … “가난한 집만 군대가나”

러시아에서는 해마다 10월부터 11월까지 만 18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징집이 이루어진다. 올해 징집 대상은 22만명. 복무 기간은 2년. 그러나 모두가 군대를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국립대학교에 입학하면 군에 가지 않아도 된다. 대학마다 교련 과정이 있어서 이 교육을 받으면 졸업과 동시에 예비역 소위로 편입된다. 개방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사립대에는 교련과정이 설치돼 있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한다. 사립대에 여학생들이 많은 이유도 남학생들이 병역문제에 ‘보탬’이 되지 않는 사립대에는 입학하지 않기 때문. 최근 사립대들은 군면제 혜택을 주지 않는 정부의 조치가 불공정하다며 헌법재판소에 제소했으나 패배했다.

공부를 잘해서 대학가는 것 외에 결혼으로 입대를 피하는 방법도 있다. 러시아에서는 17세가 되면 합법적인 결혼이 가능한데 신부가 18세 미만이면 남편이 군면제를 받을 수 있다.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에 따르면 최근 군대에 안가려고 무작정 결혼하는 ‘철없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다.

그밖에 부모가 고령이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 등 가정형편도 군에 가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늘 병역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공부 못해서 대학에 못가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 형편이 안되는 가난한 집 아들들만 군대에 간다”는 것이다. 뇌물이 오가는 등 병무비리도 심각하다.

지역별로도 편차가 심해 농촌지역 청년들은 대부분 빠짐없이 군에 가는 데 비해서 모스크바 등 도시청년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면제를 받는다. 전국적으로 징집 대상의 70%가 입대하는데 모스크바 청년의 4.5%만 군대에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모스크바출신의 70%는 입대해도 집에서 가까운 모스크바주 안에서 복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 젊은이들이 군대가기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악의 복무환경이다. 예산부족으로 보급이 형편없고 병사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감자캐기 등에 나서야 한다. 병영 안에서의 구타 마약복용 자살 의문사 등의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들을 군에 보냈다가 잃어버린 억울한 어머니들이 ‘병사들의 어머니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을 정도다. 이 단체는 체첸전 반대 등 반전운동과 군내에서 일어나는 의문사 등 각종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어머니들은 러시아 정부가 체첸 침공을 시작하면서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들에게 하루 800루블(4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한 푼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아직 소년티도 벗지 못한 채 전선으로 나가는 젊은이들과, 아들을 사지로 떠나보내는 가슴 아픈 모정이 뒤섞인 가운데 러시아는 금세기를 마감하고 있다.



주간동아 210호 (p74~74)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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