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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백령도의 늦 가을

‘긴장의 섬’에도 가을은 깊어가네

어민 반 군인 반 “우린 한식구”… 물표범떼 . 무더기 까나리 액젓통 등 진풍경

  • 백령도=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긴장의 섬’에도 가을은 깊어가네



37。 58’ 800 N… 37。 59 ‘200 N…’

선실 한 귀퉁이에 놓인 위성 추적장치(GPS)의 숫자가 북위 38도를 날름거리자 최대원선장은 재빨리 키를 잡아 홱 돌려 버렸다. 항로를 남으로,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수면에서 100m가 넘는 절벽 위 8부 능선에 설치된 자동 화기의 엄호를 받아야 하는 38도 선의 팽팽한 긴장과, 수천년을 하루처럼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기암괴석의 평화가 절묘하게 조화돼 있는 두무진 해상이 그가 매일같이 출근하는 직장이다.

황해도 장산곶 손에 잡힐 듯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3리. 맑은 날이면 황해도의 장산곶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앞마당에서 밥짓는 연기처럼 보일 정도로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이는 지역이다. ‘청정’(靑淨)이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피부에 스쳐가는 것을 느낄 정도로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하다. 물과 바람과, 수천년을 파도에 깎여 나가 회초리 자국이 수도 없이 난 절벽 바위들 모두 사람의 손때가 묻은 구석이라고는 어디 한 군데에도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망망한 바다에서 수백마리의 물표범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 맑은 날이면 바위에 걸터앉아 졸고 있는 물표범의 곁을 스쳐갈 듯이 가까운 곳에서 구경할 수도 있다.



백령도의 늦가을은 을씨년스러워져 가는 바닷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의도 면적의 다섯 배가 조금 넘는 이 섬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다 보면 이맘때쯤 빠지지 않는 것이 까나리액젓이다. 어른 한 명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고무통에 담긴 까나리액젓을 발효시키느라 커다란 돌무더기로 뚜껑을 눌러 놓은 광경을 어느 집에서건 쉽게 볼 수 있다. 적은 곳은 10여개, 많은 곳은 수십개의 까나리액젓 통에서는 김장철을 앞에 두고 제맛을 내기 위한 몸치장이 한창이다.

그러나 백령도의 미색을 질투한다고 느껴도 어쩔 수 없이 이 섬은 한치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서해 최북단의 군사 요충지이다. 지난 여름 서해 교전이 일어났던 연평도보다도 위도로 따지면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다. 상주 인구의 절반은 군인이다. 팔각모를 쓴 해병대 장병뿐만 아니라 레이더 기지를 지키는 공군과 육군들도 꽤 있다.

백령도 주민들은 이러한 준전시체제에 늘 익숙해 있다. 30대 이상의 주민들만 해도 어렸을 때 인공기가 그려진 비행기가 백령도 상공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백령도 주민들의 상당수 역시 ‘아버지도 해병, 나도 해병’이다. 시골길에서 만난 허리굽은 촌로(村老)도 제대를 앞둔 ‘팔각모 고참’에게는 까마득한 선배인 것이다. 백령도 사람들이 그동안 해병대 흑룡부대에서 먹은 ‘짬밥’ 만을 합쳐도 이만한 섬 하나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주간동아 210호 (p50~51)

백령도=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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