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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세기말의 성 산업

1.5평의 ‘인스턴트 유희’

‘방… 방… 방…’ 밀착취재… “귀가길 잠깐 ‘10만원 교제’ 어때요” 유혹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1.5평의 ‘인스턴트 유희’

1.5평의 ‘인스턴트 유희’
노래방, 비디오방, 전화방, PC게임방…. 90년대 한국소비문화를 대표하는 ‘방’(房)들이다.

‘성(性)’과 ‘자본’, ‘현대인의 밀실지향적 의식구조’가 교차하는 3차원의 공간. ‘방’은 잊을 만하면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저렴한 가격’으로 생명을 연장하며 대중을 사로잡아왔다.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은 방이 처음 등장한 1991년 4월 이전으로는 이미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방’에 몰입해 가고 있다. 이제 전국 어느 거리를 지날 때도 ‘방’으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해졌다. 방은 현대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11월10일 오후 10시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부근 N전화방. 직장인으로 보이는 20, 30대들로 15개의 밀실은 꽉 차 있었다. 1만2000원에 한시간 사용하도록 주어진 1.5평의 방안엔 텔레비전, 사우나실에서나 볼 수 있는 안락의자, 필기도구와 메모지, 전화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외부와 차단된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전화벨이 울리기만 기다리며 우두커니 누워 있는 심정은 어떨까. 일주일에 두번꼴로 이 전화방을 찾는다는 유통업체 직원 이모씨(29)는 “전화가 울릴 때의 느낌이란 단절된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10분만에 전화가 왔다. K대 휴학생이라는 김모양(19)은 서강대 주변 커피숍에서 방금 아르바이트를 마쳤다고 한다. 그녀는 귀가길에 잠깐 ‘10만원 원조교제’를 하고 싶다고 용건을 밝혔다. 일단 거절해 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최근 전화방의 음란행위에 대한 처벌이 벌금형에서 구속형으로 강화됐다지만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전화방의 변종인 ‘화상대화방’이 당국의 단속으로 자취를 감춘 것과는 달리 전화방은 ‘원조교제의 스테디셀러’쯤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래방 카운터옆 쪽방엔 女종업원 상시 대기

10분 뒤 J대 2학년생이라는 서모양(21·서교동)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양은 전화방 전화번호 4, 5개를 적어 두고 번갈아 전화하거나 ‘PC대화방’에서 상대 ID를 찍어 데이트신청하는 방법으로 올들어 네 차례 원조교제를 했다고 한다. 술을 한잔 하자고 제의했다. 휴대전화번호를 교환하는 등 몇가지 ‘절차’를 거친 뒤 밤 11시 쯤 그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신촌의 ‘M소주방’으로 가봤다. 고교 때부터 그녀의 단골이었다는 그 집엔 이날도 많은 청소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소주를 파는 일반 술집과 소주방은 어떻게 다를까. “외관상 다른 것은 전혀 없어요. ‘방’이라고 붙이면 왠지 저렴해 보이고, 청소년이 가도 되는 곳 같은 느낌이 들죠.” 그녀의 ‘방론(論)’에 따르면 방의 이미지가 유해업소에 대한 청소년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신촌에서 ‘스티커방’을 운영하는 천용우씨도 ‘편안한 느낌’ 때문에 업소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말한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에서 문을 연 ‘댄스방’, 송파동의 ‘멀티방’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 천씨의 얘기. ‘귀소본능’을 방이란 이미지로 ‘압축’해 상품화한 것이 바로 ‘방 산업’이라고 문화평론가 하재봉씨는 설명했다.

그러나 방의 또다른 요소인 ‘밀폐성’이 ‘성’과 결합될 때 방은 성산업, 혹은 ‘일탈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신정범 YMCA청소년사업부 간사). 11일 오후 대구에서 ‘노래방’을 탐구했다. 노래연습장협회 대구시지부 정치호국장이 말하는 대구의 노래방영업실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국장은 “대구시내 1780개 노래방 중 여자접대부를 불러주는 업소가 1420여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보도방’에서 접대부를 공급받고 접대부는 ‘2차’도 나간다는 것이 정씨의 설명. 이날 대구시 황금동 M노래방을 찾았다. 카운터 옆에는 쪽방이 갖춰져 있어 여자종업원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 5월 이후 대구 달서구청 한곳에 적발된 노래방의 여성접대부 영업행위는 13건에 이른다.

12일 밤 서울 북창동, 신천, 신촌의 노래방들을 둘러봤다. 거의 모든 노래방들이 손님에게 술을 팔고 있었지만 여성접대부를 대주는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신천의 한 노래방 업주(40)는 이를 유흥업계 업종들간의 ‘역학관계’로 풀었다. 단란-유흥주점 업종이 호황이고 폭력배가 이 업종에 몰리면 노래방이 숨을 죽이는 것이고 사정이 다르면 노래방이 이들 업종의 영역인 매춘사업을 잠식해 들어간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비디오방’을 이용한 고교생의 63%가 비디오방에서 성적 접촉을 했다는 설문조사결과가 나온 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7월부터 청소년의 비디오방 출입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비디오방에서 성접촉을 했다는 청소년은 끊이지 않는다. YMCA 성교육 상담실 김미정상담원은 “지난 9월 비디오방에서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맺은 뒤 임신했다는 18세 여고생의 상담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비디오방에서의 성적접촉’은 다른 한편으로 성산업의 ‘콘텐츠’가 된다. 13일 오후 서울 세운상가에서 ‘비디오방몰카CD’를 구하는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세운상가 한업주(31)는 10분마다 1개씩 몰카CD를 ‘구워내’, 1장에 7만원을 받고 판매하고 있다. 일반 수입포르노CD의 2배이상 가격. ‘하드웨어’는 양산체제를 갖췄지만 항상 콘텐츠가 없어 고민하던 한국의 성산업에서 비디오방이나 여관방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급처가 된 것이다.

PC나 인터넷의 ‘채팅방’ 등 가상공간으로 영역을 넓힌 ‘방’은 이들을 다시 ‘PC게임방’이라는 ‘구체화된’ 상업시설로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방은 전화방에서 전수된 ‘익명성’과 ‘일회성’을 확대 재생산했다. 그 덕에 지금 ‘만인 대 만인’이 물고물리는 거대한 ‘성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이미 원조교제가 잘된다고 소문난 한 인터넷채팅방은 하룻동안 1만7000명을 1대 1로 연결시켜주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지금 도시엔 방 투성이다. 찜질방, 빨래방, 운전방, 캡슐방, 편의방, 만화방, 여관방, 티켓다방, 구두방, 머리방, 놀이방, 떴다방…. 방의 ‘빅뱅’시대라 할 만하다.

방은 대중을 지향한다. ‘수천~수만원’으로 모든 것을 ‘탐닉’하려는 ‘가난한 대중’의 ‘포트폴리오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방만한 상품은 없다. 하재봉씨는 “방은 ‘진정한 인간적 관계’를 복원시키려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방을 팽창시키는 실제의 힘은 ‘성’과 ‘상술’이다. ‘인스턴트적 성적 유희’를 파는 ‘싸구려 성산업’이 바로 방이기도 하다. 그래서 방은 ‘성’과 ‘일상적 생활’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이율배반적’ 변신을 거듭하는 ‘세기말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부산 오락실주인 日서 첫수입

현충단씨 91년 유리박스형태 노래방 선보여


90년대 한국소비문화의 상징인 ‘방산업’의 ‘시조’(始祖)는 누구일까. 기자가 노래방업계 여러 관계자들에게 수소문한 바에 따르면 오늘날의 거대한 ‘방 문화’를 일군 ‘최초의 개척자’는 부산의 오락실 주인 현충단씨(56)다.

부산 동아대 앞에서 전자오락실을 경영하던 현씨는 신종 오락기 물색차 일본을 자주 들락거리다 노래반주기 석대를 들여왔다. 그는 이 반주기에 한국가요를 자기 손으로 직접 수록한 뒤 91년 4월 자신의 오락실에 설치했다. 2, 3명이 들어갈 수 있는 유리박스 형태였다. 이것이 노래방의 원조. 현씨는 이때 이미 요즘 노래방에서 많이 쓰는 멀티비전도 개발했다.

이후 영풍전자가 현씨와 손잡고 모니터에 가사가 나오는 ‘앗싸 반주기’를 시판하면서 노래방은 대중화됐다. 부산에서 시작된 노래방열풍이 마산, 대구를 거쳐 서울에 상륙하는 데는 정확하게 1년이 걸렸다.

정부가 92년 9월 풍속영업법을 제정, 규제를 강화하면서 노래방이 주춤하던 사이 첫번째 ‘방의 변종’ 비디오방이 나타났다. 한국에서 ‘방 시리즈’가 본격화된 것이다.

현씨는 현재 부산에서 전자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간동아 210호 (p48~49)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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