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7

2016.07.20

커버스토리 | ‘사드’, 그 정치적 도박

신의 한 수인가 패착인가

사드 배치 결정에 담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셈법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7-19 12: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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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7일 오후. 정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관련 발표를 이튿날 오후에 하겠다고 예고했다. 발표 예정 시각은 오후 3시. 그러나 8일 오전 11시, 당초보다 네 시간 앞당겨 한국과 미국 군 당국 간 ‘사드 배치 결정’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반발이 예상되는 중대한 안보 이슈가 깜짝 공개되자 사드 관련 뉴스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와 국내 정치 이슈는 뒤로 밀렸다.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시점을 금요일로 정한 이유는 주말을 앞두고 발표해야 파장이 적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국방부가 사드 배치를 발표한 지 꼭 한 시간 뒤 청와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새누리당 의원 초청 오찬행사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20대 총선을 거치며 쌓인 계파 간 공천 갈등 같은 앙금을 털어내고 모처럼 ‘화합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또한 이날 행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1년 전 국회법 파동으로 ‘배신의 정치인’으로 규정한 유승민 의원과의 조우도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 오찬행사는 사드 배치 발표 소식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사드 발표에 가린 청와대 오찬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왜 하필 청와대 오찬행사 직전에 ‘사드 배치 발표’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7월 8일 오후 그와 전화로 나눈 대화.


    ▼ 사드 배치 발표로 청와대 오찬행사 소식이 묻혔다.



    “왜 하필 오늘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 사드 배치 발표가 오후에서 오전으로 바뀌었는데….

    “네 시간 차가 무슨 큰 정치적·외교적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사드 배치) 발표 시점을 앞당긴 탓에 청와대 오찬행사는 상대적으로 국민의 이목을 덜 끌었다는 점이다.”

    ▼ 누가 그런 결정을 했다고 보나.

    “정확한 프로세스를 알 길이 없다.”

    ▼ 일반적으로 정부 부처에서는 중요한 사안의 경우 발표 시점을 사전에 청와대와 조율하지 않나.

    “청와대와 조율하지 않고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부처가 독단적으로 발표한다면 그게 더 문제 아닌가.”



    만약 사드 배치 발표가 7월 8일 오전 11시에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날 오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은 ‘당청, 손 맞잡고 국정 고삐 다시 죈다’ ‘당청, 공천 앙금 털고 새 출발’ 등이 올랐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박 대통령과 손잡은 유 의원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언론 지면을 장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 발표 소식은 블랙홀처럼 주요 현안과 이슈를 빨아들였다. 청와대 오찬행사 이후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서청원 의원이 8월 9일로 예정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출마를 검토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사드 배치 후보지가 ‘경남 양산이냐’ ‘경북 칠곡 또는 성주냐’ 등 자고 나면 새롭게 떠오르는 후보 지역 논란에 가려졌다. 결국 국방부는 ‘수주 내 지역을 선정해 발표하겠다’는 당초 계획과 달리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지 닷새 만인 7월 13일 오후 경북 성주를 사드 배치 지역으로 공식 발표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사드 배치 지역 발표 하루 전날인 12일 오후까지도 ‘수주 내 발표될 것’이라 알고 있었다. 다음은 7월 12일 오후 한 국방위원과 일문일답 내용.



    ▼ 7월 8일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후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늘 ‘소통 부족’ 문제로 지적받아왔는데, 이번 사드 배치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대국민 설득 작업이 부족했다. 소통을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사드 배치를 어떻게 생각하나.

    “노코멘트. 우리 당은 아직 당론이 정해지지 않았다.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고, 신중해야 한다는 측도 있다.”

    ▼ 경남 양산이냐, 경북 칠곡 또는 성주냐 등 사드 배치 지역 선정 문제로 논점이 옮아갔다.

    “후보지는 거의 결정해놓은 것 같더라.”



    사드 배치 결정과 지역 선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자 사드 배치에 긍정적인 여권 내부에서조차 “너무 서두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욱이 사드 배치 지역을 성주로 결정한 것은 임기 말 박근혜 정부에게 적잖은 부담이 되리라는 우려도 나왔다. 새누리당 한 인사의 얘기.

    “박근혜 정부 출범을 위해 힘을 모아준 TK(대구·경북) 유권자에게 박근혜 정부는 총선 때는 친박 전횡 공천으로, 총선 이후에는 영남권 신공항 무산(TK에겐 밀양 신공항 무산)으로 두 번 상처를 줬다. 거기에 성주를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선정한 일은 지금까지 입은 상처를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TK, 朴 잘못한다 43%, 잘한다 40%

    실제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관련 평가는 임기 4년 차를 맞아 지속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43%였던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올해 1분기 40%로 하락했고, 4월 총선을 치른 2분기에는 33%로 크게 하락했다. 특히 최근에는 박 대통령 지지율의 버팀목이던 TK에서조차 긍정보다 부정 평가가 높아졌다. 3월에는 긍정 60%, 부정 32%였던 TK 지역민의 박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는 4월 긍정 49%, 부정 37%로 좁혀졌고, 5월에는 44% 대 40%로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엇비슷해졌다. 급기야 6월 들어 박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43%로 긍정 평가 40%를 앞질렀다.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TK에서조차 민심 이반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새누리당의 총선 공천 파동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총선 이후 TK에서 지지율 하락은 TK 지역민의 기대가 컸던 밀양 신공항 무산 등이 주원인이 됐다. 더욱이 성주에 사드를 배치키로 한 결정은 TK 민심 이반을 가속화할 수 있다.

    정부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성주를 공식 발표한 직후 TK 지역 의원 21명은 단체로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 의원들은 “TK 지역민들은 신공항 건설 무산으로 실망한 데 이어 최근 불거진 TK 사드 배치설로 불안감과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며 “선정 기준을 소상하게 밝히고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 지역으로 결정한 이유를 시도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지역이 한반도 방어의 최적지임을 전 국민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드 배치 발표 직후 박 대통령은 TK 지역민의 숙원이던 ‘대구국제공항 이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7월 1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군과 민간 공항을 통합 이전함으로써 군과 주민의 기대를 충족할 것”이라며 조속한 추진을 지시한 것. 박 대통령 지시 하루 뒤 정부는 ‘대구공항 통합이전 태스크포스(TF)’를 즉시 구성해 K-2 공군기지 및 대구 민간공항 겸용 용지를 한두 달 안에 선정하겠다며 발 빠르게 대응했다.

    박 대통령의 대구국제공항 이전 지시는 사드 배치 지역 결정에 따른 TK 지역민의 반감을 상쇄하려는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사드라는 전국적 이슈를 방패 삼아 지역 숙원사업에 속도를 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그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년 대통령선거(대선) 이후에도 대구국제공항 이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여권의 정권 재창출이 필요하다는 여론몰이도 가능하다.



    야권, 대안 없는 ‘사드 반대’는 역풍 부를 것

    외견상 사드를 둘러싼 TK 지역민의 반발은 박 대통령의 하반기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사안으로 비친다. 그러나 여권은 물론 야권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없지 않다. 사드가 야권 내분의 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드 배치 결정은 우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외교 전략 카드 가운데 하나”라며 “당장은 이슈가 커 보이겠지만 오래 지속될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신 교수는 “야당이 대안 없이 (사드에) 반대하는 인상을 줄 경우 더 큰 역풍에 휘말릴 개연성은 있다”고 말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도 “20대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영입 등을 통해 중도, 대안정당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사드 배치 논란을 잘못 관리하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더민주는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간 견해차가 표출되는 등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김 대표가 “실익 있는 사드 배치라면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문 전 대표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며 “국익 관점에서 볼 때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심지어 안철수 전 공동상임대표는 사드 배치를 두고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신 교수는 “사드가 국가 안보와 외교적 측면에서 의미가 크지만 일반 국민 모두가 사드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란 쉽지 않다”며 “더욱이 사드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야당은 사드를 둘러싸고 찬반으로 갈려 논쟁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박 대통령과 정부는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선정된 성주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대형 국책사업 등 TK 지역에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사드 배치와 그에 따른 거센 반대 여론은 임기 말 박 대통령이 TK에 더 많은 예산을 내려 보낼 좋은 구실이 된다. 임기 5년인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자신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준 TK에 ‘예산폭탄’을 투하할 시간은 이제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최근 사드 배치 결정이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불러올 ‘패착’이 아니라, 잘만 활용하면 20대 총선 과정에서 흩어진 TK 민심을 수습하고 내년 대선에서 여권의 정권 재창출 기반을 닦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성주를 지역구로 둔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7월 14일 MBC와 YTN 라디오에 잇따라 출연해 “사드 배치에 대한 군사적 효용성 평가와 후보지 평가 점수, 시뮬레이션 결과 등을 공개해 국민이 수긍할 만하면 성주 군민들도 달라질 테고, 대한민국 방어에 성주가 최적지라는 결과가 나오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드 배치에 따른) 보상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면서 “국책사업 가운데 가능한 지원책을 종합적으로 마련해 발표하면 지역 주민의 반대가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성주는 박 대통령의 과거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다. 만약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급부로 성주에서 대형 국책사업 등을 시행하게 되면 그 혜택을 대구 달성도 함께 누릴 공산이 크다. 20대 총선 당시 대구 달성에서 당선한 추경호 의원은 성주 사드 배치 관련 TK 의원들의 집단 기자회견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추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인사로 박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는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힌다.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로 들끓는 TK, 특히 대구 달성에 인접한 성주에 어떤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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