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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성과 제일주의의 두 얼굴

‘신의 직장’ 건들다 ‘있는 일자리’ 흔들

정부 주도 성과연봉제, 고용 안정성 악화 우려 심화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신의 직장’ 건들다 ‘있는 일자리’ 흔들

‘신의 직장’ 건들다 ‘있는 일자리’ 흔들

6월 25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성과급제 폐지, 퇴출제 저지’ 공무원·교사 결의대회에서 공무원 노조와 전교조 조합원들이 성과급제 폐지와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이제 ‘단톡방’에 ‘한 번만 봐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지쳤어요. 처음엔 ‘우리가 도와줘야지’ 하고 나서던 친구들까지 ‘다음엔 또 뭘 팔 건데?’라며 은근히 비꼽니다. 얼마나 더 이 짓을 해야 할까요.”

서울 한 은행에서 일하는 A씨 얘기다. 그는 회사에서 신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숨이 막힌다고 털어놓았다. 실적 압박 때문이다. 올해 이미 모바일 메신저와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를 ‘팔아야’ 했던 A씨가 요새 힘을 쏟고 있는 건 통합멤버십 애플리케이션(앱) 가입 독려다. 은행은 소비자가 해당 앱을 다운로드할 때 추천 직원 사번을 입력하도록 해 개인별 실적을 집계하고, 그 결과를 사내 평가와 승진 등에 반영한다. 이러니 낯 뜨거워도 한 번 더 지인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는 게 A씨의 하소연이다. 그에 따르면 최근 은행권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 커졌다. 머잖아 실적이 연봉과 직결될 수 있는 탓이다. A씨는 “그동안 간부급에만 적용되던 성과연봉제가 일반 직원에게까지 확대되면 사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호봉제는 악, 성과연봉제는 선?

성과연봉제는 업무 성과를 평가해 노동자 연봉에 차등을 두는 제도를 말한다. 입사 순서에 따라 연봉이 정해지는 호봉제와 달리 개인 능력을 급여 산정 기준으로 삼는다. 그 결과 노동 의욕을 고취하고 기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있다. 정부가 노동개혁 일환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월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우리나라의) 호봉제 임금체계는 선진국에서 찾기 힘든 갈라파고스 제도”라며 “입사만으로 평생소득이 보장되는 ‘신의 직장’은 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30개 공기업과 90개 준정부기관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민간 부문도 압박하는 모양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6월 금융 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9개 금융 공공기관이 이미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남은 과제는 이를 모든 금융권으로 확산해 금융개혁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임 위원장은 이날 “현재의 연공서열, 획일적 평가, 현실 안주와 보신주의의 낡은 관행을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도 했다. 이른바 ‘철밥통’ 직장을 없애겠다는 얘기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성과연봉제가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 등을 검토하지 않고, 노사 협의조차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사내 정보 교류와 협업문화를 망가뜨려 오히려 기업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노광표 소장과 박용철 연구위원은 3월 발표한 이슈 페이퍼를 통해 ‘우리나라같이 성과 평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그로 인한 수용성이 낮은 경우, 그리고 단순생산직이 아닌 사무직이거나 업무 간 상호의존성이 높은 경우에는 (성과연봉제) 시행이 상당히 어렵고, 특히 조직구성원들의 동기부여 측면이나 고용 불안, 조직 몰입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A씨 사례처럼 사내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질 경우 고용의 질이 전반적으로 하락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는 “현재 정부는 고용안정성이 보장되고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노동자를 ‘악’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의 근로조건을 훼손하는 걸 ‘노동개혁’으로 보는 듯하다”며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는 ‘좋은 일자리 없애기’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 만들기’로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교사들도 정부 주도의 성과연봉제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2001년 열심히 일한 교사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겠다는 취지로 교원성과급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전국 교사는 현재 매년 S(30%), A(40%), B(30%) 등급으로 분류돼 각각 다른 액수의 성과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시민단체 ‘좋은교사운동’이 교사 2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86.5%가 해당 제도 폐지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4.1%는 현행 성과급제도가 사기 진작이나 전문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답했다.



돈 말고 다른 ‘당근’은 없나

한 고교 교사는 이에 대해 “평가지표가 수업시수나 공문처리 실적처럼 양적인 것에 치우쳐 있고, 고참 교사에게 좋은 등급을 주는 관행도 남아 있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을 담당하는 보직교사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학생의 성장을 통해 성과를 확인하는 교사의 교육활동을 단기적, 계량적으로 환산하려는 시도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교사도 많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보수단체로 분류되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조차 교원성과급제 폐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지급하는 성과급을 한데 모아 참여자 수대로 균등 지급하는 운동을 진행 중이다. 전교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교원의 약 15%가 이에 참여했을 만큼 호응이 높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단호하다. 최근 교육부는 성과급을 똑같이 나누는 행위를 할 경우 최고 파면까지 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해부터 교원성과연봉 차등 비율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계 추세와 다른 방향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김성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사원에 대한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기업 비중은 1990년대 50% 선에서 최근 14% 선으로 크게 낮아졌다. 김 교수는 “상대평가 방식이 사원들 간 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쉬운 목표를 지향하게 하며, 전반적으로 동기부여를 감소시키는 등의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도 저서 ‘드라이브’에서 ‘단기간의 향상 계획이나 성과급제도는 대개 효과가 없으며 종종 역효과가 난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확산되고 있는 우리나라 성과연봉제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성과연봉제를 확대 시행하기로 한 금융공기업 9개 가운데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예탁결제원을 제외한 7개 노동조합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소속이다. 그런데 금융노조 각 지부가 노조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과연봉제 찬반투표 결과 반대 비율이 기술보증기금 98.57%, 신용보증기금 97.2% 등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노조는 이를 바탕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막기 위한 법적 대응과 총파업 등을 예고한 상태다. 시중은행 노조 또한 이에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성과연봉제가 올 하반기 노사관계의 ‘태풍의 눈’이 된 셈이다. 






주간동아 2016.07.20 1047호 (p32~3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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