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4

2016.04.20

커버스토리│텃밭의 반란, 대선까지 갈까

안철수의 불완전한 부활

높은 정당 지지율로 ‘호남 자민련’ 탈피…영남 확장성 입증은 과제

  • 이숙현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연구위원

    입력2016-04-15 16: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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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에 서 있던 사람이 구조됐다. 주인공은 안철수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이번 20대 총선에서 세 번에 걸쳐 안도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안 대표 본인의 재선(서울 노원병) 성공, 두 번째는 호남 압승, 세 번째는 예상을 넘어선 정당 득표율 덕분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어느 때나 있었지만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거 기간 내내 안 대표와 ‘박근혜 키즈’인 새누리당 이준석 후보가 ‘박빙’이라는 조사 결과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안철수는 52.3%를 득표하며 21%p 표차로 이준석 후보를 압도했다. 서울 노원병이 위치한 노원구 투표율의 잠정치가 64.1%로 전국 평균 58.0%보다 월등히 높아 서울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기승전-대선

    호남 압승은 예상됐지만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국민의당 스스로도 호남 28석 가운데 최대 20석을 바라봤는데 23석을 가져갔다. 더불어민주당 3석, 새누리당 2석과 비교하면 ‘싹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이번 총선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당 득표율(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투표)이다. 호들갑스러운 여론조사와 무관하게 안철수 대표의 재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호남에서의 석권도 예상된 일이었다. 다만 3당 체제 구축과 더불어 ‘호남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정당 득표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안철수가 유세 기간 내내 ‘알파고’처럼 반복했다는 ‘거대 양당 기득권 타파, 3당 체제 구축’ 호소에 민심은 26.7%라는 놀라운 정당 지지율로 화답해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25.5%·더민주당)을 누르고 2위로 올라서게 했다. 안철수가 ‘구조’됐다는 표현을 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 숫자들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또 다른 세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이번 총선 결과로 안 대표는 ‘야권분열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그와 동시에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민주당) 탈당 명분(3당 체제, 정권교체 등)을 살렸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다. 향후 국민의당이 어떤 정치력을 보일지 두고 봐야겠지만, 그동안 거대 양당체제에서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던 유권자의 숨통을 일단 틔운 것은 사실이다.

    둘째, 국회에 38명(국민의당 의석수·지역 25석+비례 13석)이라는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교섭력을 갖게 됐다. 올해 초 당 지지율이 한때 8%대까지 곤두박질치자 “원내교섭단체라도 구성하면 다행”이라는 얘기가 들렸지만 국민의당 스스로 설정한 최대 목표 의석수 40석에 육박하며 그야말로 녹색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38’이라는 숫자는 신생 정당으로서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번에 제1당으로 올라선 더민주당(123석)과 새누리당(122석)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구실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정치인 안 대표에게 이번 총선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점이다. 그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위태롭게만 보이던 대권주자에게 반전의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돌이켜보면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는 ‘기승전-대선’이다. 그의 이름이 들어가는 뉴스, 대화, 가십 등 모든 얘기는 대선(대통령선거)에서 시작되고 대선에서 끝난다. 2011년 ‘아름다운 양보’를 한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안 대표는 국민의 부름을 받고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 불려서 나왔고, 따라서 희생이라는 말도 자주 썼다. 국민 지지가 높을 때는 이런 ‘워딩(wording)’이 먹혀들었지만 지지율이 빠지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고 희석됐다.

    2011년 서울시장 후보직 양보에 유권자들이 보여준 환호와 지지는 2012년 대선 당시 단일화 압박에 후보직을 사퇴할 때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2013년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후 창당 준비를 하다 이듬해 3월 ‘갑자기’ 새정치민주연합과 합당하자 일부 지지층이 실망층으로 바뀌었다. 그의 계속된 ‘철수 정치’에 실망을 넘어 아예 지지를 거두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 야당의 잇단 선거 패배, 정치력 부재 등으로 대권주자로서 그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안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총선 승리, 정권교체 등을 명분으로 탈당을 선언했다. 그러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2012년 대선 당시 ‘권력욕’이 없어 대통령감이 아니라던 사람들은 이제 ‘대권욕에 눈이 멀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고, 또 어떤 사람은 대권주자가 되려고 야권분열 위기에도 탈당했다고 비판했다.


    지지자들의 절박한 고민

    이런 주장 내지 비판이 맞건 그르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결국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는 또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결과다. 정치에서 ‘선(善)’은 선거에서 이기는 쪽이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씁쓸한 얘기도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대권주자 안 대표에게 이번 총선은 녹색 신호를 켜줬다. 당 상징색인 녹색처럼 말이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아니, 안심해선 안 된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야권분열을 막기 위한 민심의 ‘안간힘’ 덕분이지, 국민의당이 잘해서 표를 몰아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더민주당이 좋아서 그 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도, 안 대표가 좋아서 비례대표에 표를 몰아준 것도 아니다. 양당 구조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제3의 선택도 있었지만 야권 지지자들의 절박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녹아 있는 선거였다. 이런 절박함을 양당 모두 결코 잊어선 안 된다. 특히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쟁하는 호남 표심은 더민주당에 회초리를 든 것이지 버린 게 아니다. 달리 말하면 국민의당도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안 대표는 이미 여러 번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그는 정치인생 2막을 정말,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치인을 지탱해주는 정당도 없이 혈혈단신 싸우던 시절도 지나갔고, 합당(혹은 입당)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휘둘리던 시절도 이젠 과거형이다. 당을 만들었고 국회 내 세력도 생겼다. 그래서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호남을 넘어 자신의 고향인 부산으로, 그리고 대구·경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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