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1

2016.01.13

한창호의 시네+아트

파시즘과 권위주의 건축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01-12 14: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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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0년 작 ‘순응자’는 파시즘 비판 영화 목록에서 빠짐없이 거론되는 걸작이다. 30년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한창 위세를 떨칠 때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체제에 순응해가는지를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에서 어느 파시스트 간부가 말하듯 사람들은 파시즘을 두려워하거나, 대개는 돈 때문에 순응주의자가 된다. 그는 극히 일부만 ‘진정한’ 파시스트가 될 수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베르톨루치는 그 ‘진정한’이라는 의미마저 비웃는다. 베르톨루치에 따르면 ‘진정한 파시스트’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다른 사람의 무리 속에 함께 있어야 안전함을 느끼는 소인배와 다름없다. 주인공 마르첼로(장루이 트린티냥 분)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무리로부터 소외되는 데 겁을 먹은 신경쇠약자처럼 보인다.
    영화 ‘순응자’는 마르첼로의 결혼 준비로 시작한다. 그가 결혼하는 이유도 약혼녀를 사랑해서라기보다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보이고 싶어서다. 아내와 자식이 있고, 직장에서 일하며,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평범한 사람이 마르첼로에겐 정상인 까닭이다. 말하자면 세상엔 어떤 표준이 있다 믿고, 그 표준의 모델이 되고 싶은 게 마르첼로의 목표다. 그는 파시스트 정부의 비밀경찰이 되려 한다. 베르톨루치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이 파시즘이라고 묘사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그 질서 속에서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것 말이다.
    ‘순응자’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 내용만큼이나 창의적인 표현 방식이 지닌 탁월함 때문일 터다. 베르톨루치는 파시즘 시대에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건축을 이용하고 있다. 파시스트의 건물은 신화시대의 거대한 신전 같다. 영화 안에서 개인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대단히 왜소하게 그려지는 반면, 이들이 머무는 공간은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과장돼 있어서다. 실제로 무솔리니 정부는 ‘최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거대한 전시용 건물을 많이 지었다. 파시스트는 특히 질서와 균형이 수학처럼 엄정한 신고전주의 양식을 선호했다. 질서에 순응 외 그 어떤 일탈도 수용하지 못하는 전체주의자인 까닭일 테다.  
    베르톨루치는 그런 건물을 권력의 억압적 성격에 비유한다. 이를테면 너무 반듯해 질식할 것 같은 로마의 신고전주의 건물 ‘컨벤션궁전(Palazzo dei Ricevimenti e dei Congressi)’을 정신병동으로 이용하는 식이다. 한때 파시스트였던 마르첼로의 부친은 정신병자가 돼 그곳에 수용돼 있다. 말하자면 부친은 아들 마르첼로의 미래 모습이자, 당대 이탈리아 시민의 상징이고, 병원은 미쳐가는 이탈리아의 비유일 것이다.
    베르톨루치는 이렇게 파시즘을 닮은 건물들을 강조해 사람들이 악몽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듯이 그리고 있다. 마르첼로가 걷는 광장, 지나가는 길, 일하는 사무실, 심지어 프랑스 파리로 간 신혼여행에서 강조되는 샤요궁(Palais de Chaillot)과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ero)까지 신고전주의의 단정한 선과 사각형들이 세상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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