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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속수무책 북핵

“협상카드? 웃기지 마라, 갈 길 간다”

모든 공식 무너뜨린 4차 핵실험…‘핵무장 북한’ 받아들이라는 계산된 으름장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협상카드? 웃기지 마라, 갈 길 간다”

“협상카드? 웃기지 마라, 갈 길 간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1월 3일 수소탄 실험 명령서(위)에 서명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이 1월 6일자로 공개한 사진이다. 이에 따르면 김 제1비서는 2015년 12월 15일 수소탄 실험 명령을 내렸고, 1월 3일 최종 명령서에 서명했다. 신화=뉴시스

인터넷 검색 포털사이트 구글의 ‘트렌드’(www.google.com/trends) 항목에 ‘North Korea’를 입력해보자. 전 세계인이 특정 시점에 특정 검색어를 얼마나 많이 찾았는지 시계열적으로 보여주는 이 도구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이를 그간 이어져온 북한의 핵실험 시점을 묶어서 살펴보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2006년 10월 1차, 2009년 5월 2차, 2013년 2월 3차까지 핵실험은 모두 검색 횟수가 상승하거나 요동치던 시점에 이뤄졌다. 물론 핵실험 이후에는 더욱 폭증했지만, 그 앞 1~2개월 역시 상당한 수치까지 올라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월 6일 평양이 감행한 4차 핵실험은 이러한 전례에서 완전히 어긋난다. 2015년 9월 이후 ‘North Korea’에 대한 검색 수준은 평균치 이하를 기록했고, 눈에 띄는 등락조차 없다. 북한에 대한 외부세계의 관심이 통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점에, 아무런 예고 없이, 돌연하게 이뤄진 실험. 핵 능력에 대한 기술적 분석과는 별개로 이러한 특징이야말로 1월 6일 벌어진 일과 관련해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의 결합’은 2006년 이후 북한이 반복해 구사해온 패턴이다. 인공위성 발사용이라 주장하며 로켓을 쏘아 올린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가 이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로 규탄하면, ‘그렇듯 부당한 압박을 계속하니 우리로서는 위력을 과시하는 수밖에 없다’며 핵실험을 감행하는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자의가 아니라 외부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변명. 아무도 믿는 이 없다 해도 최소한의 명분은 만들어놓겠다는 제스처였다.



가장 드라마틱한 대목

앞서 본 대로 핵실험 이전에 이미 북한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늘어나곤 했던 것 역시 이 때문이었다. 로켓 발사로 험악해진 기류가 더 많은 관중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분위기 조성’이다. 번번이 이어진 사전예고는 흥행을 보장하는 마법의 단어였다. 북한은 1차 핵실험 당시에는 엿새 앞두고, 2차에는 26일, 3차 때는 19일 전 미리 실험을 예고했다. 이렇게 끌어모은 무수한 관객 앞에서, 북소리가 멈춰 긴장감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자신감 있게 발사단추를 누르는 철저히 기획된 퍼포먼스였다.
4차 핵실험은 이러한 공식을 철저히 거부한다. 201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장거리 로켓 발사 전망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쏟아져 나왔지만 북한은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당연히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도, 그에 맞선 북한 관영언론의 엄포도 없었다. 최소한의 명분, 시선을 끌어모으는 화려한 제스처는 더는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4차 핵실험 5시간 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으로부터 사전통보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1차 핵실험 당시 북한은 4시간 전 중국에 통보했고 2, 3차 실험 때도 사전에 중국과 러시아, 미국에 통보했다는 게 국가정보원의 설명. 실험이 임박한 시점에서라도 반드시 면피용 통보를 날리던 그간 행동 방식 역시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핵실험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10월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평양 방문 이후 북·중 관계는 누가 봐도 빠른 속도로 개선되는 중이었다. 신의주와 나진·선봉 등 접경지대에서 진행되는 새로운 투자 프로젝트가 큰 폭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현지 인사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3월 중국 인민대표회의, 4월 김일성 생일, 5월 7차 당대회 등 주요 일정을 앞두고 양측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방중 시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북한 외교당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북한은 이를 한꺼번에 뒤집었다. 베이징에 사전통보가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은, 뒤집어보면 중국이 최근 약속한 ‘당근’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의도된 도발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투자 유치가 중요하다 해도 결국은 핵무장보다 아래 단계의 정책목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그널이자, 외교관료들의 몸 단 행보는 ‘노동당의 전략적 셈법’ 속에서 일개 종속변수일 뿐이라는 가장 강력한 방증이다. 함부로 우리의 후견인 노릇을 자임하지 말라는 뺨 때리기다.
포인트는 의도성이다. 국정원과 국방부가 자인했듯, 이전 핵실험을 앞두고 분주히 오가는 장비와 인력을 포착하던 위성사진 분석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전직 청와대 안보당국자는 “핵실험장이 있는 함북 길주군 풍계리는 주변국 정보자산이 24시간 최고 수준으로 가동되는 지역”이라며 “이를 피해 실험을 준비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단순히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더는 당신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갈 길을 갈 뿐이다.’ 4차 핵실험에 담긴 평양의 메시지는 바로 이 한 줄이다. 이제 핵실험은 북한과 국제사회의 갈등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벌어지는 파국의 이벤트가 아니다. 이미 핵무력을 완성한 나라가 이를 더욱 강화하고자 진행하는 통상적인 실험일 뿐이다. 이를 뒤집어보면 기정사실이 된 핵무장을 되돌릴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북한의 본뜻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Badges, Shields, or Swords.’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을 지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가 2002년 발표한 논문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려는 동기를 대외적 위상 강화(배지), 방어용(방패), 공격용(칼)으로 나눠 추적한 것. 이 시기만 해도 평양이 핵개발을 통해 추구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는 논란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반대급부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이른바 ‘협상카드론’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설이었다.
그간 로켓 발사 및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이를 북한 내부나 주변국 정치 일정과 연계해 해석하는 접근 방식은 관련국 정부와 학계를 막론하고 ‘가장 약발이 먹히는’ 분석이었다. 이번 핵실험을 두고도 미국 대통령선거 일정이나 한국의 4월 총선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언론을 장식한 바 있다. 주변국들의 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들 나라의 정치 일정에 맞춰 실험 시기를 결정한다는 전제였던 셈이다.


“협상카드? 웃기지 마라, 갈 길 간다”

북한이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1월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기상청 국가지진화산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진원지 파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동아일보

‘ICBM+핵’ 대신 ‘SLBM+핵’

그러나 다수 전문가는 이번 실험을 계기로 이러한 관점이 효력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조명록 당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워싱턴에 보내며 공들인 막판 협상이 2000년 미국 대선 이후 어떻게 붕괴했는지 똑똑히 기억하는 평양이, 역시 임기 종료가 다가오는 오바마 행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려 했을 개연성은 제로(0)에 가깝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도발적 행보가 남한 선거에서 결코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경험 역시 충분한 만큼 총선을 의식한 결정이었다는 분석도 아귀가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으로부터의 당근도, 미국·한국과의 협상도 관심이 없다면 남는 것은? 이제 평양에게 핵은 오로지 ‘칼’일 뿐이다.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어모아 이름값을 올리는 일이든, 이를 바탕으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일이든 더는 관심사가 아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4차 핵실험의 주요 특징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봉쇄하고자 하는 김정은 체제의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북한이 2015년 12월 21일에도 추가 실험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가장 날카로운 칼’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은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 직후에 실시된 1~3차 핵실험이 핵탄두를 소형화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하는 한 축을 위해서라면, 이번 실험은 이를 SLBM에 장착하는 또 다른 옵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완벽한 핵 보유국’의 지위를 굳히는 것이야말로 지금 북한의 최종 목표라는 것이다.
서로를 핵으로 겨누는 상황이 올 경우, 상대의 핵 공격을 받은 후에도 일부나마 살아남아 보복공격을 가할 수 없다면 상대는 손쉽게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핵폭탄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 쌓아 올린다 한들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SLBM은 이러한 ‘제2격(Second Strike)’ 능력의 상징적 무기체계다. 지상에 쌓아 올린 미사일이 모두 파괴된다 해도, 깊은 바다를 누비는 잠수함은 추적을 피해 살아남아 보복공격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ICBM과 SLBM, 전략폭격기로 구성되는 ‘핵전력 3축 체제(Nuclear Triad)’가 모든 핵무장 국가의 목표가 됐던 배경이다.
4차 핵실험 직후 조선중앙TV를 통해 발표된 북측의 공식성명 말미에 등장하는 다음의 문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근거다.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관련 수단과 기술을 이전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언뜻 간단해 보이는 이 문구에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래 국제사회가 쌓아올린 핵 통제체제의 두 핵심 명제, ‘선제 불사용(No First Use)’과 ‘확산 방지(Non-proliferation)’가 숨어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라는 기존 핵 보유국에게 부과한 양대 의무다.
스테판 해거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는 이 문장에 기존 5개국과 같은 지위를 갖는 ‘책임 있는 핵 보유국’을 자임하려는 평양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줄여보려는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북한이 그간 NPT 체제를 집요하게 분석해 만들어낸 복잡한 계산식이 깔려 있다는 것. 기존 핵 보유국에게 부과된 의무를 준수할 터이니 우리에게도 같은 대접을 해달라는 요구다. 해거드 교수가 “핵무기는 이제 북한 체제와 노동당의 DNA가 됐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2016년 북한 당국은 제7차 당대회 성공을 위해 진력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처한 국내외적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핵 보유 선언으로 대외관계가 막혀 있고 국제적 거시경제지표가 불안해 외화벌이 수입의 감소와 내부 투자 수요 부족이 예상된다. (중략) 김정은 정권은 정책운용의 동력과 수단을 보완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1월 1일 김정은 제1비서의 육성 신년사를 분석한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의 결론이다. 경제와 주민생활 개선에 관심을 쏟고 있는 최근 기조를 감안하면 남한이나 국제사회로부터의 투자 유치를 위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은 최근까지 국내외 대부분 북한 전문가들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협상카드? 웃기지 마라, 갈 길 간다”

동아일보

마지막 기대조차 포기하게 만들려는

불과 닷새 뒤, 이러한 전망은 모두 어긋났다. 핵을 팔아 경제를 되살리는 게 아니라, 핵을 기정사실로 만든 다음 그 위에 경제를 세울 것이라는 메시지가 가장 충격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다. 제재냐 대화냐, 채찍이냐 당근이냐라는 오랜 논쟁은 그 앞에서 갈 길을 잃는다. 미국 측 상황까지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간단치 않다. 북한의 도발적 행보를 명분 삼아 한미일 삼각동맹의 큰 틀을 쌓아 올림으로써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적, 외교적 토대를 마무리 짓는 것이야말로 최근 워싱턴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 섣불리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설 이유도, 얻을 수 있는 이익도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말 그대로 막다른 골목. 결국 이번 핵실험은 이를 현실로 혹은 일상으로 받아들이라는 평양의 다그침이다. 20년을 훌쩍 넘긴 북핵 문제가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선포하는 변곡점이다. 그 누가 뭐라 하든 구애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이 같은 선언은, ‘되돌릴 수 있다’는 마지막 기대조차 흩어버리고자 철저히 계산된 한 수다. 북한이 이미 뼛속 깊이 체화하고 있는 게임의 속성을 우리만 미처 가늠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주간동아 2016.01.13 1021호 (p22~25)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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