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4

2023.04.07

“동물병원 갈 때마다 수십만 원”… 반려동물 진료비 정말 비쌀까

[이학범의 펫폴리] 반려동물 건강보험제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합의 안 돼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3-04-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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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동물병원의 모든 진료 항목은 비급여라고 볼 수 있다. [GETTYIMAGES]

    동물병원의 모든 진료 항목은 비급여라고 볼 수 있다. [GETTYIMAGES]

    “어떻게 사람보다 강아지 병원비가 더 비싸죠?”

    반려견 보호자들이 제게 종종 하는 말입니다. 저도 수의사 출신이지만 반려동물이 아파서 동물병원에 가면 비용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저는 하부요로기증후군(음수량 부족으로 인한 비뇨기계 질환)을 앓는 반려묘 ‘루리’를 기르고 있는데요. 다니는 동물병원이 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곳이라 조금 할인해주는데도 갈 때마다 수십만 원씩 병원비를 지출하곤 합니다.

    비싼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최근 정부는 동물병원의 수술비 사전고지, 진료비 게시 등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반려동물 진료비에 관한 정보 부족 문제는 해소해줄지언정 진료비 자체를 낮추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됩니다. 사실 한국의 반려동물 진료비는 저렴하기 때문이죠. 진료비가 비싼 게 아니고 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반려동물 진료비는 모두 비급여

    어떤 비용이 싼지, 비싼지는 상대적입니다. 5만 원이면 비싸고 4만 원이면 싼 게 아니죠. 그렇다면 반려동물 진료비는 무엇과 비교해 비싸다고 하는 걸까요. 아마 사람 진료비일 겁니다. 사람이 감기에 걸렸을 때 내과에서 진찰받고 약국에서 약을 지으면 1만 원이 채 안 드는데,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을 진료하면 아무리 가벼운 질병도 최소 몇만 원은 나오니 비싸다고 느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지출한 1만 원이 진료비와 약값의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내원자는 대부분 병원, 약국에서 진료비와 약값의 일부만 부담합니다. 국가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죠.

    소득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매달 국민건강보험료를 냅니다. 고소득자는 1년에 건강보험료만 수천만 원을 내기도 합니다. 직장인의 경우 직장에서 보험료의 절반을 내줍니다. 직장인 홍길동 씨가 매달 20만 원씩 건강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다면 실제론 홍길동 씨 앞으로 그 2배인 40만 원의 건강보험료가 납부되는 셈이죠. 즉 홍길동 씨는 1년간 병원이나 약국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아도 480만 원을 의료비로 내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은 소득에 비례해 일정 금액을 매달 건강보험료로 지출하기 때문에 몸이 아플 때 진료비와 약값의 일부(본인부담금)만 내고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진료비 계산서(영수증) 법정 서식. [이학범 제공]

    진료비 계산서(영수증) 법정 서식. [이학범 제공]

    반면 반려동물 진료비로 1년에 480만 원을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사람과 반려동물의 진료비를 정확히 비교해보고 싶다면 병원에서 받은 진료비 계산서(영수증)를 한 번 펼쳐보기 바랍니다. 계산서의 급여, 비급여 항목 중 급여는 ‘일부 본인부담’ ‘전액 본인부담(①)’으로 나뉘고, ‘일부 본인부담’은 다시 ‘본인부담금(②)’과 ‘공단부담금(③)’으로 구분됩니다. 비급여는 ‘선택진료료(④)’와 ‘선택진료료 이외(⑤)’로 나뉘고요. 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항목을 뜻하는데요. 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반려동물은 모든 진료항목이 비급여라고 보면 됩니다.

    사람이 병원에 지불하는 진료비 총액은 ①+②+③+④+⑤입니다. 내 주머니에서 나간 1만 원보다 액수가 훨씬 크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진료항목에서 사람과 반려동물의 진료비를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의 자궁적출 수술과 암컷 반려견의 중성화 수술을 견주는 식입니다. 이렇게 비교하면 모든 진료항목에서 사람 진료비가 더 비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은 건강보험제도가 없는 탓에 진료비가 더 많이 드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죠.

    여기서 반려동물도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제가 반려동물 보호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이런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매달 반려동물 건강보험료를 내는 대신 동물병원에 갈 때 진료비 부담이 줄어든다면 납부할 의사가 있습니까.” “그렇다”는 응답도 있었지만 “사람 건강보험료도 내기 힘든데 무슨 강아지 보험료까지 내야 하느냐” “우리 집 강아지는 건강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동물병원에 간 적이 없다”는 응답도 많았습니다. 반려동물 건강보험제도에 대해선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도입이 어렵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설 펫보험·적금 가입 추천

    한국의 반려동물 진료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한 편입니다.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보다도 싼 편이죠.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연구용역 결과(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이나 독일보다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이 적습니다. 또 한국동물병원협회가 2018년 한국 동물병원과 대만·중국·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스리랑카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각각 비교한 결과 한국 동물병원은 반려견 종합백신(DHPPL), 제왕절개 수술, 슬개골 탈구 수술, 중성화 수술 등 가격이 이들 나라보다 더 저렴하거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한국의 반려동물 진료비가 싸다고 해서 보호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2021년 실시한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소비자 경험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는 보호자는 10명 중 8명(80.7%)이었습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만큼 진료비 부담을 완화해줄 정책이 필요한 상황인 거죠. 그럼에도 ‘동물병원 진료비는 비싸다’는 잘못된 전제하에서 정책을 만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정부의 좋은 정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사설 펫보험 또는 동물진료비용 적금 등에 가입해 비용 부담을 덜어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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