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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옮기는 건 한 시절의 막을 내리는 사건 [SynchroniCITY]

  •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집을 옮기는 건 한 시절의 막을 내리는 사건 [SynchroniCITY]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면 옛 추억과 마주하곤 한다. [GettyImages]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면 옛 추억과 마주하곤 한다. [GettyImages]

현모 진짜 땀이 줄줄 나네요.

영대 그러게요. 이사 준비하느라 힘드시겠어요.

현모 거의 일주일째 밤마다 혼자 매미소리 들으며 해 뜰 때까지 짐을 정리했어요. 낮에는 더워서 못 하겠더라고요.

영대 많이 버리셔야 해요. 미국에서 귀국할 때 이사 준비하던 생각이 나네요.



현모 사실 4년밖에 살지 않은 신혼집이라 만만하게 봤어요. 그런데 그동안 늘어난 살림살이뿐 아니라, 남편의 40년 인생이 집 안 곳곳에서 나오더라고요. 저는 결혼할 때 짐을 대부분 친정에 두고 왔는데 남편은 옛날 물건을 죄다 신혼집으로 갖고 들어왔나 봐요. 마치 유물처럼 끝도 없이 나오네요.

영대 라이머는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인가 보죠?

현모 네. ㅠㅠ 본래 쓰던 남편 옷이랑 신발이 너무 많아요. 게다가 플로피디스크 시절의 오래된 잡동사니도 적잖고요. 심지어 전 여친들 흔적까지….

영대 와 대박. ㅎㅎㅎㅎ 아니, 그런 건 남자가 깔끔하게 처리 좀 했어야지! 현모 님 멘털 갑이네요. 보자마자 뭐라고 안 따지셨어요?

현모 하아…. ‘싱크로니시티’에는 적절치 않은 대화인 것 같으니 그 얘긴 따로 만나 막국수 먹으면서 해요. ㅎㅎ 그런데 이사를 준비하는 며칠간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이 스쳤어요. 이렇게 이삿짐 몇 번 싸고 풀면서 인생이 흘러가는구나 하는 무상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영대 그렇죠. 이사 한 번 할 때마다 우리가 평소 쓸데없이 물건을 많이도 사 모았다고 느껴요. ‘미니멀리스트’로서 각성이랄까요. 우리 짐의 3분의 2 정도는 사실 필요 없는 것들일걸요?

현모 맞아요, 맞아요. 그래서 저도 남편이 ‘추억’ ‘역사’ 운운하며 쓰지도 않는 물건에 집착하기에 ‘그럼 나중에 무덤까지 안고 들어갈 셈이냐’고 했어요. ㅋ
영대 ㅋㅋ 정작 물건이 없어져도 모를걸요?

현모 직접 소매 걷어붙이고 정리해보면 살림살이가 전부 짐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데, 남편은 남들이 세팅을 다 끝내면 옆구리에 다이어리 끼고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는 스타일이라…. 지금 집으로 이사 올 때도 뒷정리는 시어머님이 대신해주셔서 이사 힘든 걸 모르더라고요.

영대 현모 님은 그래도 바로 옆 동네로 가시잖아요. 저는 바다를 건너와야 해 짐을 거의 다 처분했거든요. 게다가 긴긴 유학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후련한 느낌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사 준비 막바지에 아내와 같이 재활용센터에 가 싸구려 가구를 막 던지다시피 처분한 기억이 나요.

현모 ㅋㅋ 마치 수능 끝난 수험생이 참고서 버리듯이?

영대 네. ㅋㅋ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수백 장도 더 됐는데 고민 끝에 몇 장만 엄선해 챙겼어요. 나머지는 사진으로 찍어두고요.

현모 오, 잘 하셨어요! 우리 집은 남편이 아티스트이다 보니, 더는 사용하지 않는 VHS(가정용 레코더 방식) 비디오테이프와 CD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이걸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하든가 해야 할 텐데 엄두도 못 내고 있답니다. ㅜㅜ

영대 기술이 계속 발달하니까 안 쓰는 물건도 늘어 쓰레기가 덩달아 많아지죠. ㅠㅠ

현모 매일 먼지에 파묻혀 땀 흘리다 보니 또 깨달은 점이 있어요. 이삿짐 정리는 몸이 힘든 것 못지않게 ‘정신노동’으로서도 강도가 높다는 점이에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나간 순간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회상하는 계기잖아요. 인생의 애틋하고 소중한 장면들과 그때그때 작별하느라 오히려 몸의 피로는 희미하게 블러 처리가 되면서 잊히는 느낌이랄까…. 팔다리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머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깊은 명상에 빠지는 것 같았어요. 내 유품을 손수 정리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요.

영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미국 집에서 30대를 오롯이 보냈잖아요. 막상 이사하려니까 후련함 못지않게 내 인생 10년의 한 챕터를 마감하는 감회가 정말 남달랐어요. 시애틀을 떠나는 것도 섭섭했고, 딸들을 거기서 다 낳아 키웠으니 아기 때 쓰던 물건을 볼 때면 특히 울컥했죠. 여하튼 온 가족이 복잡하고 뭉클한 마음이 들어 이사 전날 밤 잠도 잘 못 잤어요. 집을 나서면서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열어둔 채 나오는데, 그 감정이란….

현모 그랬을 것 같아요. 어쩌다 예전에 쓰던 외장하드에서 추억 담긴 사진을 봐도 갑자기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드는데, 이번엔 그런 느낌을 훨씬 입체적으로 경험했달까?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제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개념이 시간의 흐름이잖아요. 그걸 진짜 오감으로 몸소 체험했어요.

영대 아마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그 시간의 흐름이 훨씬 크게 다가올 거예요. 나 위주로 돌아가는 시간은 실감도 덜 하거든요.

현모 그땐 눈물 나겠죠. ㅜㅜ 그래도 새로운 환경,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도 있어요. 무엇보다 친정 가까운 곳으로 가니까 익숙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편안해요.

‘넷플릭스’ 프로그램 ‘THE 정돈된 라이프’ 속 한 장면. [사진 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프로그램 ‘THE 정돈된 라이프’ 속 한 장면. [사진 제공·넷플릭스]

영대 이사 가서 짐 푸는 것도 한참 걸릴 텐데, 도움이 필요하시면….

현모 왜요, 와서 거들어주시게요?

영대 아뇨. 중간 중간 땀 식히시라고 시원한 막국수 한 그릇 사드릴게요.

현모 아하하, 그러고 보니 이사 가면 그 막국숫집도 가까워지네요. ㅎㅎㅎㅎ

영대 제 아내도 시트콤 ‘프렌즈’ 속 모니카의 성격을 닮은 면이 있어 이삿짐 분류는 본인이 하고 저는 아내가 시키는 일만 하거든요. 힘쓰는 단순노동이요.

현모 저도 물건을 이리저리 배치하고 분류하는 걸 은근히 좋아해요. 전에 얘기 안 했나요? 제가 출연자의 집을 정리, 정돈해주는 ‘넷플릭스’ 프로그램 ‘THE 정돈된 라이프’(원제 ‘Get Organized with The Home Edit’)를 정말 좋아해 아마존에서 관련 도서까지 사봤다고 했잖아요. ㅋㅋ 시즌2 목 빠지게 기다리는데 왜 안 나오지….

영대 아, 기억나요. 온갖 인테리어 관련 프로그램을 섭렵하셨다고. ㅋ

현모 거창한 인테리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지만, 적어도 빨주노초파남보 색깔별로 줄 맞춰 정리하고 이런 건 재미있어 해요. ㅋㅋ

영대 이번 주에 이사한다고 했죠? 폭염에 코로나19까지 기승이라 고생하시겠네요. 사람이 근거지를 옮긴다는 건 단순한 지리적 이동뿐 아니라 집 속에 담긴 한 기간, 한 시절의 막을 내리는 사건이잖아요. 그야말로 ‘역대급’ 사건이거든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막상 이사를 가잖아요, 그럼 옛 집에서 보낸 기억이 흐릿해져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현모 맞다! 한 가지 팁도 알게 됐어요. 원래 모르던 사실인데, 이사 날짜에 따라 포장이사 비용도 다르더라고요. 매달 마지막 금요일은 원래 이사 수요가 많은데, 7월은 방학까지 겹쳐 가격이 껑충 올라간 거 있죠. 저는 이사 비용이 언제든 같은 고정가인 줄 알았어요. 프리랜서라 다른 평일에 이사해도 됐는데 말이죠. ㅠㅠ

영대 아, 그래요? 저는 당분간 이사할 일이 없지만 참고할게요. ㅋㅋㅋ

현모 부럽다. 저도 빨리 완전히 터 잡고 정착하고 싶네요. ㅋㅋ

영대 이사 한 번 하면 등골이 휠 정도니 다들 입 모아 말하잖아요, ‘절대 두 번 다시 이사 안 한다!’고.

현모 앗!! 저 방금 알았어요. 싱크로니시티도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영대 엥? 무슨 말씀이세요?

현모 달력을 보니까 지금 사는 집에서 쓰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새 보금자리에서 만나요~~~^^.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주간동아 1300호 (p56~57)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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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11호

2021.10.22

전대미문 위기 앞 그리운 이름, ‘경제사상가’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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