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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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서울대 무기계약직 관리자를 왜 악인으로 내모나

‘미화원 사망’ 두고 이해관계 따라 목소리 제각각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21-08-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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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미화원 사망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시스]

    7월 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미화원 사망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시스]

    6월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기숙사 관악학생생활관에서 2019년부터 일한 여성 미화원 한 분이 돌아가셨다. 해당 기숙사 미화원의 근무시간은 월~금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그런데 ‘불금’엔 쓰레기가 늘어나기에 토·일요일 중 편한 때 4시간을 택해 추가로 일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이는 시간외근무이므로 수당 1.5배가 지급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개입 후 이 근무 형태에 대해 ‘강요다, 아니다’ 논란이 있었다. 다만 해당 근무는 ‘선(先)미화원 신청, 후(後)학교 승인’ 구조로 이뤄졌기에 강요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적잖다. 일이 많겠지만 미화원은 월요일마다 불금과 주말에 쌓인 쓰레기를 청소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1.5배로 책정된 시간외수당은 받지 못한다. 기숙사 입사생이 내는 관리비는 한정돼 있으니, 학교 측은 시간외근무 증가를 마냥 허용할 수도 없어 승인제로 시행했다.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보면 6월 26일 오전 8시에 출근한 고인은 12시 직전 일을 마친 듯 휴게실에 들어갔다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말았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으로 추정됐고, 유족은 부검을 원하지 않았다. 동료 미화원 중엔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 분회장이 있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고 한다. 조문 갔던 서울대 한 행정 관리자는 유족으로부터 “나도 2018년부터 서울대 한 건물에서 시설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고인은 아프리카와 동유럽에서 약 15년간 선교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산재 신청을 했으면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이니 민주노총 도움받겠다”

    산업재해(산재) 인정은 근로복지공단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감사원을 비롯한 숱한 기관의 감사는 물론, 국회 국정감사도 받기에 공정하게 심사해야 한다. 유족이 산재 신청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행정 관리자는 “협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7월 6일 민주노총이 다음 날 서울대 교정에서 미화원 사망 관련 집회 및 기자회견을 한다고 밝혔다. 해당 행정 관리자는 유족에게 전화를 걸었고 “문재인 정권이니 민주노총의 도움을 받아 산재를 인정받으려 한다”는 요지의 말을 들었다. 7일 민주노총이 서울대에서 학교 측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 유족은 “근로자는 근로하러 온 것이지 죽으러 출근한 게 아니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해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일부 미화원이 “시간외근무를 강요받았다” “영어와 중국어 시험을 치러야 했다”며 이른바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해 기사화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삐뚤삐뚤 쓰신 답안지 사진을 보며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정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도 서럽지 않은 세상을 꼭 이루겠다” “악독한 특정 관리자 한 명의 문제는 아닐 것” “사람이 사람에게 함부로 해도 되는 일터, 그래도 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 등의 내용이 담긴 글을 올리고 7월 11일 서울대를 찾아 유족 등을 만났다. 이 지사는 2014년 미화원으로 일하던 자신의 여동생도 화장실에서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며 공분했다.

    7월 9일 구민교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한 분(6월 26일 숨진 서울대 미화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역겹다”는 글을 올렸다. 
[페이스북 캡처]

    7월 9일 구민교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한 분(6월 26일 숨진 서울대 미화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역겹다”는 글을 올렸다. [페이스북 캡처]

    그러자 서울대 학생처장(7월 12일 사임)이던 구민교 교수가 SNS 계정에 “나도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와 한마디 하겠다”며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역겹다. 언론에서 마구잡이로 유통되고 있는 악독한 특정 관리자 얘기는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구 교수의 글만 문제로 삼았기에 그는 학생처장직을 사퇴하며 다시 “글을 올린 가장 핵심 취지는 돌아가신 분의 사정이 안타깝더라도, 유족의 사정이 딱하더라도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일방적 주장만으로 또 한 명의 무기계약직 노동자인 중간관리자를 가해자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썼다.



    숨진 미화원 등을 관리한 안전관리팀장은 민주노총 가맹조직인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 소속이다. 그는 6월 1일자로 팀장이 됐는데 대체로 평이 좋았다고 알려졌다. 미화원과 가깝게 지내고자 사비로 식사를 사고, 회의 때 미화원이 원하는 음료를 주문받아 마련하는 성의도 보였다. 그는 대학 기숙사에서 일하는 만큼 간단한 외국어는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영어와 중국어 시험을 치르게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화원은 평가 대상인 서울대 직원이 아니기에, 이러한 시험은 인사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고인은 외국 생활을 해서인지 오히려 이 시험과 교육을 즐겼다는 주장도 있다. 팀장을 지지하는 미화원들은 기자들을 만나 민주노총 측과 다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때인 7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TF 소속 이해식, 이탄희, 장철민 의원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을 만나 “우리도 발로 뛰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키고 법·제도적 개선을 이루고 있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매우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울대가) 마치 ‘설국열차’ 같다. 서로 다른 기차 칸에 살면서 다른 칸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주장한 뒤 돌아갔다.

    “민주노총 행태 실망스럽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과 일부 언론은 민주노총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서울대 한 행정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기업 노조 위주인 민주노총이 왜 서울대 미화원 사망 사건에 집중하는가. 숱한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당하는 근로자가 많은데, 왜 그들에게는 집중하지 못하는가. 서울대와 싸워 이겨야 주목받기 때문인가. 해외 견문이 넓고 종교 활동도 열심히 한 고인은 성실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는 분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다 해서 애꿎은 또 다른 학교 구성원을 악인으로 만들 수는 없다. 나도 한때 전국공무원노조 소속원이었는데 민주노총의 행태가 많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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