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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광화문 기동전보다 생활 속 진지전이 더 중요하다” [진중권의 직설19]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광화문 기동전보다 생활 속 진지전이 더 중요하다” [진중권의 직설19]

  • ‘주간동아’는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국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긴 기고문을 매주 화요일 오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 〈편집자 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1]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1]

진보를 겨냥한 보수의 비판 중에 빗나간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좌파들이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 전략에 따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좌익세력이 정당과 대학, 문화계와 시민단체 등 사회 곳곳에 침투해 진지를 구축하고는 이 나라를 적화시킬 결정적 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념적 강박이 낳은 신경증이라 할 수 있다. 그람시는 유로코뮤니스트다. 그의 ‘옥중수고’는 운동권 일각에서 교양으로 읽었을 뿐, 그의 사상이 운동권에 진지하게 수용된 적은 없다. 운동권 주류의 이념은 주체사상(NL) 아니면 마르크스주의(PD)였기 때문이다.

그람시의 옥중수고

10월3일 서울 광화문에 경찰차벽이 설치돼 있다. [동아db]

10월3일 서울 광화문에 경찰차벽이 설치돼 있다. [동아db]

‘그람시’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진지전’의 개념이다. 사실 그람시의 철학은 정통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수정주의 사상이다. 이 ‘수정’이 필요했던 것은 서구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이 마르크스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서유럽의 선진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생각보다 훨씬 유연했다. 혁명적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 보이지 않으니, 봉기로 단번에 승부를 내는 ‘기동전’에서 장기적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진지전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좌파가 진지전 전략을 구사한다는 주장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좌파가 진지전으로 전환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PD(민중민주)계열은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NL(민족해방)계열은 고난의 행군 이후에 기동전을 통한 혁명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 사이에 나이가 차서 사회의 곳곳에 진출해 생활 속에서 가능한 소소한 실천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게 된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진지전의 효과인 셈이다. 이제 이들은 결정적 시기에 수행할 기동전을 무력혁명이 아니라 촛불혁명으로, 일상시에는 대선으로 이해한다. 

그 사이에 기동전과 진지전의 개념도 혁명론의 성격을 잃고 부르주아 정치를 설명하는 평범한 용어로 변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당을 수습한 뒤 “끈질긴 진지전”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나라당에서도 당시 소장파였던 박형준 의원 역시 이제 전당대회와 대선후보 경선을 계기로 “진지전 속 기동전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도 “교조적 수구 우파가 아니라 개혁적 중도 우파가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14년이 지나도록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당에 아무 발전도 없었던 모양이다.

기동전을 하는 방법

보수가 기동전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황교안 대표 시절 자유한국당은 툭하면 거리로 뛰쳐나갔다. 물론 그것으로 국민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 무용함을 보고도 보수는 여전히 거리집회에 집착한다. 수십만이 모인 작년 광화문 집회의 기억 때문일까? 그 집회도 실은 중도를 끌어들이는 데에 실패했다. 거리집회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코로나 감염의 위험도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8‧15 집회가 열렸고, 거기서 발생한 감염사태로 인해 보수는 범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개천절과 한글날에 다시 집회를 열겠다고 한다. 



국민의 입길이 막혀 있던 독재정권 하에서는 진실을 말하려면 거리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실을 알릴 채널이 널려 있다. 보수신문도 있고, 종편도 있고, 유튜브 채널도 있다. 시위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개천절 집회를 금지하는 데에 국민의 70.3%가 찬성했다. 집회 자체에 반대하는데, 거기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사람이 있겠는가? 집회를 열어봤자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만 뒤집어쓸 뿐이다. 기동전을 하려면 최소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으로 해야 한다. 

이제 보수도 질서 있게 평화롭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이브 스루 시위’의 제안은 적절했다. 국민은 ‘추미애 물러가라’는 구호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외려 국민의 과반은 그의 사퇴를 원한다.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그 구호를 한데 ‘모여서’ 외치는 것이다. 집회 인원에 집착할 필요 없다. 내용과 형식만 적절하면 차량 9대로도 호응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추미애 장관과 조국 전 장관의 사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일은 삼갔어야 했다. 아무리 공인이라도 사생활은 보호해 줘야하기 때문이다. 금도를 넘은 행위는 제 주장의 정당성만 깎을 뿐이다. 

집회에 태극기는 필요 없다. 한 국가의 상징을 시위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 아니다. 태극기가 국민 전체의 것이지 특정한 이념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것은 ‘우리가 곧 대한민국이요, 우리와 다른 자들은 반국가분자’라고 말하는 다른 방식일 뿐이다. 국민들은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집회에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는 것이다. 행여 태극기를 흔든다고 국민이 자신들을 애국자로 봐줄 거라 착각하면 곤란하다. 소중한 국가의 상징을 자신들의 광신성과 편협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써먹는 이들에게 국민은 그냥 짜증이 날 뿐이다.

기동전에서 진지전으로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의 사태는 젊은 보수의 문제를 보여준다. 사진은 논란이 됐던 국민의힘 중앙청년위 간부들의 포스터.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회 페이스북]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의 사태는 젊은 보수의 문제를 보여준다. 사진은 논란이 됐던 국민의힘 중앙청년위 간부들의 포스터.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회 페이스북]

지금 보수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기동전이 아니라 장기적 진지전이다. 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빼앗긴 상태에서 기동전은 제한적 의미만 가질 뿐이다. 탄핵 촛불집회의 경우 진보만이 아니라 중도층과 보수의 절반이 참여했다. 그 정도로 중대한 도덕적 이슈가 존재하지 않는 한, 기동전으로 승부를 낸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일상적인 시기에 기동전은 진지전의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 하지만 보수층 일각에서는 지금이 정권의 위기라는 허황한 환상에 사로잡혀 무리한 전면전을 펼치려 한다. 그 과격함은 보수를 더욱 더 소수로 만들 뿐이다. 

보수는 이 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빼앗겼다. 이는 당장 인적 자원의 결핍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수에 ‘차기’가 안 보인다. 기성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진영은 희망이어야 할 젊은 세대마저도 처참한 수준이다. 얼마 전 국민의힘의 젊은 당협위원장이 “달님은 영창으로”라는 구절이 적힌 플래카드를 거리에 내걸었다. 사석에나 어울릴 소리를 당직자가 당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대통령을 모욕하려고 한 모양인데, 그런 행위는 제 당의 이미지만 깎아먹게 된다. 제 행위의 정치적 효과에 대해 기초적 판단조차 안 되는 사람이라면, 절대 정치를 시켜서는 안 된다. 

이번 중앙청년위의 사태는 젊은 보수의 문제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아예 신정국가로 만들려는 모양이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했던 이명박, 초파일날 절에서 교회장로로 행동했던 황교안이 무색할 정도다. 또 다른 청년은 포스터에 이렇게 적었다. “경제대공황이 온다고 믿고 곱버스(곱+인버스의 합성어: 주가 하락분의 2배로 수익을 내는 증시 상품을 일컫는 은어) 타다가 한강 갈 뻔함.” 한 마디로 내가 대박을 칠 수 있도록 나라 경제가 망하기를 빌었다는 얘기다. 이게 정치하는 사람의 자세인가? 게다가 한강에서 목숨을 던진 이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어디 가벼운 농담의 소재로 소비할 성격의 것인가? 

이는 보수진영의 젊은 세대마저 정치에 필요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수의 기성세대에게 이들이 보고 배울 게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윗세대나 젊은 세대나 애초에 이게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청년들은 그 포스터로 뭔가 젊은 세대의 발랄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바탕 자체가 잘못 세팅되어 있다 보니, 그 발랄함이 발칙함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바탕 자체를 탄탄하게 다지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진지전을 요하는 일이다. 그런데 보수에는 그 진지전에 들어갈 역량조차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광화문의 기동전이 아니라 생활 속의 진지전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부족한 게 아니다. 부족한 것은 그 비판의 대안이다. 대안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지금 보수가 뒤집어쓴 부정적 이미지도 수십 년에 걸쳐서 형성된 것. 그 이미지를 벗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게다. 보수는 진지전의 헤게모니를 빼앗겼다. 그러니 정치적 의제설정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보수에는 권위 있는 시민단체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광화문으로 뛰쳐나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기동전에 쏟아 붓는 열정의 절반만 진지를 구축하는 데에 돌려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주간동아 1260호 (p16~19)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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