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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10명 모임 말라’는 공문, “코로나 심각성 지표다”

[인터뷰] 이재갑 한림대 교수 직접 국민청원 나서 ‘질병관리청’ 사수…“CDC 이상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K-방역’”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의료인 10명 모임 말라’는 공문, “코로나 심각성 지표다”

질병관리본부(정은경 본부장)가 ‘무늬만 승격’ 위기에서 벗어났다. 현재 질본 산하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한 뒤 질병관리청을 출범시키려고 한 행정안전부 안(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자, 당정청이 보건연을 질병관리청 아래에 그대로 두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재갑(46)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문 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지시를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그는 행정부 안이 발표된 이튿날인 6월 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질병관리청 승격,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란 제목의 글을 직접 올렸다. 복지부가 보건연 및 신설되는 국립감염병연구소까지 가져간다면, 질병관리청이 반쪽짜리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행안부 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강남성심병원에서 만난 이 교수는 “나는 총대를 멘 것일 뿐, 국민 여론이 행안부 안을 멈춰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가 ‘보건부’ 언급조차 안 하는 이유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조영철 기자]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조영철 기자]

-의료계 단체 입장문도 아니고, 어쩌자고 혼자서 정부에 정면으로 대들었나. 

“6월 3일 행안부 발표를 본 뒤 여기저기서 얘기를 들었다. 복지부가 보건연 및 국립감염병연구소를 가져가는 대신 질병관리청에 ‘공중보건연구소’ 같은 최소한의 연구 조직을 따로 만들어달라고 질본이 요청했던 것 같다. 그런데 행안부 발표에는 이 얘기가 쏙 빠졌다. 그러면 질병관리청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행안부와 복지부에 의지가 있다면 ‘질병관리청 산하 연구소 신설 추진’이라고 언급했을 법도 한데, 그마저도 없었다. 사회적 논의의 장(場)이 마련됐으면 하는 마음에 국민청원을 올렸다. 생각보다 파장이 커서 놀랐다.” 

-질병관리청 승격은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발표한 바이기도 하다. 청 승격을 앞두고 정부가 의료계 의견도 취합했을 텐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이종구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를 주축으로 감염병 관리 거버넌스(Governance)와 관련한 정책 안을 준비해왔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질본의 연구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료계 의견이 반영됐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번 행안부 안은 이것과 전혀 별개여서 의료계의 여러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질본 승격과 관련해 “내부 갈등은 없다”고 했다. 

“의료계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끝난 후 일어난 일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 ‘보건부’ 독립 등 지금 나오는 얘기가 다 나왔다. 하지만 복지부 등에서 반발이 심해 결국 질본 본부장을 차관급으로 승격하고, 역학조사관 인원을 늘리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의료계는 ‘이번에도 흐지부지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강하다. 그래서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보건부 독립은 ‘말도 꺼내지 말자’는 데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다. 질본도 우선 ‘청으로 독립’이라는 실리를 취하기 위해 (복지부에) 양보할 건 다 한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복지부에 보건 분야를 전담하는 2차관이 신설된다. 

“2차관은 의료계도 희망했던 바다. 2차관이 행정을, 질병관리청장이 감염병 정책을 전담한다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구를 2차관에 앉히느냐다. 보건의료 전문가면서 동시에 행정에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 그래야 질병관리청 역할을 십분 이해하면서 보건 전담 차관으로서 역할을 잘 할 것이다. 이 자리에 또 행정고시 출신을 앉힌다면 의료계 반발이 아주 심할 거다. 나 또한 가만있지 않을 거다.”

질본 경력 ‘발판’ 삼아 복지부로 이직

질본이 복지부 인사 적체 해소에 활용된다는 것은 의료계가 예전부터 가져온 불만이다. 이 교수도 국민청원에 올린 글에서 ‘질본의 국장과 과장 자리에 행시 출신을 내려 보내던 악습을 보건연과 국립감염병연구소에서 하시려는 건가요?’라고 썼다. 

- 현재 질본에 ‘행정고시 출신’이 얼마나 되나. 

“국장 할 사람 중에 감염병 전문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메르스 사태 때 국장으로 승진해야 할 몇몇이 질본을 떠났다. 질본 과장들도 3분의 1이 행시 출신 복지부 공무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몇몇 과장이 보건의료 분야 출신으로 ‘조용하게’ 교체됐다.” 

- 과장 맡을 ‘질본 사람’이 그리 없나. 

“질본 역할이 제한적이다 보니 그간 사람을 키우질 못 했다. 복지부가 의사 출신을 선발할 때 질본에서 연구관이나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하던 이들이 질본 경력을 발판 삼아 복지부로 옮겨갔다. 승진이나 정책을 주도할 기회 등에서 ‘큰집’이 낫기 때문이다.” 

- 전문 인력이 탄탄하게 받혀줘야 감염병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발전할 텐데. 

“그래서 질병관리청을 매력적인 직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사만 필요하지도, 의사만 있어서도 안 된다. 보건학, 생물학, 수학, 통계학 등 전공자도 필요하다. 이들이 ‘여기서 잘 하면 청장이 될 수 있다’는 포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미국 대학들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출신을 선호한다. 우리도 질병관리청과 대학이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활발하게 교류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좋겠다.” 

이재갑 교수는 ‘지방 거버넌스’와 관련해서는 아쉬움을 피력했다. 행안부 안에 따르면 앞으로 질병관리청에는 권역별로 ‘질병대응센터’(가칭)가 설치된다. 이들 센터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감염병 예방 및 대응에 나선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질병관리청은 지방청 수준으로 지방 거버넌스를 격상해 각 지자체가 그 카운터파트너로서 최소 국(局) 단위 이상의 감염병 대응 조직을 갖추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각 지자체가 어떤 수준으로 감염병 대응 조직을 갖춰야 하나. 

“최소 국 단위의 보건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 현재는 서울시(시민건강국)와 경기도(보건건강국)만 그러한 조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세부 과(科)에 감염병 관련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유행은 또 온다.” 

- 지자체의 보건 조직은 질병관리청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나. 

“현재 질본 긴급상황센터 내에 ‘위기분석국제협력과’가 있다. 질병관리청에서는 이를 ‘위기분석’과 ‘국제협력’으로 쪼개고, 위기분석 업무를 하나의 연구소 급으로 키워야 한다. 이곳에서 국내외 감염병 유행 등 정보를 분석해 각 지방청에 보내고, 각 지방청은 해당 지자체를 통해 병·의원에 전달하는 체계를 갖추도록 한다. 그러면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했을 때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 중앙 감염병전문병원 설립도 매우 더디다. 

“메르스 이후 중앙 감염병전문병원을 만들어놨더라면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사망자가 확 줄었을 것이다. 환자 전원만 하더라도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너무 중구난방이어서 대학병원장들이 모인 단체카톡방에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조선대병원이 호남권 권역 감염병전문병원으로 2023년 개원하는데, 모원(母院)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또 감염병전문병원은 환자 치료 외에도 감염병 연구 및 임상 관련 권한도 갖는다. 중국은 7만 명 규모의 코로나19 데이터를 내놨지만, 한국은 병원끼리 논문 경쟁하느라 데이터를 서로 공유하지 않는 실정이다.” 

- 감염내과 전문의도 많이 나와야 할 텐데. 

“지난해까지 국내 감염내과 전문의는 275명으로, 현직에 있는 의사가 2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워낙 인기가 없는 전공 분야라 해마다 신규 전문의는 10~20명 배출된다. 메르스 이후 전국 의료기관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를 찾는 공고가 늘었지만, 지원자는 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후배가 더 안 나올 것 같다’고 감염내과 의사들끼리 한숨 쉰다.”

의료진을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보호해야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조영철 기자]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조영철 기자]

최근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심상치 않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의 생활 속 거리두기 조건 중 하나인 일일 확진자 ‘50명 미만’이 6월 들어 여섯 번 깨졌고,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는 ‘깜깜이 환자’ 비율도 최근 2주간(6월7~20일) 10%를 넘어섰다. 이에 서울시는 22일 “서울시에서 사흘간 일평균 확진 30명이 넘으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양치기 소년’을 자처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갈 것을 연일 강조해온 의료진 중 한 명. 그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또 한 번 양치기 소년이 돼보려 한다”며 “정부가 국민에게 솔직하게 지금이 위기의 시작이라고 말하며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행정력을 쏟아 붓겠다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 현재 수도권 상황을 어떻게 보나. 

“깜깜이 감염이 증가하고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회귀할 시점은 이미 지났다. 지금 이 추세를 꺾지 않으면 2주 후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의료계 분위기가 어떠냐면, 서울에서 학회를 열려고 하는데 지방 대학병원에서 ‘2주간 자가격리 할 각오로 서울 다녀오라’고 할 정도다. 복지부도 각 병원에 ‘의료진은 10명 이상 모임에 참석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 의료진을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국민적 피로도가 높다. 그래서 더더욱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절실하다. 어느 교회에서는 극장처럼 사전 좌석 예약제를 운영한다고 한다. 밀집도를 줄이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주간동아 1245호 (p40~43)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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