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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맨 닮아가는 요즘 팬덤

카드는 기본이고 잠 줄이며 마케팅 벌여야 진성 팬덤, ‘희귀템’ 팔아 5배 이상 벌기도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영업맨 닮아가는 요즘 팬덤

2018 일본 도쿄돔에서 두 번째 콘서트를 연 BTS를 응원하러 온 현지 중학생 팬들. [뉴시스]

2018 일본 도쿄돔에서 두 번째 콘서트를 연 BTS를 응원하러 온 현지 중학생 팬들. [뉴시스]

#1.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열성 팬인 40대 프리랜서 유아미(가명) 씨는 위버스 앱에 접속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위버스는 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만든 모바일 전용 커뮤니티. BTS 멤버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위버스에 게시한다. 전 세계 ‘아미(BTS 팬덤)’가 이용하는 위버스의 회원 수는 2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이 게시되는 즉시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는 건 예사다. BTS 멤버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팬들의 댓글에 직접 답글을 쓰는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아미와의 적극적인 소통은 BTS가 세계 넘버 원 아이돌이 된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유씨는 위버스에서 BTS 사진과 영상을 살피는 것이 “취미가 아닌 일상”이라고 말한다.

#2. 지난해 직장을 그만둔 40대 주부 한요랑(가명) 씨는 프로젝트 그룹 엑스원 출신 아이돌 스타 김요한에 빠져 있다. 김요한의 팬카페 요랑단 회원인 한씨는 최애돌, 팬플러스, 두근대결구도 등 여러 아이돌 투표 앱을 스마트폰에 깔아두고 틈날 때마다 들어가 투표권을 모은다. 팬덤의 투표권 확보 능력이 아이돌의 인기 순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요랑단에 매일 출석해 투표 인증 글을 올리고 다른 회원들과 격려와 칭찬을 나누며 긍정 에너지를 얻는다는 한씨. 그에게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은 “함께하는 즐거움과 뜨거운 감동을 맛보는 삶의 활력소”라고 한다.


덕후들이 즐겨 이용하는 아이돌 투표 어플인 팬플러스, 최애돌(왼쪽부터). [팬플러스, 엑소더스엔터테인먼트]

덕후들이 즐겨 이용하는 아이돌 투표 어플인 팬플러스, 최애돌(왼쪽부터). [팬플러스, 엑소더스엔터테인먼트]

팬덤 문화가 날로 진화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조용필 신드롬과 함께 처음 등장한 ‘오빠부대’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팬덤은 결속력과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그 세월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인다. 팬클럽이 등장하기 전인 1980년대에는 중․고등학생이 오빠부대의 주축을 이뤘다. 교복 자율화 세대였던 이들은 각자 사진을 모으고 팬레터를 보내고 방송국이나 공연장에서 “오빠”를 외치는 것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1980년대 초반엔 조용필․전영록․이용․송골매가, 후반엔 소방차, 김승진, 박혜성이 팬들을 몰고 다녔다. 스포츠 스타도 이들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매 경기 티켓 매진에 기여했다. 농구계의 전설 이충희, 김현준, 허재가 대표적이다.


팬클럽 가입비 이상의 특전

1996년 H.O.T.가 데뷔하면서 각개전투 식 덕질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H.O.T.의 등장과 함께 팬클럽이 탄생한 덕분이다. 대중문화평론가들은 이때부터 생겨난 그룹을 아이돌 1세대, 2004년 이후 등장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을 아이돌 2세대, 2012년 이후 데뷔한 엑소, BTS 등을 3세대로 본다. 1세대 팬덤은 콘서트나 방송 출연 등 오프라인 행사에서 주로 연대의 힘을 발휘했다. 팬들 가운데서 뽑힌 지역임원, 전국회장 등이 자원봉사로 팬클럽을 이끌었다. 아시아 중심으로 팬덤이 팽창한 2세대부터는 연예기획사의 팬 마케팅 부서에서 직접 팬클럽을 관리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3세대는 활동 무대가 세계 전역으로 확장돼 팬 마케팅의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 조은재 대중문화평론가는 “8년 주기로 팬덤 문화가 격변해왔다”며 “올해가 4세대가 시작되는 해일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9년 12월 31일 미국 뉴욕에서 공연 중인 BTS. 오른쪽은 BTS 팬클럽 특전.[AP=뉴시스, 유아미]

2019년 12월 31일 미국 뉴욕에서 공연 중인 BTS. 오른쪽은 BTS 팬클럽 특전.[AP=뉴시스, 유아미]

팬덤 문화도 세대마다 차이가 있다. 1세대 팬덤은 10대가 주를 이루고 삼삼오오 모여 오프라인 활동을 같이하는 또래 문화가 두드러졌다. 반면 2세대부터는 해외 팬덤이 합류하며 연령층이 다양해지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재생산하는 문화가 생겼다. 또한 2세대 팬덤은 아이돌이 해외 활동으로 공백기를 가지면 국내 인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면, 3세대부터는 오히려 해외 활동을 적극 응원하는 분위기다. ‘엑소엘(엑소 팬덤명)’인 강선영 씨는 그 이유에 대해 “국내에 없어도 V앱이나 유튜브를 통해 현지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고, 해외 팬덤이 아이돌의 안정적인 생활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팬클럽 회원이 되려면 가입비가 든다. 10년 전 가입비는 1만~2만원이었는데 요즘은 3만원 정도다. 대신 회원이 되면 그 액수 이상의 다양한 특전을 받는다. 1세대 때는 팬클럽 카드에 화보와 단체복(우비), 2세대 때는 팬클럽 카드와 함께 실용적인 우산과 수첩이 특전으로 제공됐다. 3세대 때는 팬클럽 카드에 그립톡, 스트랩, 키링 같은 팬시 MD 상품을 회원 가입 선물로 주는 추세다. 

일례로 BTS 팬은 먼저 위버스 회원이 돼야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3만3000원의 가입비를 내면 개인식별번호와 실명이 적힌 카드를 준다. 이 카드가 있어야 콘서트에 갈 수 있고 아미로서 어떤 활동이든 가능하다. 유아미 씨는 “팬클럽 가입 후 BTS 화보와 포스터 등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특전이 든 선물박스가 왔다. 가입비가 아깝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야간엔 야광봉, 주간엔 슬로건

팬들의 야광봉 응원에 화답하는 H.O.T. [솔트 이노베이션]

팬들의 야광봉 응원에 화답하는 H.O.T. [솔트 이노베이션]

팬덤의 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행사는 콘서트다. 콘서트 응원도구로 1세대엔 풍선을 썼는데 2세대부터 스틱 야광봉으로 교체됐다. 풍선이 시야를 방해해서다. 최근에는 공연 연출팀이 객석의 야광봉 색상을 조종할 수 있는 중앙제어식 야광봉까지 등장했다. 야간엔 야광봉, 주간엔 슬로건이 대세다.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덕질은 사진 모으기인데 그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1세대 이전에는 잡지에서 사진을 오리거나 문구점에서 인화된 사진을 구입해 모았다. 2세대부터 웹으로 이미지를 공유하고 움짤(움직이는 짧은 영상) 만들기가 유행했다. 3세대부터는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SNS 앱을 통해 뭐든 공유한다. 디씨인사이드의 메이저갤러리와는 달리 사용자가 자체 개설해 관리할 수 있는 마이너갤러리(마갤)도 팬덤의 주요 덕질 창구중 하나다.


데뷔 시절 5인조의 동방신기(왼쪽).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한 엑소.[뉴시스, 동아일보]

데뷔 시절 5인조의 동방신기(왼쪽).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한 엑소.[뉴시스, 동아일보]

덕질 노동의 종류도 다채로워졌다. 음반 구입을 위해 예전처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어졌지만 음원․영상 스트리밍은 물론 투표 앱에서 보다 많은 투표권을 모으기 위해 수면 시간을 아껴가며 손가락을 바삐 움직인다. 또 생일이나 데뷔일 같은 특별한 날을 위해 모은 돈을 ‘최애’의 이름으로 복지단체에 기부하는 팬덤도 많다. 어디 그뿐인가. 새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구입하는 것을 기본 매너로 여긴다. 팬미팅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앨범을 수백 장 사는 팬도 있다. 앨범 1장에 1번의 팬미팅 응모 기회가 주어져서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30대 유학생 이하나(가명) 씨가 그런 경우다. 이씨는 BTS 데뷔 초 팬미팅에 가고 싶어 앨범 300만원어치를 구매했다. 팬미팅에 당첨된 후 그는 이 앨범들을 되팔고 일부를 갖고 있었는데 BTS가 ‘피 땀 눈물’이라는 노래로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남은 물량도 SNS를 통해 처분했다. ‘희귀템’이 된 앨범이다 보니 실제 가격보다 5배 이상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사겠다는 해외 팬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룹 워너원의 한 팬은 이씨와 달리 앨범 구입에 수백만 원을 쓰고도 팬미팅에 당첨되지 않아 공개적으로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같은 팬미팅 참여 인원 모집 방식은 팬들의 선한 마음을 앨범 판매에 악용한다는 쓴 소리를 듣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냉정과 열정 사이, 그리고 선한 영향력

‘최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시간적, 정신적, 금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팬덤의 영향력은 갈수록 조직적, 적극적으로 발휘되고 있다. 가수 승리가 버닝썬 사건 등 불미스러운 의혹에 연루되자 빅뱅 팬들은 승리의 탈퇴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워너원 출신 가수 강다니엘과 그룹 트와이스의 지효의 열애 기사가 보도된 직후 상당수 팬이 배신감을 참을 수 없어 ‘탈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엑소 첸은 최근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과 예비 신부의 혼전 임신 사실을 밝혀 ‘엑소엘(엑소 팬덤)’이 그의 탈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 팬덤의 영향력을 실감한 엑소 첸, 강다니엘(왼쪽부터). [뉴시스, 카카오]

최근 팬덤의 영향력을 실감한 엑소 첸, 강다니엘(왼쪽부터). [뉴시스, 카카오]

이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긍정 반, 부정 반이다.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는 블로거 장사장(가명)은 “연애나 결혼은 사사로운 영역이다. 아무리 팬이라 해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반면 또 다른 덕후 엄정한(가명) 씨는 “팬들이 그토록 강력하게 반감을 드러낸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그동안 최애를 지키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과 정성을 쏟았던 팬들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고 밝혔다. 

1세대 팬덤은 아이돌을 우상시하고 맹목적인 충성심을 발휘해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당사자가 아닌 가족, 소속사 등 그 주변에 전가했는데 3세대로 접어들면서 책임 소지를 분명히 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지난해 ‘프듀 조작’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낸 것도 팬덤이다. 

그렇다면 팬들이 덕질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덕후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키우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뭔가 열중할 수 있는 대상이 있기에 설레는 감정도 느껴보고, 한결 젊어지는 느낌이다”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심장을 팔딱거리게 한다” “팬덤에 소속돼 함께한다는 연대감이 삶을 충만하게 한다” 등의 의견을 내놨다.






주간동아 2020.02.07 1225호 (p44~47)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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