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0

2019.03.15

정민아의 시네똑똑

소통되지 못하는 언어의 비밀

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 감독의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입력2019-03-21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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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언어를 소재로 했지만 스토리 심층에서 사랑과 상처, 그리고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언어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으로 언어가 갇혀버린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다. 

    멕시코의 어느 마을, 소멸 위기에 놓인 토착어 시크릴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원주민들이 산다. 네덜란드의 젊은 언어학자 마르틴(페르난도 알바레스 레베일 분)은 시크릴어를 채집, 기록하고자 이곳으로 온다. 시크릴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겨우 세 명. 그나마 할머니는 마르틴이 도착하자마자 사망하고 두 명만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마르틴은 더 큰 문제에 봉착한다. 남은 두 명의 노인이 50년간 원수처럼 지내며 말을 섞지 않는 상황인 것. 언뜻 코믹해 보이지만 영화는 진지한 멜로드라마다. 

    젊어서 죽마고우였던 이사우로(호세 마누엘 폰셀리스 분)와 에바리스토(엘리히오 메렌데스 분)는 마리아라는 여자와 삼각관계에 놓여 칼부림을 할 정도로 크게 싸웠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사우로는 은둔자처럼 고독하게 살아가고, 에바리스토는 마리아와 결혼해 살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이사우로는 시크릴어만 구사하기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 마르틴은 시크릴어를 채집하기 위해 유일하게 통역해줄 수 있는 에바리스토를 설득하려 나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칼을 휘두른 에바리스토의 증오가 몹시 깊다. 

    [사진 제공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고 듣는 것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신비로운 체험이다. 산속 깊숙이 살면서 문명과 거리를 둔 이사우로는 시크릴어를 통해 동식물과 소통한다. 그렇게 카메라 프레임에 담긴 자연 풍광과 숲속에서 들려오는 오묘한 자연의 소리가 신선한 체험으로 다가선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시크릴어의 신비로움은 인물들이 지닌 기억의 비밀과 얽혀 더 아름답게 여겨진다. 



    두 노인의 관계에는 반전이 있다. 이 반전은 영화 뒷부분에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일찍 드러난다. 이후부터는 두 남자가 남은 생애에 어떻게 다시 우정을 회복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마저도 또 다른 장애물로 또 다른 반전이 생긴다. 

    식민지 시대 기독교와 원주민의 토속 신앙은 충돌했다. 서방 선교사들은 그들의 기준에 맞춰 원주민 문화와 생활, 그리고 철학까지 뜯어고치려 했다. 언어는 제일 처음 뜯어고친 대상이다. 끝내 스페인어를 배우지 못한 원주민은 자신만의 언어에 갇혔고, 스페인어와 토착어를 구사하는 인물은 자신의 비밀과 죄책감을 숨기기 위해 흉포해져갔다. 

    영화는 서양 백인의 기준에 맞춰 모든 것을 재구성해갔던 폭력의 시대와 함께 언어와 종교는 물론, 우정과 사랑도 혼돈을 겪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비극은 세계 도처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났던 경험이다. 유럽 출신의 젊은 언어학자는 숲속으로 들어와 사라져가는 언어를 기록하려 하고, 젊은 원주민은 영어를 치열하게 공부해 마을에서 탈출하려 하는 모습도 전 지구화 현상이 낳은 보편적 초상이다. 중심과 주변, 보편과 특수의 관계를 언어라는 상징체계를 통해 그려낸 수작이다. 지난해 미국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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