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7

2019.02.22

단독 입수

“CMIT/MIT를 쓴 가습기살균제 미량 들이마셔도 유해”

환경부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규명을 위한 독성시험’ 보고서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9-02-25 1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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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유해성 입증 안 돼 수사 제외된 SK케미칼, 애경 제품

    • 지난해 8월 작성돼 올해 1월 검찰 제출 후 재수사 시작

    • 쥐 실험에서 일부 개체는 실험 엿새 만에 숨져

     ‘주간동아’가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CMIT/MIT)과  관련해 입수한 국립환경과학원 보고서 및 주요 내용.

    ‘주간동아’가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CMIT/MIT)과 관련해 입수한 국립환경과학원 보고서 및 주요 내용.

    CMIT/MIT(메틸아이소싸이아졸리논)를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를 들이마실 경우 독성에 노출된다는 환경부 보고서를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했다. 

    환경부가 올해 1월 검찰에 제공한 보고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규명을 위한 독성시험’에 따르면 미량의 CMIT/MIT가 섞인 증기에 노출된 동물은 호흡기 질환에 걸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CMIT/MIT로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SK케미칼, 이를 유통한 애경산업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일부 피의자를 구속하는 등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CMIT/MIT를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는 2016년 검찰 수사 당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업체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주간동아는 이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기존 연구 결과와 어떻게 다른지 확인했다. 

    환경부가 검찰에 제출한 보고서는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연구소)가 환경부 산하 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의 의뢰를 받아 연구한 결과로 지난해 8월 최종 작성됐다. 연구소는 CMIT/MIT를 사용하는 다양한 환경을 가정하고 유독성을 분석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공기 중 CMIT/MIT 비율이 150mg/㎥(비중으로 환산하면 0.015mg/kg)만 넘어도 실험쥐들의 건강이 악화됐다. 해당 환경에 노출된 쥐들은 그렇지 않은 쥐들에 비해 체중이 30~40% 줄었다. 노출 엿새 만에 모든 개체에서 수포음(가래 끓는 소리), 불규칙 호흡 등 호흡기 관련 증상이 나타났고 일부 개체는 사망했다. 연구소는 장기 노출 시 모든 개체가 사망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유해성 입증이 안 돼 수사에서 제외

    2016년 ‘가습기살균제 살인기업 SK케미칼 ·  애경  ·  이마트 수사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관련 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동아DB]

    2016년 ‘가습기살균제 살인기업 SK케미칼 ·  애경  ·  이마트 수사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관련 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동아DB]

    보고서의 결론은 ‘이미 역학적 분석을 통해 CMIT/MIT가 함유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단독으로 사용했을 때 노출 이후 호흡기 질환 발병률이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다. 현재까지 임상, 역학연구 및 동물실험 결과를 종합했을 때 CMIT/MIT 함유 물질을 흡입 시 호흡기 질환과 관련된 독성 영향을 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였다. 

    CMIT/MIT의 흡기독성 동물실험 보고서는 2017년 대구가톨릭대 GLP센터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마우스의 기도 내 점적을 통한 가습기살균제 CMIT/MIT와 사망 간의 원인적 연관성에 관한 연구’도 있다. 이 보고서는 ‘CMIT/MIT에 대한 장기 노출과 실험쥐의 사망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생산 및 유통업체들은 이 연구 결과의 실험 모델에 문제가 있다고 맞섰다. 당시 한 업체 관계자는 “이 실험은 화학약품과 사망 간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지, 저용량 흡기 노출에 대한 실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보고서도 1.2mg/kg의 고농도 CMIT/MIT를 기도 내로 투여한 쥐에게서만 유의미한 폐질환 및 사망 사례가 나타났다고 했다. 

    이번 환경부 보고서가 의미 있는 것은 CMIT/MIT를 직접 들이마시도록 환경을 설정한 결과 호흡기 질환이 실제로 발생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대중에 알려진 뒤 6년 만에 처음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이다. 처음에는 어린이 환자가 대거 발생했다. 2011년에는 원인 미상의 폐질환 증상을 보이는 임산부가 대거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환자들에게서 치명적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의료진은 4월 25일 질병관리본부(질본)에 역학조사를 요청했다. 8월 31일 질본은 원인 미상 폐질환의 유력한 원인 물질로 가습기살균제를 짚었다. 질본은 당시 “조사 결과 일부 제품(가습기살균제)이 폐세포 손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후 보건당국은 동물 대상으로 조사에 돌입했다. 같은 해 11월 질본은 “가습기살균제를 들이마신 실험쥐의 폐가 딱딱하게 굳는 등 원인 미상의 폐 손상 환자와 같은 병리학적 양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모두가 CMIT/MIT에 대해 경고했지만

    SK케미칼이 내놓은 가습기살균제 제품. [뉴스1]

    SK케미칼이 내놓은 가습기살균제 제품. [뉴스1]

    이때 폐 손상 원인으로 지적된 성분은 PHMG와 PGH였다. PHMG와 PGH를 사용해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기업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옥시(현 옥시레킷벤키저)였다. 이들은 SK케미칼에서 PHMG를 사들여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왔다. 이후 수사기관의 수사로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등 관련자 15명은 징역형 등을 받았다. 옥시레킷벤키저는 현재까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CMIT/MIT와 관련해서는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질본의 조사 결과 흡기독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CMIT/MIT 원료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를 유통, 판매한 기업 15곳 가운데 피해자에게 배상하고 있는 기업은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3개뿐이다. 이 3개 기업은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확실 등급인 1, 2등급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개별 배상을 하고 있다. 반면 CMIT/MIT 제품을 제조·유통한 SK케미칼, 애경 등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해당 기업 제품을 사용해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이 있어도 정부 기관의 연구 결과가 뒤집히거나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 이상 기업이 나서서 먼저 배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실 CMIT/MIT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대한석유공사는 미국 롬앤드하스(Rohm & Hass)에서 CMIT/MIT 화합물인 카톤(Kathon)을 수입해 1994년부터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판매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이 물질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지만, 판매처인 롬앤드하스는 알고 있었다. 1993년 작성된 미국 환경보호청(EPA) 문건에는 CMIT/MIT의 흡기독성을 경고하는 문구가 있었다. 이는 롬앤드하스가 쥐를 이용해 해당 화학물질의 호흡독성을 실험한 후 EPA에 보고한 내용이다. 보고서에는 ‘흡기하면 치명적일 수 있으니 증기를 절대 들이마시지 마시오(May be fatal if inhaled. Do Not Breathe Vapors)’라고 적혀 있다. 

    SK케미칼도 이 내용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EPA 문건에 대해 2016년 화학업계 및 SK케미칼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가습기살균제로 가공할 때 CMIT/MIT가 희석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영향이 매우 적다”는 답이 돌아왔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모든 화학물질에는 독성이 있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실제 노출되는 CMIT/MIT의 농도다. 카톤은 다우사의 브랜드명으로, 산업제품의 농도는 14%, 퍼스널케어 제품의 농도는 1.5%이다. EPA 문건에서 다우사가 밝힌 내용은 산업용 제품을 취급할 때 주의사항이다. 가습기살균제의 농도는 0.015% 수준으로 현저히 낮다. EPA와 유럽 소비자안전위원회 기준에는 CMIT/MIT 제품의 흡입독성과 관련해 ‘0.4㎍(마이크로그램)/ℓ 이하로 사용하면 인체에 영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가습기메이트와 산업용 제품인 카톤을 같이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CMIT/MIT 미량 흡기한 쥐가 죽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CMIT/MIT의 흡입독성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동물실험 자료는 없지만 피해자는 있었기 때문. 해외에서도 CMIT/MIT의 흡기독성으로 환자가 생겼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발표됐다. 2012년 영국 의학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CMIT/MIT는 공기를 통해 접촉해도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2013년 의학지 ‘콘택트 더마티티스(Contact Dermatitis)’에는 해당 물질이 알레르기 반응은 물론 천식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2014년 영국 루이셤 병원(University Hospital Lewisham) 연구팀은 ‘CMIT/MIT 성분의 공기 접촉은 심각한 안면 피부염과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피해자들의 증상을 기반으로 CMIT/MIT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역학조사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진행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 “미국 EPA 문건, SK케미칼이 생산한 물질안전보건자료 등은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을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객관성, 신뢰성 있는 역학조사를 통해서도 CMIT/MIT로 인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실이 확인됐다. 이론적인 위해 가능성을 넘어 인체 위해성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환경부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미량 CMIT/MIT 흡기 노출의 위해성이 동물실험으로 확인되자 피해자들은 고소에 나섰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피넷)는 지난해 11월 27일 제조·유통사인 SK케미칼과 애경의 전·현직 대표이사를 각각 7명씩(총 14명)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죄로 고발했다. 이에 검찰은 환경부로부터 CMIT/MIT의 흡기독성이 일부 인정된다는 내용의 독성 실험 및 역학조사 결과를 제출받아 재조사에 들어갔다. 2월 20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가습기살균제 납품업체 전직 대표인 김모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고발인 가운데 1명인 김기태 가피넷 공동운영위원장은 “2016년에는 동물실험과 역학조사 결과가 증거로 인정되기 부족하다며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2017년 역학조사에 이어 지난해 동물실험 결과도 나왔다는 것을 확인해 고발했다”고 말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추가 증거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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