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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암과 함께하는 사람들

“미련 없이 치고 달리니 행복해”

위암 수술 후 8개월 만에 그라운드 복귀 정현석 한화 이글스 선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미련 없이 치고 달리니 행복해”

“미련 없이 치고 달리니 행복해”
‘불꽃 한화! 투혼 이글스!’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의 슬로건이다. 2015 시즌 정현석(31·사진) 선수를 소개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정 선수는 올해, 2007년 신고선수(연습생)로 한화에 입단한 이래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그가 타석에 서면 한화 팬을 넘어 상대팀 응원단까지 한목소리로 ‘정현석’을 연호했다. 지난해 12월 암으로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고 8개월도 채 지나기 전 그라운드에 복귀한 ‘투혼’이 많은 이의 가슴을 울린 결과다.

“투병 전보다 더 잘 치고 더 잘 뛰는 것 같다”는 평을 들을 만큼 ‘불꽃’ 활약을 펼친 것도 정 선수의 인기에 한몫했다. 올해 한화는 끝내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많은 이가 내년 성적에 기대를 갖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정현석’이다. 10월 1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만난 그는 이 모든 응원과 기대에 힘이 솟는 듯했다. “야구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 매순간이 소중하고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목소리에서는 설렘이 느껴졌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지난해 겨울 건강검진에서 위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머릿속으로 수술 후 재활훈련 스케줄부터 떠올렸다는 그다. 애초부터 야구를 끔찍이 사랑했던 게 아닐까. 이 질문에 정 선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시엔 야구에 대한 애정보다 팀에 대한 책임감, 성적 욕심이 더 컸다”는 얘기다.

“일본 전지훈련을 막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시즌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던 때였거든요. ‘이렇게 몸이 잘 만들어졌는데 암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에게 ‘수술하면 언제부터 운동할 수 있나요’ 하고 물었죠.”



진단받은 지 일주일 만에 수술을 하고, 몸을 추스르자마자 개인 훈련을 시작한 것도 빨리 그라운드에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정 선수는 “위의 상당 부분을 잘라낸 탓에 한동안은 수액을 제외하곤 아무 음식도 섭취할 수 없었다. 그때 잠시 요양병원에 머물렀고, 어느 정도 회복한 뒤부터는 바로 지인의 헬스클럽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고 밝혔다. 그를 절박하게 만든 건 ‘죽을 때 죽더라도 이렇게는 못 죽겠다. 언젠가는 야구를 그만두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생각이었다.

“지난해 말 김성근 감독님이 팀에 부임하신 뒤 모든 선수한테 목표를 써내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떳떳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썼거든요. 요양병원에 있는 동안 계속 그때 기억이 났죠. 정말 선수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경기해봐야 아쉬움 없이 야구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정 선수의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투병 전에도 한화에서 손꼽히는 ‘성실왕’이었다. 화려한 스타가 아니었는데도 정 선수가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모든 선수가 모자와 배트에 ‘뭉치’라는 그의 별명을 적으며 무사쾌유를 기원한 건 그가 팀 내에서 그만큼 두터운 신망을 쌓았기 때문이다. 정 선수는 “뒤늦게 타자로 전향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뛰었다. 연습생으로 출발해 1군 선수가 되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재능 없는 선수였던 건 아니다. 대전고 시절 정 선수는 투타 양쪽에서 활약한 유망주였다. 투수로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도 받았다. 당시는 프로팀이 선수 지명권을 4년간 보유하던 시절. 정 선수는 대학 졸업 뒤 롯데에서 뛰기로 마음먹고 먼저 경희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시련이 찾아왔다. 열심히 훈련했지만 도무지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는 대학 4년 동안 8경기 출전, 평균자책점 20.25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고, 졸업 무렵 롯데로부터 지명 철회 통보를 받았다.

야구 인생을 끝내야 할 위기에서 그를 살린 건 고교시절 정 선수를 눈여겨봤던 고향팀 한화였다. 정식 선수가 아닌 연습생 신분으로라도 입단할 생각이 있으면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그는 글러브 대신 배트를 챙겨 들었다고 했다.

“대학시절 내내 투수로 성공하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됐잖아요. 이제 투수는 그만두고 싶었어요. 불합격돼도 좋으니 타자로 한 번 가능성을 평가받고 싶었죠.”

이 ‘승부수’가 통하면서 그는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마침 당시 한화에는 고교 졸업 후 연습생으로 입단해 우리나라 최고 타자로 성장한 ‘연습생 신화’ 장종훈 선수가 타격코치로 있었다. 정 선수는 그를 롤모델 삼아 ‘무식하게’ 운동했다고 고백했다.

“힘들다는 생각조차 사치일 때잖아요. 매일매일 그날이 끝인 것처럼 무조건 많이 뛰고 많이 던졌습니다. 그런 저를 장 코치님이 눈여겨보고 많이 도와주셨죠.”

지금도 ‘장 코치’는 정 선수 야구 인생의 은인이자 영웅이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차근차근 연습생에서 등록선수가 되고, 1군 출전 엔트리에 오르고, ‘좌투수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왼손 투수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주전급으로 성장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7년. 그리고 지난해 김성근 감독의 부임과 고된 전지훈련으로 ‘이제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위암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4년 사귄 여자친구와 가정을 꾸린 지 꼭 1년이 되는 때였다. 야구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지 않을 리 없었다.

“고마운 모든 분께 보답할게요”

“미련 없이 치고 달리니 행복해”

8월 6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전광판에 뜬 정현석 선수 환영문구. 정 선수는 이날 위암수술 후 처음으로 홈구장 타석에 섰다.

“병에서 회복되는 동안 아내와 부모님, 장인 장모님에게 참 죄송했어요. 특히 소화기능이 회복되지 않아 2시간에 한 번씩 밥을 먹어야 하는 제 끼니를 챙기며 온갖 보양식을 해준, 그래서 이제는 ‘대령숙수급’ 요리사가 된 아내한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픈 덕분에 많은 걸 얻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야구에 대한 자세가 달라졌어요. 전에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는 ‘뛸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마음이 앞서거든요.”

정 선수의 말이다. 8월 복귀 뒤부터 그라운드에 서서 애국가를 들을 때마다 기쁨과 설렘에 가슴이 뛴다는 그는 “내년 시즌에도, 그 뒤에도 계속 이 마음을 유지하는 게 지금 내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여전히 위 기능이 다 회복되지 않아 급하게 먹으면 통증이 느껴지고 종종 음식물이 역류하기도 하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오히려 걱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랑하는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더 열심히 몸을 관리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정 선수가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전국 어디에서든 그를 보면 ‘정현석 선수, 파이팅’이라고 인사를 건네주는 팬들이다. 정 선수는 “한 번은 대전 시내를 걷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영감님들이 ‘정 선수, 몸 관리 잘하세요’라고 말씀하셔서 울컥했다. 어린 꼬마들도 나를 보면 ‘아프지 마세요’라고 한다. 처음엔 ‘내가 뭐라고 이렇게 걱정해주실까’ 싶어 죄송스러웠는데, 이제는 ‘이런 마음에 보답하는 길은 내가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에는 저, 우리 가족, 우리 팀만 생각하며 운동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분이 보입니다. 저를 통해 아프신 분들, 힘드신 분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내년에는 더 열심히 즐겁게 하겠습니다.”

‘불꽃 투혼’ 정 선수의 각오다.



주간동아 2015.10.26 1010호 (p52~5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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