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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역사 국정교과서’ 파동

朴 대통령 이슈 선점 김무성 2인자 전락 문재인 기사회생

정치권 흔들 초대형 이슈…청와대와 여야의 손익계산서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朴 대통령 이슈 선점 김무성 2인자 전락 문재인 기사회생

朴 대통령 이슈 선점 김무성 2인자 전락 문재인 기사회생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14일 긴급 수석비서관회의를 갖고 “올바른 역사교육은 통일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같은 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친일 역사관을 가르칠 수 없다”고 발언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0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왼쪽부터).

“임기 반환점을 돈 박근혜 대통령이 마치 취임 첫해처럼 국정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야권 한 인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주도하는 박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촌평했다. 5년 임기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면 일반적으로 레임덕이 시작되는데 박 대통령의 경우 오히려 임기 초반 못지않은 권력 집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 국가정보원 대통령선거(대선) 개입 논란으로, 지난해에는 세월호 사고로 국정운영에 발목이 잡혔고, 올해 상반기에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원활한 국정운영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남북 8·25합의를 계기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선보인 박 대통령의 정치적 포석은 ‘남을 공격하기에 앞서 자기를 먼저 돌아보라’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란 바둑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박 대통령은 6월 신(新)보수론을 앞세워 청와대와 각을 세우며 독자행보를 걸으려던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사실상 강퇴(강제사퇴)시켰고, 최근에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내년 총선 때 공천 주도권을 행사하려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사분오열 야권, 교과서 이슈로 재결집



여권 내부 단속을 마무리한 박 대통령은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이슈를 제기해 여야는 물론, 보수와 진보진영 간 역사논쟁, 이념논쟁에 불을 붙였다. 박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정치권 한 인사는 “물 들어올 때 배를 띄워야 하듯,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때 숙원사업과도 같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마무리하려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념논쟁으로 번질 수 있는 휘발성 큰 역사논쟁을, 그것도 총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 꺼내 든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자중지란에 빠져들고 있던 시점에 박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이념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무리수일 수 있다”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보수 지지층 결집은 물론, 야권 결집까지 함께 이뤄낼 수 있는 초대형 이슈”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치지형이 보수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되는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거치면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 조금은 편평한 지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10월 12일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공식 발표한 다음 날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문재인 대표와 신당 창당을 선언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연석회의를 꾸리기로 합의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사분오열돼 제 갈 길을 가던 야권 세력들을 한자리에 모여 앉게 만든 것이다. 특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야권 연석회의가 내년 총선 때까지 이어져 ‘야권 연대’ 논의의 장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따른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의 정치적 득실은 크게 엇갈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주류의 거센 사퇴 압박에 시달리던 문 대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의 선봉에 서면서 한숨 돌릴 시간을 번 반면, 김 대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앞장서면서 정치적 스텝이 꼬일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김무성 대표의 평소 소신이라 할지라도 오픈프라이머리 등 내년 총선 공천권 문제로 청와대, 친박(친박근혜)계와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김 대표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대통령 이슈를 앞장서 대변하면서 대통령 하수인처럼 비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와 달리 문재인 대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선봉에 서면서 당내 비주류의 거센 사퇴 압력을 당분간 피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발표한 10월 12일에는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등이 주최한 ‘새정치연합, 뭐가 문제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종걸 원내대표와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박지원 의원, 박영선 전 원내대표 등 새정연 비노(비노무현)계 인사가 총출동해 당내 계파 패권주의 청산 등을 촉구했다. 사실상 반(反)문재인 세력이 총궐기한 것. 그러나 이날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걸린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초대형 이슈가 터져 나오면서 새정연 비주류의 목소리는 국민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김형준 교수는 “문재인 대표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에서 구해준) 고마운 분이 아닐 수 없다”며 “역사 교과서 논란이 커질수록 당내 비주류의 문 대표 사퇴 요구 목소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선거 승리방정식

문재인 대표는 정부 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힘입어 당분간 정치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 대표 체제가 지속되는 것이 내년 총선 때 야권에 도움이 되느냐에 대해서는 야권 내에 회의적 시각이 많다. 야권 비주류 한 인사는 “박근혜 정권 초기 NLL(북방한계선) 이슈가 터졌을 때 문 대표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등을 앞장서 요구했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일이 있다”며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문 대표가 앞장서는 모습이 불안한 것도 그 같은 경험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한국 사회의 이념지형이 보수적 경향이 좀 더 뚜렷한 상황에서 중도층이 어느 편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총선 유불리가 갈릴 공산이 크다”며 “중도층은 이슈 내용뿐 아니라 이슈를 끌고 가는 행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란 이슈 자체도 중요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큰 이슈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국민 여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형준 교수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중요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나, 야당이 새해 예산안 처리 등과 연계하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바둑에서는 선수(先手)를 잡아야 승기(勝機)를 잡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역대 선거 결과는 핵심 이슈를 주도하고 선점한 쪽이 승리한 경우가 많다. 2002년 대선 때 ‘행정수도 이전’ 이슈를 제기한 노무현 후보가 당선했고, 그에 앞서 치른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했다. 2010년 지방선거 때는 ‘무상급식’을 앞장서 주장한 민주당(현 새정연)이 신승을 거뒀다. 2012년 대선 때도 경제민주화와 생애맞춤형 복지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박근혜 후보에게 더 많은 국민이 지지를 보냈다.

역대 선거 결과는 상대가 제기한 이슈에 반대하는 것으로는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데 한계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20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박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란 초대형 이슈를 꺼내 들었다. 선거의 여왕이 제기한 국정교과서 이슈는 내년 총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슈를 선점해야 선거에 유리하다는 승리방정식이 내년 총선에도 이어질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15.10.19 1009호 (p10~11)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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