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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인이 스페인에서 와인 생산하는 까닭

피터 시섹의 스페인 대표 와인 ‘핑구스’

덴마크인이 스페인에서 와인 생산하는 까닭

피터 시섹이 만든 와인들. 
왼쪽부터 피에스아이, 플로르 드 핑구스, 핑구스.[사진 제공 · 씨에스알와인(주)]

피터 시섹이 만든 와인들. 왼쪽부터 피에스아이, 플로르 드 핑구스, 핑구스.[사진 제공 · 씨에스알와인(주)]

핑구스(Pingus)는 스페인에서 가장 비싼 레드 와인 가운데 하나다. 핑구스는 이 와인을 만든 피터 시섹(Peter Sisseck)의 어릴 적 별명이기도 하다. 시섹은 덴마크 사람이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레드 와인을 덴마크 사람이 만들다니, 무슨 사연일까. 최근 한국을 방문한 시섹을 만나 이유를 물었다. 

시섹의 삼촌은 와인메이커였다. 시섹은 방학이면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 가 삼촌을 돕곤 했다. 삼촌 이름도 피터여서 숙모는 시섹을 만화에 나오는 펭귄 캐릭터의 이름을 따 핑구스라 불렀다. 삼촌을 도우면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시섹은 대학에서 포도 재배와 양조를 공부했고, 학업을 마친 뒤에는 삼촌이 투자한 스페인 와이너리에서 일했다. 삼촌의 와이너리는 스페인 내륙 한가운데 위치한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에 있었다. 

리베라 델 두에로는 늙은 템프라니요(Tempranillo) 포도나무가 많은 곳이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 늙은 나무가 생산하는 포도 양은 매우 적지만, 그 맛과 향은 탁월하다. 이런 매력에 사로잡힌 시섹은 평균 수령 70년이 넘는 포도나무가 식재된 리베라 델 두에로의 밭 4ha(4만㎡)를 구입했다. 이 밭은 단 한 번도 농약이나 살충제를 쓴 적도, 인위적으로 물을 댄 적도 없는 곳이다. 

이 밭에서 생산한 첫 번째 와인이 핑구스 1995년산이다. 무명이 만든 와인이었지만 시장에 나오자마자 병당 가격이 200달러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핑구스 가격은 우리나라에서 병당 약 300만 원 한다. 찾는 이는 많은데 4ha 밭에서 연간 4000병 남짓 생산되니 당연한 일이다. 수요 충족을 위해 출시한 세컨드 와인 플로르 드 핑구스(Flor de Pingus)는 평균 수령 35년인 템프라니요로 만든다. 이 와인 가격도 병당 30만 원 정도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와인메이커 피터 시섹.[사진 제공 · 씨에스알와인(주)]

최근 한국을 방문한 와인메이커 피터 시섹.[사진 제공 · 씨에스알와인(주)]

그런데 그는 리베라 델 두에로의 농부들이 생산량이 적다는 이유로 늙은 포도나무를 뽑아내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는 피에스아이(PSI) 와인을 내놓기 시작했다. PSI는 농부들이 기른 포도로 만든다. 시섹의 지침대로 농부들이 유기농 포도를 생산하면 시섹은 높은 가격에 이를 매입한다. 그가 비싼 값을 지불하는 까닭은 스페인의 젊은 인력이 와인산업으로 유입돼 우수한 전통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열심히 농사지은 대가가 정보기술(IT) 기업에서 받는 연봉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선지 PSI를 맛보면 순수하면서도 신선한 향과 힘찬 기운이 입안을 채운다. 희망과 패기가 가득한 맛이다. 이에 비해 플로르 드 핑구스의 진한 과일향과 농축미에서는 중년의 완숙미가, 핑구스의 우아함과 정교함에서는 노년의 품격이 느껴진다. 

그는 와인을 만들면서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한다. 인간이 기계와 화학약품으로 자연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며, 와인은 ‘상품’이 돼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자연을 잘 관리하고, 그 자연이 내어주는 것을 오롯이 담아야 참된 와인이라는 것이다.






주간동아 2017.11.22 1114호 (p76~76)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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