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3

2017.11.15

한창호의 시네+아트

갑갑한 현대 정치의 알레고리

강윤성 감독의 ‘범죄도시’

  • 입력2017-11-14 09: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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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도시’는 깡패를 때려잡는 형사 이야기다. 몸집이 ‘헐크’처럼 큰 강력계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주인공이다. 그가 일반 형사와 다른 점은 수사 규칙, 절차 같은 ‘귀찮은’ 법칙은 쉽게 무시한다는 것이다. 악질 혐의자는 패서라도 자백을 받아내고, 조폭 출신 유흥업소 사장의 돈은 빼앗아 제 돈처럼 수사비로 쓴다. 범인을 잡으려면 그 정도 ‘위반’은 당연하다는 듯 떳떳하다. 법 눈치 안 보고, 진급 신경 안 쓰고 법인 잡는 데만 집중하는 그는 ‘프로’의 전범처럼 묘사된다. 고전 서부영화의 스타 존 웨인 같다. 법 위에 존재하는 듯 느긋하고, (싸움) 실력도 뛰어나서다. 

    영화의 배경은 2000년대 초 서울 가리봉동 중국인 거주지다. 이곳에 중국인(주로 조선족)이 몰려들고, 곧이어 중국인 조폭들이 활개 칠 때다. 그런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조폭 장첸(윤계상 분)이 등장하면서 그곳은 ‘범죄도시’로 변하고 만다. 마석도의 통제 아래 있던 여느 조폭과 달리 장첸 일당은 경찰의 존재 자체를 무시한다. 대낮에, 다른 사람이 있든 말든 잔인한 폭력을 휘두른다(이들의 무기는 도끼다). 이들은 가리봉동을 ‘접수’한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범죄영화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1970년대다. 당시 리처드 닉슨 정부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적 불신이 극에 달했다. 영화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극도의 마키아벨리즘을 반영했다. 범죄영화는 두 갈래로 펼쳐진다. ‘대부’(1972)로 대표되는 갱스터와 ‘더티 해리’(1971)로 대표되는 형사물이 그것이다. ‘대부’는 ‘일등국가’ 미국을 부패한 마피아를 통해 비판했다. 반면 ‘더티 해리’는 자유 아래 활개 치는 범죄자를 때려잡는 데 몰두한다. ‘대부’가 문제 삼은 게 미국 시스템이었다면, ‘더티 해리’는 영웅으로서의 ‘외로운 늑대’를 찬양했다. 이는 ‘범죄도시’의 마석도 캐릭터와 겹친다. 

    ‘범죄도시’처럼 경찰이 주인공인 범죄영화는 종종 지나친 국가주의로 흐를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일부 보수주의자는 더티 해리와 함께 그 역을 맡은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까지 영웅시한다. ‘프로’답게 범인을 잡는 데 몰두해서다. 위법, 탈법, 여성혐오, 외국인혐오 같은 악덕은 관행으로 종종 무시된다. 이런 악덕은 ‘범죄도시’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그런데 ‘범죄도시’는 이런 악덕을 넘어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마석도가 잡으려는 범죄자들은 ‘더티 해리’ 속 지질한 악당과 달리 경찰의 존재 자체를, 심지어 국가제도의 존재 자체를 아예 무시한다. 제 실력만 믿고 법 위에 군림하듯 멋대로 행동한다. 여기서 많은 관객은 한국 정치와 겹치는 묘한 지점을 본다. ‘실력’이 넘쳐 오히려 법질서를 우습게 여기는 악질들, 그들을 심판하려는 민주주의 제도가 너무나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마석도를 응원하는 듯하다. 멋있게 표현된 악당 장첸의 모습에서 현대 정치의 무력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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