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7

2017.09.27

황승경의 on the stage

웃기지만 가슴 시린 1930년대 예술가들의 토크쇼

연극 ‘20세기 건담기(建談記)’

  • 공연예술학 박사  ·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 간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17-09-25 17: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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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20세기 건담기’의 포스터는 꽤나 흥미롭다. 1936년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임에도 적벽돌 배경에 현대 의상을 입은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만 등장한다. 연출자 성기웅의 얼굴을 모르는 관객들은 현대적 포스터를 보고는 1979년 세상에 나온 로봇 애니메이션 ‘건담’ 시리즈를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러면서 건담기(建談記)라는 생소한 한자를 유심히 살필 것이다.

    ‘20세기 건담기’는 10년 동안 극작가이자 연출자를 맡았던 성기웅의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깃븐우리절믄날’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 등 구보 박태원(1909~86)과 이상(1910~37)이 활동하던 시대를 다룬 연작의 마지막 편이다. 연극은 1936년부터 김유정(1908~37)과 이상이 사망하는 37년 봄까지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성기웅은 박태원과 이상이 건담가(建談家·말로 많이 떠들어대는 사람)가 돼 주변을 즐겁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 구실을 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지식인의 삶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아픔으로 우울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연극 속 그들은 번뜩이는 재치로 무장한 채 쉴 새 없이 웃고 떠든다.

    그러고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끊임없이 설계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시대적 아픔에 고뇌하면서도 질병, 실연, 가난의 무게 또한 버텨야 했다. 관객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입은 웃고 있지만 가슴은 시리다.



    ‘20세기 건담기’는 1936년 2월 구보(이명행 분)와 이상(안병식 분)이 4차원 라디오 기술을 이용해 21세기에 전파를 보내는 ‘건담쇼’로 시작한다. 이 쇼에는 소설가 김유정(이윤재 분), 화가 구본웅(김범진 분), 심부름하는 아이 수영이(백종승 분)까지 합세한다. 이후 김유정은 건강을 위해 경기 광주로 요양을 떠나고, 이상은 꿈을 찾아 일본으로 향한다. 그들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후반부는 전반부의 유쾌함이 오버랩돼 더욱 먹먹하다.

    그들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울고 갈 언어의 유희를 선보인다. 경알이(옛 서울사투리), 일본어, 영어, 에스페란토(1887년 폴란드 안과 의사인 자멘호프가 창안해 발표한 국제 공용어) 등으로 맛깔스러운 ‘만담쇼’를 지휘한다. 무대 위는 모노드라마, 악극, 라디오 콩트, 뉴스쇼, 일본 전통 예능인 라쿠고(落語) 등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80년 전 ‘애면글면’(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양) 상황에서 꽃피운 유쾌한 ‘건담’은 현대인의 팍팍한 삶에 ‘건담의 여유를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부분이 과했을까. 12번의 장면 전환에서 일부 어수선한 전환은 ‘옥에 티’였다. 좁은 자리 배열과 휴식시간 없이 2시간 넘게 계속되는 공연에서 관객의 집중력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면 전환 때마다 시간을 알려고 휴대전화를 켜는 관객들의 불빛을 여럿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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