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4

2017.09.06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다름’이 명확할 때 더욱 빛나는 ‘대비’의 美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입력2017-09-05 11: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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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지인의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조문하려고 찾은 장례식장 곳곳에서 ‘대비’의 이미지를 만났다. 집안 어른들은 상주를 붙잡고 통곡하고, 어린 상주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휴가를 떠나는 길에 비보를 접하고 급히 장례식장을 찾았다는 한 조문객은 샛노란 원피스 차림이 마냥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검은 옷의 상주는 오히려 괜찮다며 조문객을 도닥인다.

    조문을 마친 사람들은 옆방에 마련돼 있는 즐비한 테이블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한다. 순식간에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 조문객은 처음에는 “안 먹어도 된다”며 손사래 치지만 결국 상주의 권유에 육개장, 수육, 홍어무침, 떡, 과일, 마른안주 등에 젓가락을 갖다 댄다.



    ‘천국과 지옥’의 대비로 제품력 강조

    조금 전까지 고인의 영정 앞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얼굴에 미소를 띤다. 한 공간에서는 죽음을 애도하고, 반대쪽 공간에서는 고인이 마련한 음식을 나누며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의 대비는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상반된 두 요소를 짝지어 비교하는 대비의 이미지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특정 제품의 효능을 쉽게 강조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여행용 가방 전문회사 쌤소나이트는 ‘천국과 지옥’의 대비를 활용해 제품의 기능을 쉽고 빠르게 전달한다.
    광고는 ‘사람이 기내에 있는 동안 캐리어는 어디에서 어떻게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비행기 탑승 전 수화물을 접수하면 캐리어는 검은색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캐리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비행이 끝날 때까지 캐리어를 만나지 못한다. 광고는 한 비행기 내에서 사람과 캐리어의 여정을 비교해 보여준다. 비행기 측면을 반으로 나눠 위쪽은 사람의 공간, 아래쪽은 캐리어의 공간으로 구분했다. 사람의 공간은 천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락한 시간을 보내는 천국으로, 캐리어의 공간은 악마가 무자비하게 군림하는 혼돈의 모습으로 그렸다.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사람과 캐리어, 흰색과 붉은색, 밝음과 어둠, 위와 아래 등 서로 마주선 두 이미지의 대비가 사람과 캐리어가 경험하는 비행의 차이를 강조한다.

    쌤소나이트의 캐리어는 지옥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견뎌낼 테니 가방 주인은 천국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즐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천국을 더 천국답게, 지옥을 더 지옥답게 만들어주는 대비 덕에 캐리어의 험난한 여정이 더 깊게 와 닿는다.  
    영국 존 루이스(John Lewis) 백화점의 영상 광고는 남녀의 대비를 이용해 ‘소중한 것은 변치 않는다(What’s important doesn’t change)’는 백화점의 가치를 강조한다.

    광고는 화면을 반으로 나눠 왼쪽은 여자의 공간, 오른쪽은 남자의 공간으로 구분했다. 여자 쪽은 주황빛, 남자 쪽은 푸른빛을 이용해 더 뚜렷하게 공간을 분할한다. 광고 이미지는 평범한 대비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대비가 숨어 있다. 1925년에 사는 여자와 2012년에 사는 남자가 시간을 뛰어넘어 사랑을 하는 것이다.



    짜장면과 짬뽕의 조화가 아름다운 이유  

    비록 반대 위치에 있지만 같은 시간 안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어울린다. 한때 남녀를 화성과 금성으로 각각 해석하는 책이 인기를 끈 이유는 너무나 다른 두 존재를 이해하고 싶은 본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고 속 남녀는 대비를 뛰어넘어 하나로 어울리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수많은 대비의 개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 선과 악, 빛과 어둠, 흑과 백, 나와 당신, 진실과 거짓, 긍정과 부정 등등. 대비는 반대편에 위치하는 두 요소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고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한다. 나와 달라서 어렵고 어색하지만, 한편으로는 달라서 흥미롭고, 끌리는 이미지가 바로 ‘대비’다.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작은 용기와 행동이 있다면 대비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놓고 갈등하다 ‘짬짜면’을 주문할 때가 있다. 반으로 가른 그릇의 한쪽에는 짜장면이, 반대쪽에는 짬뽕이 사이좋게 담겨 나온다. 서로 다른 것이 공존하는 대비의 긴장감 때문일까. 짜장면과 짬뽕이 더 검고 더 붉게 보여 먹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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