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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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인사이트

‘전설’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은 유망주 육성

‘꿈나무 육성’, 차범근이 닦고 박지성이 따르는 길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입력2017-09-05 11: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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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축구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게 무엇인 줄 알아?”

    차범근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뜸 물었다. 지난해 5월 1986 멕시코월드컵 30주년에 맞춰 성사된 인터뷰에서다. 1954 스위스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세계무대를 밟은 기념비적 순간을 복원하기 위한 자리였다. 백미는 조별리그 2라운드 아르헨티나전이었다. 당대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주장 완장을 찼던 그 팀과 격전을 되짚었다. “나는 분데스리가에서 뛰었고,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세리에A 소속이었기에 그의 소식을 종종 전해 들었다”던 차 전 감독이 갑자기 문제를 하나 냈다. 본인의 축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보람된 일이 두 가지 있으니 맞혀보라는 것이었다.

    “차범근 축구상과 차범근 축구교실을 시작한 것.” 의외의 답이 나왔다. UEFA(유럽축구연맹)컵, DFB-포칼 등 굵직한 유럽 대회 우승이 아니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누빈 국가대표 시절도 아니었다. 차 전 감독은 이렇게 유소년축구 육성을 화두로 꺼내더니 사전에 약속했던 마라도나 관련 일화보다 더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바람에 애초 예정했던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겼다. 50년 가까운 축구 인생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마라도나 등 세계적 선수들과 맞붙었던 자신도 결국 그 뿌리로 돌아가게 되더란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유럽 무대를 밟았다고 여긴 차 전 감독은 이를 꼭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은퇴 뒤 한국으로 돌아가 더 좋은 선수들을 길러내겠다고. 이 경험과 혜택을 반드시 나누겠다고.



    “좋은 기반이 좋은 선수를 키우더라”

    차 전 감독이 유소년축구 육성에 눈뜬 건 독일 현지에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뒤늦게 축구를 접하던 국내 풍토와는 달랐다. “5~6세 아이들이 벌써 공을 차는 거다. 어찌나 귀엽던지”라고 말하며 그는 눈을 빛냈다. 그때 그에게 스친 생각이 있다. “어린 나이에 축구를 시작하니 공이 발에 붙는 감각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차 전 감독의 설명이었다. 그뿐 아니다. 이기고 지는 데 집착하지 않고 축구 본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차 전 감독의 연초는 늘 분주하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차범근 축구상을 수여하기 때문. 차범근 축구상은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은 물론 현 국가대표 기성용(스완지시티 AFC)과 유망주 백승호, 이승우 등 걸출한 선수들을 배출해왔다. 차 전 감독은 2월 시상식에서도 대동초 전유상(12) 군을 비롯해 여러 꿈나무를 축하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차 전 감독의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 다소 산만하던 좌중의 눈길이 단상으로 향했다. 차 전 감독이 고개를 숙인 채 손수건을 꺼내고 있었다. 올해로 29년째 시상식 무대에 서는데도 이렇게 울컥해했다. “이 자리에만 서면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차범근 축구상은 내가 한국 축구로부터 받은 영광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기 위한 일환”이라고 누누이 말해온 그는 이날 “아이들만 생각하면 왜 이렇게 벅찬지 모르겠다”며 쑥스러워했다.

    차 전 감독이 자랑스러워하는 게 또 하나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교실이다. 누구든지 부담 없이 찾아와 축구를 매개로 뛰어놀라는 취지다. 차 전 감독은 축구교실에 종종 ‘사명’이란 표현을 끌어오며 “나의 축구 철학이 모두 배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대를 이어갈 큰 그림까지 그리고 있다. 차 전 감독은 차두리 현 국가대표팀 코치를 가리켜 “우리 축구교실 차기 회장”이라며 “나중에는 차두리 축구교실로 이름을 바꿔야 하나”라고 말했다. 한참 뜸들이더니 “나이 든 사람들이 나를 아쉬워할 수도 있으니 차&차 축구교실로 해야겠다”며 웃었다.



    “나보다 더 좋은 환경을 위해”

    차 전 감독이 개척한 길을 따르려는 이가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며 한국 축구를 몇 단계 더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박지성 JS파운데이션 이사장. 그는 은퇴 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직함도 많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배서더, 아시아축구연맹(AFC) 사회공헌분과위원,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 코스 심사, 국제축구평의회(IFAB) 자문위원 등. 그랬던 그가 시간을 쪼개 국내 일정을 잡았다.

    7월 3일 강원 평창군에서 열린 환영 만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본인 이름의 이니셜을 딴 ‘2017 JS CUP U12 국제유소년축구대회’인 만큼 직접 얼굴을 내비치고자 했다. ‘JS컵’이란 이름으로 U-18, U-19 청소년축구대회를 개최해온 박 이사장은 유소년 연령대인 U-12 대회 유치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박 이사장은 지난 1년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축구 행정가가 되고자 영국 레스터 드몽포르대, 이탈리아 밀라노대, 스위스 노이샤텔대를 거치며 스포츠 인문학, 매니지먼트, 법 등을 배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 축구 꿈나무들을 잊지 않았다. 귀국 직후라 피곤했을 법도 한데 그는 초등학생들 앞에서 “여러분! 오늘 다른 나라 친구들과 만나서 즐거웠어요?”라며 친근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다”던 박 이사장은 “해외에서 뛰어보니 유소년축구 국제대회에서 가장 많이 배우게 되더라”며 대회 유치 배경을 밝혔다.

    차 전 감독, 박 이사장 모두 ‘전설’로 불린다. 1980년대 독일에서, 2000년대 잉글랜드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정복은 물론, 유럽 정상까지 밟았다. 동양인 축구선수에게 현지인들이 엄지를 치켜세웠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위대한 일이다.

    그들은 아직 한국 축구계에 마음의 빚을 갖고 있다. 차 전 감독은 “한국 축구의 인기가 떨어져 가라앉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데, 나라고 책임이 없을까”라고 했다. 세계무대에서 바라보는 한국 축구를 가리켜 “아시아 대륙에서는 조금 괜찮은 수준”이라고 표현한 박 이사장도 아쉬워했다. 이들의 시선은 한곳으로 향해 있다. 꿈나무 육성.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축구 선진국으로 꼽히는 유럽 무대에서 뛰며 각국이 유소년 단계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직접 목격한 덕이다. “이 선수들이 곧 한국 축구의 힘”이라던 차 전 감독의 말에 박 이사장은 “차 전 감독님이 관련 일을 먼저 시작했기에 내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이 퍼져 유소년 기반을 잘 다져야 한국 축구의 미래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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