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8

2017.07.26

특집 | 7530원의 경제학

알바생 자르거나, 기계 들여놓거나, 문 닫거나

영세 소상공인 “한계 상황에서 선택지 별로 없어”…식비, 교통비 최저임금에 포함시켜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7-25 14: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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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하지만 저도 생활을 해야 하니 (아르바이트생) 몇 명은 해고해야겠죠.”

    서울 동작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42·여) 씨의 말이다. 김씨의 편의점은 매달 800만 원 이상 수익이 날 정도로 비교적 장사가 잘되지만 실상 김씨에게 돌아가는 돈은 많지 않다. 아르바이트생 4명에게 월급으로 총 500만~600만 원을 주고 나면 매달 순수익은 300만 원이 채 안 되기 때문.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현 수익을 유지하려면 김씨가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할 판이다.



    최저임금만 올려서는 경제 악영향 피할 수 없어

    2018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되면서 사회 각계각층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이 정부 공언대로 ‘소득주도성장’으로 가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고용 축소나 일부 기업의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을 견디지 못하는 기업의 폐업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지적하지만, 폐업한 이들을 구제할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대폭 오른 인건비 부담으로 아르바이트생 해고를 고민 중인 고용주는 김씨 외에도 많다. 인터넷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은 전국 아르바이트생 고용주 352명을 대상으로 ‘2018년 최저임금에 대한 생각’을 긴급 설문조사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고려한 내년 사업장 인력 운영 계획에 관한 질문에 응답자의 24.4%는 ‘아르바이트생 고용을 절반으로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아르바이트생을 10~20%가량 줄일 예정’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3.9%였다.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고용주는 20.2%에 그쳤다. 아예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대신 가족 경영을 고려(20.2%)하거나 혼자 가게를 꾸려가겠다(9.7%)는 고용주도 일부 있었다.



    배규식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장기적으로는 정부 주장처럼 고용의 질이 향상되는 등 고용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고용 축소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잠깐의 고통 뒤 경제상황이 나아진다면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소득주도성장 등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득주도성장을 이루려면 고용의 질 개선도 중요하지만 일단 고용량이 늘어야 한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과 공공부문 채용 증대로 고용량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근로시간 단축은 오히려 임금을 줄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났다. 시애틀은 미국 최초로 ‘최저시급 15달러’(약 1만6800원)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다. 워싱턴대 연구팀은 시애틀에서 시급 19달러(약 2만1300원) 미만을 받는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6월 26일 ‘최저임금 상승과 급여, 그리고 저임금 고용 : 시애틀에서 발견한 증거’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시애틀 최저시급이 10.5달러(약 1만1800원)에서 13달러(약 1만4600원)로 올랐을 때 19달러 미만의 시급을 받는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897달러(약 213만 원)에서 1772달러(약 199만 원)로 줄어들었다. 이는 최저시급이 오르자 회사가 저임금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9%가량 줄였기 때문이다.



    “여력 없는 업체 퇴출? 내 가게라면”

    이정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도 지난해 6월 열린 ‘중소기업 현실에 적합한 최저임금제도 개선 방향 토론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지난 8년간(2008~2016) 고용과 노동소득분배에 미친 영향을 실증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이 1% 상승하면 고용률은 0.14%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는 여성, 고졸 이하, 30인 미만 사업체 등 취약계층에서 더 부각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장기화의 징후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주문받는 직원 대신 자동주문 장치를 늘리기 시작한 것. 지난해 상반기 무인 종합정보안내시스템 ‘키오스크’를 도입한 맥도날드 매장은 52개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84개 매장에 설치됐다. 맥도날드는 올해 안에 전체 매장의 56%에 키오스크를 들여놓을 계획이다. 롯데리아는 이미 지난해부터 555개 매장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있으며 버거킹도 100여 개 매장에서 자동주문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물론 최저임금을 인상해 좋은 효과를 본 사례도 있다. 중국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근로자 임금을 2배 이상 높이겠다는 계획 아래 매년 각 지방정부가 최저임금을 평균 6~7%가량 인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2010년 33.8%에 불과하던 내수시장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를 4년 만에 51.2%까지 끌어올렸다. 정유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은 근로자 임금 인상   정책으로 소득주도의 내수시장 활성화에 성공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중국의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이 G2로 꼽히는 경제대국이라지만 여전히 한국에 비해 최저임금이 낮고 소득 불평등 정도도 심하다. 그만큼 기업이 임금 상승을 감당할 여력이 충분하다. 물론 한국도 높은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지만, 중국과는 처한 경제상황이 다른 만큼 정부와 기업의 협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은 차치하더라도 소상공인이나 중소업체는 최저임금 인상 여력이 부족한 듯하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6740원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업체가 많은 것.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국내 기업의 최저임금 미지급률은 12.1%. 최저임금 미지급이 발생한 곳의 87.6%가 근로자 30인 미만인 소규모 업체였다. 소규모 업체에서 최저임금 미지급이 주로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 자영업자의 월수입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자영업자 480만 명 가운데 51%가 한 달 매출이 383만 원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자영업자의 평균 순이익률이 20%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매달 집에 가져가는 돈은 80만 원도 안 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현행 최저임금조차 지급하기 어려운 소규모 업체의 폐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책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400조 원 넘는 자영업자 대출이 한국 경제의 주요 리스크로 꼽히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업체가 폐업하는 것은 일종의 구조조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업체 운영주가 사업을 정리하고 취업해 최저임금을 받고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최저임금 인상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자영업자가 폐업 후 취업할 곳이 없다는 점.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평균 연령은 53세. 대다수가 중·장년층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가 중·장년층 구직자 6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들 가운데 42%가 1년 이상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장기 실업 상태였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정모(27) 씨는 “아버지가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데 최근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결정으로 결국 공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공장이 임금 인상에 버티지 못할 만큼 한계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당연하다거나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진단은 듣고 싶지 않다. 그들이 보는 것은 숫자일지 모르나,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을 걸쳐 일궈온 생업이자 일터”라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최저임금 새로운 셈법 필요해

    7월 15일 최저임금위원회 표결을 거쳐 최저임금이 결정된 이상 이를 돌이킬 방법은 없다. 이 때문에 경영계에서는 산입 범위를 조정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올 하반기 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최저임금 산입 기준을 논의할 예정이다.

    최저임금법 시행규칙 제2조에 따르면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되는 것은 기본급과 직무수당뿐이다. 이 밖에 시간외 수당이나 연차수당, 식비, 교통비, 성과급 등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경영계는 이 가운데 주휴수당이나 성과급, 식비 등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도 최저임금 산입 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식비가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들어간다.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에서는 고정 지급되는 성과급과 식비까지 포함시켜 최저임금을 산정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해외 사례만 봐도 매달 지급하는 성과금이나 식비 등은 통상임금으로 취급해 최저임금 계산 시 반영되는데, 유독 국내에서만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내년부터 최저임금은 이미 시간당 1만 원을 상회한다”고 밝혔다.

    주당 40시간을 일하면 주휴수당으로 매주 8시간에 해당하는 급여가 가산된다. 따라서 새로운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2018년부터 매달 업주는 총 209시간에 해당하는 급여인 월 157만3770원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이 월급을 순수 노동시간인 174시간으로 나누면 최저임금은 시간당 9044원가량이다. 여기에 식비, 성과금 등 고정비용을 포함한다면 실제 업주가 지급하는 고정 시급은 1만 원이 넘을 공산이 크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되면 최저임금 근로자에 비해 많은 급여를 받는 9급 공무원 1호봉도 최저임금 미지급 대상이 되는 등 기현상이 나타나기 때문. 현재 초임 9급 공무원의 매달 기본급은 139만5800원. 여기에 직무수당에 해당하는 직급보조비 12만5000원을 더하면 월 152만800원이 된다. 시급으로 따지면 7276원.

    해당 공무원이 실제 월급으로 받는 돈은 최저임금 노동자에 비해 많다. 정액급식비 13만 원을 포함해 가족수당, 초과수당, 명절휴가비, 연가보상비 등 최저임금 산정 기준 외 다양한 수당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9급 공무원의 초임 연봉은 2220만 원으로 월급으로 계산하면 약 185만 원이다. 경영계 관계자는 “현재 최저임금 산입 기준에 따르면 고연봉자도 기본급이 낮으면 최저임금 미지급자가 되는 등 부작용이 있어 최저임금 산입 범위가 개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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