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1

2011.08.22

찰턴 헤스턴을 생각하며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8-19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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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주말에 본 최신작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1968년작 ‘혹성탈출’의 프리퀼(원작 이전의 이야기를 그린 속편)입니다. 주인공 원숭이 시저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 내친김에 원작까지 다시 찾아봤죠. 이런, 무려 43년 전 영화네요.

    어린 시절 TV에서 본 흐릿한 기억과 달리, 이 영화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SF 대작은 아닙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공들였을 원숭이 분장이 놀랍긴 해도, 아기자기하다 싶을 만큼 소규모인 원숭이 도시나 ‘인간’을 가둬놓은 철창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오히려 전위 부조리극의 무대장식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히피즘과 대항문화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뉴욕 언저리의 아방가르드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따지고 보면 주제도 마찬가지죠. 인류가 핵전쟁으로 지구를 말아먹고 나면 원숭이들이 인간을 노예처럼 부린다는 반전(反戰) 메시지. 주류 과학의 편견과 오만을 비판하는 풍자 역시 사뭇 진보적입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 영화의 주연배우가 찰턴 헤스턴이라는 사실입니다. 필모그래피 앞뒤로 빽빽한 종교성 짙은 역사물 속의 그는 의연하고 당당한 남자 그 자체죠. 노년에는 전미총기연합(NRA)이라는 단체의 회장으로 일하면서 총기규제법안 반대 로비의 최전선에 서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 진보진영이 그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해 비판한 이유죠. 하지만 이 영화 속의 그는 완전히 다릅니다. 까칠함으로 가득한 허무주의자 캐릭터는 오히려 요즘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미국 민주당 성향의 여피족 무신론자 뉴요커에 훨씬 가까워 보입니다.

    찰턴 헤스턴을 생각하며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혹성탈출’은 그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때의 반전 평화주의자가 나이 들어 총기소유 지지자가 된 것일까, 아니면 평생의 보수주의자가 어쩌다 보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작업하게 된 순간의 일탈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는 ‘생각의 차이’라는 게 흔히 선 긋듯 절대적인 무언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혹성탈출’ 속 찰턴 헤스턴의 또 다른 얼굴이 쉽게 규정짓는 일의 어리석음에 대해 일깨워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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