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4

2003.03.06

조폭 된 경찰, 경찰 된 조폭

  • 강성률/ 영화평론가 rosebud70@hanmail.net

    입력2003-02-27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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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폭 된 경찰, 경찰 된 조폭
    과거는 아름답고 현실은 고통스럽게 마련이다. 그런데 과거도 고통스럽고 현실도 고통스럽다면? 영화 ‘무간도’는 아름다웠던 홍콩영화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불황이라는 현실의 늪을 타파하려는 영화지만, 정작 영화 속 인물들에겐 과거도 현실도 미래도 암울하기만 하다. ‘무간도’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들과 스타들은 서둘러 짐을 꾸려 ‘꿈의 공장’ 할리우드로 향했고, 그들이 할리우드에서 화려한 성공을 구가하는 동안 홍콩영화는 예정된 수순인 양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는 법. 이제 홍콩영화의 전성기가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이를 두고 안이한 기획과 날림촬영을 남발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건 몰락을 지켜볼 수만은 없는 법. 몰락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감독들이 있었으니 그중 한 명이 바로 유위강이다. 그는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해 홍콩영화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가 전성기의 주역 류더화, 량차오웨이와 함께 홍콩 느와르로 돌아왔다.

    불교에서 말하는 18층 지옥 중 가장 낮은 층의,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인 무간지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곳이다. ‘무간도’는 두 명의 스파이를 소재로 한 영화다. 스파이에게는 상대를 속여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이 무간지옥일 수도 있고, 홍콩 영화인들에게는 경찰과 조직 사이의 총격전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홍콩의 현실이, 그리고 과거 홍콩영화를 부활시킬 수 없는 지금이 무간지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있으면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함도 있게 마련이다. ‘무간도’는 그런 결과물이다.

    조직에 잠입해서 활동중인 경찰 진영인(량차오웨이)과 경찰에 잠입해서 활동중인 첩자 유건명(류더화)은 각자의 공간에서 인정받는 중간급이다. 그들이 이제 필연적으로 부딪치기 시작한다. 마약거래를 적발하려는 경찰과 그것을 성사시키려는 조직과의 대결, 이 사이에서 양쪽 첩자의 역할도 긴밀해진다. 거래를 성사시키는 척하면서도 상황을 보고하는 진영인, 현장을 덮치는 척하면서도 정보를 흘리는 유건명 간의 대결은 숨막히는 긴장을 자아낸다.



    조폭 된 경찰, 경찰 된 조폭
    영화의 승부는 초반 10분에 나게 마련이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전체 상황을 설명하고, 전개될 내용을 암시하며, 인물의 캐릭터까지 소개해야 하는 초반 10분을 이 영화는 단 한 시퀀스, 즉 첫 거래를 하는 시퀀스에서 마무리짓는다. 놀라운 순발력이다. 눈에 돋보이는, 양 진영의 긴장을 이어주는 편집의 리듬은 감정의 미세한 결을 그대로 잡아낸다. 특히 스파이의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초반부터 관객을 스릴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는 스파이 영화에 대한 감독의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상황은 꼬여만 간다. 진영인의 신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황국장이 죽어버리자 둘의 상황은 급변한다. 진영인이 자신의 얼굴을 벗겨내도(페이스오프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유건명은 자신의 비밀을 아는 진영인을 영원히 묻으려 한다. 한 명이 죽어야 다른 한 명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둘은 이제 가짜의 삶을 버리고 싶어하지만, 그 원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영인은 진짜로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유건명은 진짜 얼굴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늦었다. 진짜도 될 수 없고 가짜도 될 수 없는 이런 삶은 그들에게 필연적으로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영화 속 인물에 관한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시야를 넓히면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지금의 홍콩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만약 이런 의도였다면, 홍콩영화의 미래는 얼마나 우울한가? 정말로 홍콩은 영화처럼 될 것인가?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간도’는 분명 매력적인 영화다. ‘무간도’에는 바바리코트를 입고 춤추듯 총알을 난사하는 장면은 없다. 본색을 드러내는, 일당 백의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긴박감 넘치는 상황이 있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낸 배우의 연기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연출이 있다. 이렇게 삼박자가 맞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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