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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다윗’ 리투아니아, 왜 ‘골리앗’ 러시아에 맞서나

칼리닌그라드 봉쇄 선봉… 반(反)러 정서 뿌리 깊은 280만 명 小國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1세기 다윗’ 리투아니아, 왜 ‘골리앗’ 러시아에 맞서나

러시아 화물열차들이 리투아니아의 제재 조치로 국경에 멈춰 서 있다.[TASS]

러시아 화물열차들이 리투아니아의 제재 조치로 국경에 멈춰 서 있다.[TASS]

칼리닌그라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위치한 옛 소련 후신인 러시아의 최서단 역외(域外) 영토다. 남쪽은 폴란드, 북쪽은 리투아니아, 서쪽은 발트해와 맞닿아 있다. 면적은 1만5100㎢로 강원도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10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칼리닌그라드는 과거 프로이센 왕국(독일의 전신)의 수도였다. 당시에는 쾨니히스베르크로 불렸다. 이 도시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의 고향이기도 하다. 프로이센은 1871년 독일 제국을 세우면서 수도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베를린으로 옮겼다. 쾨니히스베르크가 소련 땅이 된 것은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은 오데르-나이세강 동쪽 지역을 폴란드에, 쾨니히스베르크를 소련에 각각 양도했다.

소련은 1946년 명목상 국가원수이자 최고회의 의장인 미하일 칼리닌이 사망하자 그의 성을 따 도시 이름을 칼리닌그라드로 바꿨다. 모스크바에서 1600㎞ 떨어진 칼리닌그라드는 그동안 러시아의 전략 요충지라는 말을 들어왔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폴란드와 발트 3국(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은 물론, 유럽 중심 국가인 독일까지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곳에 해군기지를 만들어 발트함대의 모항으로 삼았고,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사거리 500㎞ 이스칸데르-M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 이 미사일은 유럽 주요국을 타격할 수 있다.

화약고로 떠오르는 수바우키 회랑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리투아니아의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리투아니아의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칼리닌그라드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육지의 섬’이 됐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칼리닌그라드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육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과 화물운송 협정을 맺고 2003년부터 리투아니아를 통해 칼리닌그라드로 화물을 운송했다. 그런데 EU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로 러시아산 물품의 역내 운송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리투아니아는 6월 18일부터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열차 운행을 대폭 제한했다. 이 때문에 첨단 제품과 건설 자재, 시멘트, 철강, 석탄, 금속 등을 실은 러시아 화물열차가 칼리닌그라드로 전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안톤 알리카노프 칼리닌그라드 주지사는 “칼리닌그라드가 수입하는 물품의 50%가 막힌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봉쇄’ 조치인 셈이다.

이에 격분한 러시아 정부는 “본토에서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은 수출품이 아니다”라면서 “중단된 화물 운송이 빨리 복원되지 않으면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러시아 정부는 리투아니아에 대해 외교·경제적 제재는 물론, 무력도 동원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25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스칸데르-M 탄도미사일을 제공할 것”이라며 “벨라루스가 보유한 Su(수호이)-25 전투기의 개량을 도와 핵무기 탑재를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리투아니아의 조치는 일종의 전쟁 선포”라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러시아 편을 들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두 정상의 강경한 태도로 볼 때 러시아가 ‘눈엣가시’인 리투아니아에 무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이 경우 러시아 본토와 칼리닌그라드를 연결하는 ‘수바우키(Suwalki) 회랑’ 지대가 러시아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 유력하다. 수바우키 회랑 지대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국경지대로 길이 100㎞에 이르는 육상통로다. 이 지역 양쪽 끝이 각각 벨라루스, 칼리닌그라드와 닿아 있다. 민간인은 거의 없고 숲과 작은 농장 등이 있는 완만한 평야지대라서 러시아군 전차부대가 기동하기 유리한 곳이다. 러시아군은 2017년과 2021년 벨라루스군과 합동훈련에서 탱크들을 동원해 수바우키 회랑 확보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나토 입장에서 볼 때 수바우키 회랑은 ‘아킬레스건’이다. 러시아군이 이곳을 점령하면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를 핑계 삼아 리투아니아와 갈등을 증폭하는 의도는 수바우키 회랑을 차지하려는 속셈이라고 보고 있다.

2004년 나토 가입으로 든든한 군사 지원

러시아군이 2021년 수바우키 회랑 인근 벨라루스에서 훈련하고 있다.[러시아 국방부]

러시아군이 2021년 수바우키 회랑 인근 벨라루스에서 훈련하고 있다.[러시아 국방부]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무력 도발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제재 대상이 아닌 물자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의 일상에 필수적인 식품과 의약품, 농업 관련 물품은 화물열차로 운송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러시아의 ‘에너지 보복’에 대응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BRELL(전력망) 시스템 차단 등에 대비해 유럽 전력망과 연결 계획을 추진해왔다. BRELL은 러시아·벨라루스·발트 3국을 연결하는 통합 전력 시스템이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국력이나 군사력 측면에서 열세다. 인구 280만 명의 소국으로, 전체 병력은 3만3000명(예비군 710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징병제로 병력 수가 늘었다. 탱크와 전투기조차 없다. 그런데도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에 맞짱을 뜨는 것은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2004년 EU와 나토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나토는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는 리투아니아에 적극적으로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 독일은 리투아니아 주둔 병력을 1000명에서 여단급 규모인 300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은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에 최신예 F-35A 스텔스 전투기 2대를 각각 배치했다. 미국이 발트 3국에 F-35를 배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또 리투아니아에 배치된 기갑 부대를 계속 주둔시키고 AH-64 아파치 공격 헬기도 추가 배치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만약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공격받는다면 나토 헌장 제5조에 따라 미국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토 헌장 제5조는 나토 회원국 한 곳이 공격받으면 나토 전체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해 공동대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말 그대로 나토와 EU가 리투아니아의 든든한 ‘뒷배’인 셈이다.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국민의 뿌리 깊은 반(反)러시아 정서 때문이다. 리투아니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탄압으로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 했다. 러시아 제국은 18세기 말 리투아니아를 점령하면서 강력한 문화말살정책을 폈다. 당시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리투아니아어 사용과 교육을 금지했고, 러시아어와 키릴 문자만 쓰게 했다. 리투아니아어 금지령은 40년이나 지속됐다. 이런 조치에도 리투아니아인들은 가정과 비밀 교육시설에서 리투아니아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이 기간에 비밀리 출판된 리투아니아어 서적만 350만 부가 넘었다.

강대국 횡포, 독재 통치에 극도로 반감

리투아니아 여성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LRT]

리투아니아 여성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LRT]

러시아 제국의 압제에도 민족혼을 지켜낸 리투아니아인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잠시 자유를 누렸지만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에 따라 소련에 다시 합병됐다. 이 조약으로 나치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통치하고 발트 3국은 소련이 차지했다. 이후 리투아니아는 유대인 20만 명 학살과 시베리아 강제 이주 등 40여 년간 소련 위성국가로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라즈비다스 야수티스 리투아니아 빌뉴스대 교수는 “1944년 이후 소련 치하에서 최소 13만 명이 노동교화소, 굴라크(정치범수용소), 시베리아 등으로 보내졌다”며 “리투아니아 국민에겐 이런 아픈 역사가 거대한 트라우마”라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 가운데 반러시아 정서가 가장 큰 국가가 리투아니아라는 말을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국민은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강대국의 횡포와 공산당 등 독재 세력의 강압 통치에 대한 극도의 반감,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민족 정서를 갖고 있다. 리투아니아가 대만을 억압하는 중국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해 11월 18일 중국의 보복 경고에도 수도 빌뉴스에 대만대표부 설치를 정식 승인했다. 유럽 국가들은 중국을 의식해 대만대표부를 타이베이대표부 등으로 우회해 칭하고 있지만, 리투아니아는 대만대표부 명칭 사용을 허가했다. 그러자 중국은 리투아니아와 외교 관계를 대리대사급으로 낮췄다. 중국이 유럽 국가와 외교 관계를 강등한 건 1981년 이후 40년 만이다. 중국은 또 리투아니아 수출품의 통관을 막는 등 경제 보복도 단행했다. 그 결과 리투아니아의 올해 1분기 중국 수출은 제로(0)를 기록했다.

 리투아니아는 이에 개의치 않고 9월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설치할 예정이다. 리투아니아는 이와 함께 신장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와 홍콩 등에서 자행되는 중국의 인권 탄압을 강력하게 비난해왔다. ‘골리앗’인 중국과 러시아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는 리투아니아는 ‘21세기 다윗’인 셈이다.





주간동아 1346호 (p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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