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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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을 잡고 한계까지 밀어붙여라

임시로 지휘권을 맡았을 때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gmail.com

    입력2015-09-07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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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도권을 잡고 한계까지 밀어붙여라

    미국 야전교범 ‘OPERATIONS(작전)’ 1993년판.

    공석인 부서장직 겸직은 사회생활을 오래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일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경험한다. 한 후배는 “6개월 동안 공석이던 부서장직에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10개월 동안 대리근무를 한 적이 있다”고 푸념한 적이 있다. 후배는 임시로 맡은 부서장직 근무 기간에 부서 성과와 인간관계 모두를 놓쳤다고 했다.

    직전 부서장은 퇴직 예정자였는데 말년이라고 업무와 부서원 모두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후배가 임시로 완장 하나 찼다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후배는 어떤 의미 있는 변화는커녕 일을 시키는 자체도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에게 딜레마는 ‘임시’라는 딱지였다. 전후사정 봐가며 다독여 부서를 끌어가자니 성과가 잘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책에 따라 지시하고 통제하면 대리 기간이 끝났을 때 인간관계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이럴 때 참고할 만한 군사작전의 원칙이 바로 ‘주도권의 원칙’이다.

    임시 부서장이라도 부서원들이 순순히 지시에 따라준다면 좋겠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후임자가 오면 어차피 내줄 자리니까 현상 유지만 했으면 좋겠건만 조직은 언제나 성과를 원한다. 그러므로 대리건 임시건 손에 쥔 칼자루를 휘두를 때는 마음먹고 제대로 휘둘러야 한다. 즉 주도권을 쥐고 리드해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보고 먼저 판단하라

    군사작전에서 주도권(initiative)이란 행동에 의해 전투의 조건을 설정하거나 변화시키고, 작전 수행 시 공세적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도권을 쥔 측은 행동의 자유를 얻어 자신이 선택한 방향과 템포대로 상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주도권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수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미국 야전교범 ‘OPERATIONS(작전)’는 작전환경과 위협의 변화 등에 따라 1939년 이래로 수시로 개정돼왔는데, 그중 가장 오랫동안 개정되지 않은 채 사용된 것이 1993년판이다. 1993년판은 처음으로 ‘전쟁의 원칙’을 구체화했고 공격, 방어별 준칙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교범이다.

    ‘작전’에 제시된 주도권 획득의 행동수칙 첫 번째는 먼저 보고 먼저 판단하라는 것이다. 미군 군사교리 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개념 가운데 하나로 ‘OODA loop(우다루프)’라는 것이 있다. 군사작전 간 실행되는 의사결정 네트워크의 기본 논리인데 관찰(Observation), 정렬(Orientation), 결심(Decision), 행동(Action)으로 구성된다. OODA loop는 미국의 유명한 전략사상가인 존 보이드(John Boyd·1927~97)가 6·25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이론이다. 전쟁 당시 미 공군 전투기 F-86(일명 세이버)의 성능은 소련 미그기에 비해 열세였다. 그러나 미 공군은 성능 차이를 비행전술로 뒤집었다. 보이드는 이 성공 요인이 먼저 보고 먼저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당시 F-86 콕핏(조종석) 창문이 돔 모양으로 돼 있어 전후좌우 시야를 확보하기가 용이했다는 것이다.

    행동수칙 두 번째는 전장에서 획득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칙으로, 인내의 한계까지 조직을 밀어붙이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흔히 쓰는 상용구 ‘할 땐 팍, 쉴 땐 푹’에서 알 수 있듯이 평시나 작전준비 기간에는 시간과 여유를 충분히 갖고 일하되, 작전이 일단 시작되면 인내의 한계까지 조직을 밀어붙여 완강하게 공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성과의 열매가 좀 더 일찍 맺히고 곪아 있던 문제도 일찍 발견할 수 있다.

    행동수칙 세 번째는 필요시 주 노력(main-effort) 방향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주 노력 방향이란 군사작전에서 아군의 주력이 지향하는 시공간을 말한다. 전쟁사를 보면 예측을 벗어난 시공간상의 기습이 전세를 역전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은 당대 미 합동참모본부마저 반대할 정도로 위험 부담이 큰 작전이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북한군은 맥아더 장군이 인천에 상륙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춤춰라

    주도권을 잡고 한계까지 밀어붙여라
    그렇다면 이와 같은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볼 수 있을까. 첫째는 고급정보를 획득해 분배하는 것이다. 부서장이 일반 직원에 비해 상대우위인 점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첩보를 독점적으로, 빨리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는 다양한 첩보를 입수할 수 없고, 첩보를 입수했다 해도 갖고만 있으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겸직일지라도 다른 부서장을 자주 찾아가 다양한 얘기를 듣고, 인사과나 총무과를 통해 개인 인사나 부서 업무조정 등에 관한 첩보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부서 회의나 실무자 개인 면담에서 적극 활용하면 부서장으로서 업무를 주도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둘째는 상대가 속앓이를 하기 바로 직전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부서원들이 자발적으로 보고와 실행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업무에 전념토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공석 직책을 겸직해 부서장이 된 경우라면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상대의 속이 드러나는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핵심은 ‘딱 그 한계까지만’ 밀어붙여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표적 협상가 중 한 명인 짐 토머스는 ‘인내는 상대방의 입장 속에 있는 부드러운 알맹이들을 드러나게 한다’면서 ‘5시 제안’이라는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설득이 어려운 사안으로 상대와 의견 대립이 있을 때 퇴근시간까지 기다렸다 오후 5시가 되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그 대신 오늘 내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이 조건입니다. 좋습니까. 자, 그럼 제안을 하겠습니다. 지금 현재의 사안에 대해 오늘, 내일 아침까지 그냥 생각만 하십시오. 내일 아침 당신의 생각을 듣겠습니다.”

    퇴근시간까지 말하지 않고 있다 제안하는 것,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놓고 밤새 고민하게 만드는, 상대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고도의 전략이다. 토머스는 이러한 과정을 ‘속앓이’라고 표현했다. 부서원들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그 당사자들에게도, 밀어붙이는 부서장에게도 큰 스트레스이지만 공석인 부서장직을 임시로 맡았다면 때로는 해봄직한 시도다.

    셋째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열정적으로 춤을 추라’는 것이다. 사례를 하나 들면, 미국 쪽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부서에 영어를 거의 못하는 과장이 온 적이 있다. 대대로 부임해온 과장들은 약간이라도 영어를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전혀 할 줄 몰랐다. 그런데도 그는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다.

    그는 사무실이 아니라 운동장에서부터 일을 풀어나갔다. 그는 영어는 못했지만 운동에 자신이 있었다. 장점을 십분 활용해 몸으로 뛸 수 있는 한미 간 축구, 소프트볼 경기를 기획했고 주전선수로 뛰었다. 뒤풀이 자리에서는 불고기에 한국식 소주 파티로 분위기를 띄웠다. 각종 회의와 협조 때는 예정 시간보다 일찍 가서 미국 측 인원들과 축구, 소프트볼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함께 찍었던 사진을 나눠줬다. 좋은 분위기가 회의석상에서도 이어졌다.

    남의 리듬에 신경 쓰면서 뒤쫓아가다 엇박을 낼 필요가 없다. 자신의 리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적극적으로 리듬을 만들어 열정적으로 춤을 추면 결국에는 모두가 박수를 쳐주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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