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 내용에 따라 3년 유예기간이 지난 올해 3월 15일 제네릭(복제약) 제조사의 권리를 보호하는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가 시행됐다. 이 제도는 제네릭 제조사가 오리지널 제약사를 상대로 특허무효 심판을 제기해 승소할 경우 9개월 동안 ‘우선판매권리’, 즉 독점판매권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신약을 개발한 오리지널 제약사는 가장 먼저 신약을 구성하는 물질에 대한 특허권을 확보한다. 이후 오리지널 제약사는 특허 범위를 넓게 설정한 뒤 2~3년 간격으로 약의 형태나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후속 특허를 추가해 특허권을 방어하는데 이를 ‘에버그리닝 전략’이라고 한다. 이 전략에 따라 제네릭 제조사는 최초 신약의 특허권이 만료된 후에도 후속 특허권에 걸려 해당 약을 판매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러한 불이익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바로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다.
특허심판원 관계자에 따르면 제도가 시행된 3월 15일부터 4월 말까지 접수된 특허무효 심판청구 건수는 200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제약사가 최초 청구를 하면 14일 이내 다른 제약사도 청구할 수 있게 한 규정에 따라 뒤늦게 많은 제약사가 무더기로 진입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9개월 독점판매권’의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당시 제약사들은 “복제약 한 건의 1년 치 수익 가운데 75%를 다른 제약사들이 먼저 나눠 갖는 광경을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2000여 건 접수, 800여 건 취하
그러나 무더기 접수 이후 한 달 동안 전체의 40%가량인 800여 건이 취하됐다. 이에 대해 이재국 한국제약협회 상무는 “한미 FTA 시행 직전까지 국내 제약업계에 위기감이 컸다. 국내 제약시장은 복제약을 제조하는 기업이 대부분인데 새로 생기는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에 따라 특허무효 심판청구로 권리를 확보하려는 제약사가 많았다. 그런데 막상 여러 제약사가 무효화 소송을 진행하다 보니 독점권을 받아도 상대적 이점이 없게 됐다. 또 심판에 이르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도 적잖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제약사가 많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A 제약사 관계자는 “14일 이내 신청하지 않은 품목은 이후 심판청구를 따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수익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모두 청구를 했다. 이후 시간을 갖고 회사 내부적으로 검토한 뒤 실질적으로 승소가 가능한 것들만 놔두고 이길 수 없는 것들은 취하했다”고 말했다. 취하에 따른 손해 여부에 대해서는 “내부 법무팀이 있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지 않아 별도의 손해는 없었다. 그러나 외부 특허법인을 통해 심판청구를 진행한 회사들은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B 제약사 관계자는 “사실 물질특허와 같이 애초에 승소가 절대 불가능한 것들은 진입하지 않으려 했지만 너나없이 심판청구를 하는 통에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제도 시행 초기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한다. 앞으로는 숨은 보석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회사 전략에 부합하는 것들 위주로만 청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국적 제약회사의 국내법인도 국내 제약사들의 특허무효 심판청구 무더기 취하에 곤혹스러워했다. 한 국내법인의 관계자는 “특허와 관련된 소송이 들어올 때도, 취하를 할 때도 본사에 보고해야 한다. 특허무효 심판청구를 했다 취하하는 일도 이례적인데, 그것이 수십 건에 달하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몇몇 제약사와 대형 특허법인의 전략에 다른 제약사들이 놀아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C 특허법인 관계자는 “생산시설도 갖추지 않은 작은 연구개발 제약사가 물질특허를 비롯해 수백 건의 특허무효 심판청구를 하기도 했다. 또 한 대형 특허법인은 제도 시행과 동시에 오리지널 제약사 수백 곳을 상대로 800여 건의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일단 독점권을 확보한 뒤 권한을 판매하려는 등의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관련 분야를 제외하고 여타의 소송에 관심 없던 여러 제약사가 이러한 움직임에 휩쓸린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독점판매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워
무더기 특허무효 심판청구로 행정력이 낭비된 것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특허심판원 심판정책과의 한 서기관은 “제도 시행 이후 갑자기 업무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현재 1200여 건에 대한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8월까지 2건이 통과돼 해당 제약사들은 우선판매권을 확보했다. 심판은 순서대로 진행하고 있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무더기 취하로 우려할 만한 업무상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러한 청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인력을 5명 정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B 제약사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최초 특허무효 심판청구를 한 회사에 한해 우선판매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익이 매우 크다. 우선판매권을 획득한 제네릭 제조사는 독점판매 기간 내 얻은 수익으로 다시 투자 및 개발에 나서는 등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초 특허무효 심판청구 이후 14일 이내 다른 제약사들에게도 청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제도가 보건복지부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A 제약사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정책은 한국의 300여 개 제약사를 각각 특성화하고, 전문화·차별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는 나눠 먹기 식으로 우선판매권을 부여하고 있어 제약사들을 전략적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보건복지부 정책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7월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와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가 국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한 영향평가에 들어갔다. 해당 제도가 국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하고 국내 제약산업과 보건정책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평가한다는 계획이다. 특허심판원 관계자는 “한미 FTA에 따라 약사법이 개정되고 관련 제도도 새롭게 정비됐는데 이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식약처에서 점검해야 한다.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신약을 개발한 오리지널 제약사는 가장 먼저 신약을 구성하는 물질에 대한 특허권을 확보한다. 이후 오리지널 제약사는 특허 범위를 넓게 설정한 뒤 2~3년 간격으로 약의 형태나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후속 특허를 추가해 특허권을 방어하는데 이를 ‘에버그리닝 전략’이라고 한다. 이 전략에 따라 제네릭 제조사는 최초 신약의 특허권이 만료된 후에도 후속 특허권에 걸려 해당 약을 판매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러한 불이익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바로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다.
특허심판원 관계자에 따르면 제도가 시행된 3월 15일부터 4월 말까지 접수된 특허무효 심판청구 건수는 200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제약사가 최초 청구를 하면 14일 이내 다른 제약사도 청구할 수 있게 한 규정에 따라 뒤늦게 많은 제약사가 무더기로 진입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9개월 독점판매권’의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당시 제약사들은 “복제약 한 건의 1년 치 수익 가운데 75%를 다른 제약사들이 먼저 나눠 갖는 광경을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2000여 건 접수, 800여 건 취하
그러나 무더기 접수 이후 한 달 동안 전체의 40%가량인 800여 건이 취하됐다. 이에 대해 이재국 한국제약협회 상무는 “한미 FTA 시행 직전까지 국내 제약업계에 위기감이 컸다. 국내 제약시장은 복제약을 제조하는 기업이 대부분인데 새로 생기는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에 따라 특허무효 심판청구로 권리를 확보하려는 제약사가 많았다. 그런데 막상 여러 제약사가 무효화 소송을 진행하다 보니 독점권을 받아도 상대적 이점이 없게 됐다. 또 심판에 이르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도 적잖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제약사가 많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A 제약사 관계자는 “14일 이내 신청하지 않은 품목은 이후 심판청구를 따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수익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모두 청구를 했다. 이후 시간을 갖고 회사 내부적으로 검토한 뒤 실질적으로 승소가 가능한 것들만 놔두고 이길 수 없는 것들은 취하했다”고 말했다. 취하에 따른 손해 여부에 대해서는 “내부 법무팀이 있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지 않아 별도의 손해는 없었다. 그러나 외부 특허법인을 통해 심판청구를 진행한 회사들은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B 제약사 관계자는 “사실 물질특허와 같이 애초에 승소가 절대 불가능한 것들은 진입하지 않으려 했지만 너나없이 심판청구를 하는 통에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제도 시행 초기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한다. 앞으로는 숨은 보석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회사 전략에 부합하는 것들 위주로만 청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국적 제약회사의 국내법인도 국내 제약사들의 특허무효 심판청구 무더기 취하에 곤혹스러워했다. 한 국내법인의 관계자는 “특허와 관련된 소송이 들어올 때도, 취하를 할 때도 본사에 보고해야 한다. 특허무효 심판청구를 했다 취하하는 일도 이례적인데, 그것이 수십 건에 달하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몇몇 제약사와 대형 특허법인의 전략에 다른 제약사들이 놀아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C 특허법인 관계자는 “생산시설도 갖추지 않은 작은 연구개발 제약사가 물질특허를 비롯해 수백 건의 특허무효 심판청구를 하기도 했다. 또 한 대형 특허법인은 제도 시행과 동시에 오리지널 제약사 수백 곳을 상대로 800여 건의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일단 독점권을 확보한 뒤 권한을 판매하려는 등의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관련 분야를 제외하고 여타의 소송에 관심 없던 여러 제약사가 이러한 움직임에 휩쓸린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3월 15일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가 시행되면서 국내 제약사들이 대거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무더기로 취하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은 한 제약사 연구실 모습.
무더기 특허무효 심판청구로 행정력이 낭비된 것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특허심판원 심판정책과의 한 서기관은 “제도 시행 이후 갑자기 업무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현재 1200여 건에 대한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8월까지 2건이 통과돼 해당 제약사들은 우선판매권을 확보했다. 심판은 순서대로 진행하고 있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무더기 취하로 우려할 만한 업무상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러한 청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인력을 5명 정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B 제약사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최초 특허무효 심판청구를 한 회사에 한해 우선판매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익이 매우 크다. 우선판매권을 획득한 제네릭 제조사는 독점판매 기간 내 얻은 수익으로 다시 투자 및 개발에 나서는 등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초 특허무효 심판청구 이후 14일 이내 다른 제약사들에게도 청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제도가 보건복지부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A 제약사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정책은 한국의 300여 개 제약사를 각각 특성화하고, 전문화·차별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는 나눠 먹기 식으로 우선판매권을 부여하고 있어 제약사들을 전략적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보건복지부 정책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7월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와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가 국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한 영향평가에 들어갔다. 해당 제도가 국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하고 국내 제약산업과 보건정책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평가한다는 계획이다. 특허심판원 관계자는 “한미 FTA에 따라 약사법이 개정되고 관련 제도도 새롭게 정비됐는데 이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식약처에서 점검해야 한다.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