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왼쪽)이 8월 26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해야 하는 정치결사체다. 이 때문에 전체 민주주의를 위해 약간의 특권 또는 치외법권적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것을 민주적 절차에 따르려 하다가는 대의민주주의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 부소장이 언급한 약간의 특권 또는 치외법권적 권한 행사가 바로 공천권 행사다. 정당을 대표해 선거에 누구를 내보낼지 결정한 뒤 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당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배타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특권을 용인하는 셈이다.
정당의 공천권 행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에는 사무총장 또는 선거기획단장이 선거구마다 2~3배수 후보자를 추린 뒤 총재의 낙점을 받아 공천하거나, 선거를 앞두고 영입한 새 인물에게는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무혈입성을 허용했다. 최근에는 공천에 경쟁원리를 도입해 경선을 공천의 기본 원칙으로 택하기도 한다.
정당에서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전당대회나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경선 때 자신을 도와줄 동지에게 임기 4년짜리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안정적인 당내 지지세력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한 인사는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등은 몇십 명, 기초단체장은 몇백 명,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은 몇천 명의 지지자를 동원할 힘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새정연은 광주광역시장 후보로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강운태 전 시장과 이용섭 전 의원 등 쟁쟁한 후보가 있었음에도 시민단체 출신으로 무명이던 윤 후보가 공천장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안철수 당시 공동대표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광주는 2002년 국민경선 때 노무현 후보에게 경선
1위를 선물하며 ‘광주 경선의 기적’을 일으킨 곳으로, 광주 경선을 분기점으로 노무현 대세론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안 의원이 윤장현 카드를 고집하자 당내에서는 “안 의원이 ‘어게인 2002’를 노리고 일찌감치 2017년 대선후보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준비된 경선 승리의 한계
전국선거를 앞두고 각 당에서 치르는 당대표 경선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것도 ‘당권+공천권’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는 당권을 쥐고 공천권을 행사해 자신의 지지세력을 확보한 뒤 여세를 몰아 대권까지 거머쥔 대표적 인물이다. 양 김 이후에는 2007년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정동영 후보가 공천권 행사로 대선후보에 오른 사례로 꼽힌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은 예비경선과 본경선 두 차례 실시됐는데, 상위 5명의 본선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예비경선은 국민 여론조사 50%와 선거인단 여론조사 50%를 반영했다. 예비경선 세부 결과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당시 국민 여론조사에서 앞선 손학규 후보가 선거인단 여론조사에서 앞선 정동영 후보를 근소한 표차로 앞섰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러나 본경선 결과는 예비경선과 크게 달랐다. 손 후보는 정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했다. 민심에서 앞선 손 후보가 당심에서 앞선 정 후보에게 패한 이유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앞서 실시됐던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등 두 차례 전국선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을 주도한 세력은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이른바 ‘정통들’이었다. 정통들은 2002년 대선 때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정통들이 전국적으로 조직을 키워간 데는 두 차례 전국선거가 계기가 됐다. 첫 번째 계기는 2004년 총선.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인 정동영 초대 당의장은 자신이 진두지휘한 2004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넘기며 대승을 거뒀다. 정 의장은 열린우리당 창당 때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외부 인사를 대거 영입해 공천장을 줬는데 총선에서 금배지를 단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통들 조직화에 앞장섰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봐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고친다고 하던가. 정치권에선 그 얘기가 ‘남녀 불문하고 자신을 발탁하고 공천을 준 사람에게 보답한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공천 때 도움을 받고 나 몰라라 한 사람은 ‘배신자’로 낙인찍혀 다음 공천 때 배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6년 6월 지방선거 직전 다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으로 복귀한 정동영 의장은 전국 지방선거 공천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정 의장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공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 전국적으로 친(親)정동영 인사를 대거 포진시켰다. 정통들 멤버 가운데는 정 의장 도움으로 광역의원과 지방의원 등에 당선한 이가 적잖았다.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등 두 차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한 ‘정동영 파워’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위력을 발휘해 대선후보를 거머쥐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조직화된 세력의 뒷받침으로 당내 대선후보에 오를 수는 있었지만, 민심까지 얻어 대통령에 당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1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동주최한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제) 토론회 모습.
당시 정동영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이 2002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경선이라는 큰 틀을 유지할 것으로 봤기 때문에 (대선후보) 경선 준비는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본선은 전혀 달랐다”며 “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후보와 캠프 역량만으로 불리한 대선 국면을 돌파하는 일은 역부족이었다”고 회고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은 대통합민주신당과 정반대였다. 당심에서 앞섰던 박근혜 후보가 민심에서 앞선 이명박 후보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한 것.
박 후보가 당심에서 앞설 수 있었던 것은 공천권을 활용해 당 장악력을 높였던 정동영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 대표는 2004년 총선 직전 불거진 ‘2002 대선자금 차떼기’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여파로 누란지위에 놓인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이후 ‘천막당사’를 거치며 당 재건에 성공했고, 재·보궐선거(재보선)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데 이어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수도권 압승을 거두며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위기에서 당을 구해낸 박 대표에게 당내에서 ‘박다르크’라는 칭송이 이어졌고, 재보선 공천과 지방선거 공천, 당직 인사 등을 계기로 당 장악력을 차츰 높여갔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의 당 안팎 여론은 한나라당 재건 주역 박근혜보다 청계천 복원의 주인공 이명박을 향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직전 TK(대구·경북) 출신 한 의원은 “박근혜, 이명박 두 후보 가운데 민심이 조금이라도 더 원하는 후보를 본선에 내보내야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이명박 지지 의사를 밝혔다. 결국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높이는 경선룰 변경에 힘입어 이명박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고, 그해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했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당심의 승리가 경선 승리로 이어진 데 반해, 한나라당은 민심에서 앞선 후보가 당심에서 앞선 후보를 누르고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대선 결과는 600만 표차라는 큰 차이로 한나라당의 승리였다.
2012년 대선 때는 어땠을까.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른 2012년 대선 결과는 큰 틀에서 보면 2012년 4월 총선 공천을 주도한 이가 대선후보에 무난하게 올랐고, 비록 ‘안철수 변수’가 있었지만 총선 결과가 곧 대선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공천권 행사가 대세론으로 이어져 손쉽게 대선후보에 오르고, 총선 승리의 여세가 대선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대 총선 공천 향한 샅바싸움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가운데)이 8월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8차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내년 총선 공천권 행사를 둘러싸고 두 당이 견해차를 보이는 것은 김무성, 문재인 두 대선후보의 대선 전략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김 대표는 현 체제에 변화를 주지 않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치르고 그 여세를 몰아 내후년 대선까지 현 구도를 이어가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며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창하는 데는 지난해 전당대회 승리가 밑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을 대표로 만들려는 친박근혜(친박)계의 시도를 비박근혜(비박)계 인사들의 도움으로 이겨냈다. 당대표 당선을 계기로 김 대표는 비박계 수장이자 포스트 박근혜를 책임질 새누리당 유력 차기주자라는 위상까지 덤으로 챙겼다. 현재의 새누리당 권력지형이 내후년 대선후보 경선까지 이어지는 것이 김 대표에게 가장 유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권력 헤게모니를 빼앗긴 친박계는 내년 총선 공천을 계기로 당내 세력구도를 바꾸지 못하면 비주류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내각에서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이른바 ‘새로운 친박근혜’ 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후반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명분으로 대거 내년 총선 출마에 나설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내각에서 일하던 그들이 지역에 일찌감치 뿌리를 내리고 착실히 경선을 준비해온 현역의원이나 당원협의회(당협) 위원장을 상대로 오픈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하기란 난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친박계가 김 대표가 주창하는 오픈프라이머리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김무성 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 주도권 경쟁에서 박 대통령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오픈프라이머리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새누리당 공천 갈등은 본질적으로 현재권력인 박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김무성 대표 사이의 주도권 다툼 성격이 강하다”며 “친박계와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청와대의 총선 공천 개입을 최소화할 방편으로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집요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새정연 문재인 대표는 총선 공천을 계기로 삼아 대대적 물갈이로 야권 지지층에게 달라졌다는 인식을 심어줘 외연 확대를 꾀하려 한다. 박힌 사람을 빼내야 새로운 인물을 집어넣을 수 있는 법. 새정연이 ‘혁신’이란 이름으로 공천 방식에 변화를 주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문제는 새정연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 가운데 상당수가 2012년 총선 때 이른바 ‘단수공천’으로 지역구를 꿰찬 친노무현(친노)계 인사라는 점이다. 새정연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친노를 빼내고 참신하면서 능력 있는 비노무현(비노)계 후보를 내년 총선에 얼마나 내보내느냐가 총선 승패를 가를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새정연 안팎에선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비노 진영 한 인사는 “20% 물갈이는 문재인 대표와 친노 진영에 반감을 드러내온 비노 인사들을 겨냥할 게 분명하다”며 “객관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평가위원회를 꾸리겠지만, 결국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비노 배제 공천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