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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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기 반색, 러·중의 야심

NATO·유로존 균열 가해 남유럽 진출 노려…미·EU 화들짝

  • 이유종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입력2015-07-13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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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적 파산에 내몰린 그리스의 몸값이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급등하는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가 지정학적 안보를 이유로 그리스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의 협상안에 반대한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과에도 유럽연합(EU) 정상들이 “협상의 문은 열려 있다”며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7월 7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약속된 개혁안을 제출하지 않자 EU 정상들은 마감시한을 9일로 연장했다. 채권자 EU가 채무자 치프라스 총리에게 끌려가는 모양새다.

    그리스의 ‘벼랑 끝 전술’을 가장 반기는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그리스를 향해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EU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 탈퇴를 부추기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긴축정책안에 반대하는 그리스 투표 결과가 나온 7월 6일 치프라스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러시아야말로 유럽의 압박에 놓인 그리스의 우군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적 위기로 바쁜 치프라스 총리는 올해 두 번이나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푸틴 대통령과 치프라스 총리는 6월 19일 정상회담을 갖고 그리스를 통과하는 천연가스관 설치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러시아 천연가스관은 현재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데, 그리스를 통과하도록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러시아가 부담한다. 러시아 기업이 그리스 공기업의 민영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미끼도 던졌다. 모두 그리스의 일자리와 세수 확대에 도움이 되는 사업들이다.

    정서적 공감대, 오랜 인연

    러시아가 그리스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균열을 꾀하고 그 틈을 타 영향력 확대를 노리겠다는 속내 때문이다. 그리스를 NATO에서 빼낼 수 있다면 러시아의 영향력이 남부 유럽까지 확대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내전 등 서방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에게는 매력적인 카드일 수밖에 없다. 반면 서방 국가들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냉전시기부터 그리스 내 미군기지는 소련의 팽창을 막는 보루 구실을 담당했다. 러시아글로벌문제연구소의 미카엘 델리아긴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를 노리고 있다. 그리스가 NATO를 떠난다면 그리스를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리스는 정서적으로 다른 서방 국가보다 러시아에 훨씬 가깝다. 국민 대다수의 종교가 동방정교회로 러시아와 같다는 게 첫 번째다. 러시아는 근대 그리스 독립전쟁을 지원했을 정도로 과거부터 각별함을 보여왔다. 이러한 정서적 유대감 때문인지, 냉전시기 그리스는 NATO에 참여했으나 모호한 중립성을 추구하며 옛 소련에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스 위기 반색, 러·중의 야심
    이와 달리 그리스와 서방 국가 사이에는 여러 분야에서 상이한 점이 적잖다. 그리스에서는 20세기 말에야 근대적 정치결사체인 보수당과 사회당이 등장했다. 일찌감치 진보 및 보수 정당을 형성한 서방 국가들과는 다른 정치문화를 갖고 있고 의사결정 구조도 다르다. 기업을 대부분 가족이 경영할 정도로 경제구조도 상대적으로 후진적이다. 정서적으로나 실리적으로 서방보다 러시아에 기댈 개연성이 더 크다는 뜻이다.

    중국도 그리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7월 4일 중국이 최대 교역상대인 유럽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국 내 증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스 사태에 해결사로 개입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4조 달러(약 4547조 원)에 육박하는 외환보유고를 지닌 중국은 이미 구원투수 등판 채비를 마친 상태다. 전 세계로 금융 파워를 확장하는 중국이 초대형 인프라 투자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의 육상과 해상 21세기 실크로드 장기 개발 전략) 프로젝트를 해운(海運) 강국인 그리스에서 실현하려고 기회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중국이 손을 잡는다면 중국은 유럽으로 들어가는 창구를 마련하는 셈. 지난해 중국은 아테네 피레에프스 항에 50억 달러(약 5조6000억 원)를 투자한 바 있지만 그리스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차질을 빚었다. 중국으로서는 그리스 위기를 통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입지를 강화하고 국책사업의 악재를 줄이고자 적극 개입할 수 있다는 게 포린폴리시의 분석이다.

    오바마가 전화를 건 이유는

    독일, 프랑스 등 EU 국가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할 경우 유럽이 분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EU를 지탱하는 주요 축인 유로존에서 그리스가 탈퇴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이미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온 국가들의 추가 탈퇴로 이어질 수 있다. 유로존과 EU가 붕괴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리스와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7월 7일 그리스 사태를 논의하고자 열린 EU 정상회의에는 28개 회원국 정상이 모두 참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리스가 5년 전 구제금융을 신청해 두 차례 지원을 받은 후 유로존 정상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한 적이 있으나,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 정상 전원을 초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전례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리스 위기가 유럽의 안보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현안일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그리스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구애에 다급해진 또 다른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그동안 미국은 그리스 위기를 ‘유럽의 문제’라며 사실상 방관해왔지만, 우크라이나를 놓고 러시아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그리스가 러시아의 손을 잡으면 전선이 발칸반도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염려한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와 인접한 중동 지역 안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 중국이 지중해까지 진출하는 시나리오 역시 좌시하기 어렵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독일, 프랑스 등 EU 주요국 정상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리스가 EU에 잔류하도록 노력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7월 6일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을 수 있도록 타협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떨어져나가면 경제적 영향은 물론 러시아와의 긴장관계, 중동 위기 등 안보 측면에서도 적잖은 타격을 받으리라는 우려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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