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6

..

‘수출 성장’ 한중일 내수를 살려라

미국과 유럽 소비 축소 만성화, 전 세계 무역 침체 코앞에

  • 배리 아이켄그린 UC 버클리대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입력2015-02-16 10:2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올 한 해 아시아 경제는 어떻게 움직일까. 간만에 돌아온 미국의 회복세는 태평양 너머 세 나라에게도 도움이 될까. 문제는 서구 국가들의 경기가 되살아나면 아시아 국가들도 함께 활황을 맞았던 예전 패턴이 최근 수년간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청신호에도 한국, 중국, 일본이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중국과 일본의 2015년 경제흐름을 전망한 영문 계간지 ‘글로벌 아시아’ 최근호 커버스토리 3편을 번역 소개한다.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온 기적적인 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글로벌 무역 덕분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발전 전략이 ‘수출주도형 성장’으로 불린 이유였다. 일본에서 처음 시작된 이 같은 전략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로 이어졌고, 중국에서 꽃을 피웠다. 근래 들어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수출용 공산품을 생산하는 제조업 분야에 노동력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생산되는 제품의 40%가 해외에서 팔린다. 이 나라의 거대한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숫자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해외’가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아시아 경제는 북미와 유로존의 경제 상황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은 이러한 구조를 여실히 증명한 바 있다.

    다행스럽게도 주요 아시아 국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도를 잘 극복해냈다.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이 시작한 치명적인 파생상품에 발을 담그지 않았던 아시아 은행들은 큰 타격을 면했고, 건전한 재정 상황과 넉넉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이들 나라는 국가 차원의 위기도 겪지 않았다. 그사이 이들은 기반산업 투자에 힘을 쏟았다. 서구 경제의 생산성이 되살아나면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실적도 당연히 살아날 것이라는 예상이 뒤따랐다.

    되살아나지 않는 서구 경제



    ‘수출 성장’ 한중일 내수를 살려라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우려가 앞선다. 미국이 한창 경제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침체에서 벗어날 때 통상 나타나는 회복세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2%. 경기 순환 사이클의 회복 단계에서 나타나는 통상 성장률의 절반에 불과한 숫자다. 지난 몇 년간 성장률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유럽 국가의 실적은 더욱 아쉽다. 2012, 201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한 유럽 국가들은 2014년에도 1%에 못 미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유로존의 수입 규모는 2012년 감소했고, 2013년에는 0.5%에 못 미치는 증가세를 기록했다. 2014년 들어 3% 증가했지만 여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주요 선진국의 수입 증가율은 연평균 6% 안팎이었다.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가장 큰 한계는 아시아 각국의 경제를 짓누르는 북미와 유럽의 성장 둔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들 주요 선진국에서 아시아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이 줄어든 것이 단순히 경기 침체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이들 나라의 소비 패턴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일 북미와 유럽 소비자의 취향이 아시아 국가의 제품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라면 이들 시장에 경제 성장을 의지해온 아시아 국가들의 발전 전략 역시 한계에 봉착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최근 주요 선진국이 겪고 있는 제로(0)에 가까운 금리와 성장 둔화세는 단순한 경제 주기의 변화가 아니라 만성적인 정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이들 국가의 실질금리는 이미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금리는 해당 경제권의 저축과 투자에 따라 좌우된다. 가용한 예금을 소화할 만큼 투자 수요가 충분치 않은 나라에서 금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 무렵 무섭게 늘어난 신용대출 붐이 이미 가라앉기 시작한 미국과 유럽의 주택시장 및 소비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했을 뿐이다. 그렇게 형성된 거품과 조작된 호황의 끝이 바로 금융위기였다.

    세계 무역 구조 자체가 변해

    ‘수출 성장’ 한중일 내수를 살려라

    인도 뭄바이의 한 법률업무 아웃소싱 전문 로펌. 80여 명의 변호사와 정보기술(IT) 엔지니어들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세계 곳곳의 다국적 기업에서 의뢰한 문제들을 처리하고 있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비즈니스맨들이 퇴근하면서 이들에게 e메일로 자료를 보내면 이튿날 아침 출근해 완성된 양식의 법률 서류로 받아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새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1930년대에도 서구 주요 국가는 제로에 가까운 금리와 수요 침체로 장기침체에 빠진 바 있다. 당시 자본 형성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인구와 노동력 증가의 둔화였다. 자본 규모에 걸맞은 노동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투자 매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공교롭게도 바로 지금의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서 이러한 인구 고령화와 노동력 공급 둔화 추세가 현저히 빨라지고 있다.

    더 과격한 주장도 있다. 1970~80년대 이후 주요 선진국의 잠재성장률 하락과 이들 국가의 실질금리 장기침체가 사실상 같은 시기에 벌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견해다. 20세기 중반까지 경제 틀 자체를 바꿨던 위대한 발명품들, 즉 전기, 내연기관, 화학제품, 석유 같은 경제 혁신이 서구 경제에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21세기 IT(정보기술) 혁신 정도로는 역부족이라는 것. 충분한 혁신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서구 경제는 앞으로도 생산성을 늘리기 어렵고, 따라서 활력을 되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부분은 국제 무역시장 자체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세계 무역성장률은 3.1%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고, 그나마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2%에도 못 미친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2015년 세계 무역 성장세도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5~2025년 연평균 세계 무역성장률이 4.2%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10년간 연평균 세계 무역성장률은 6.7%였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품을 소비하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국가 소비자의 소비 패턴 자체가 구조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메이드 인 아시아’ 제품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서비스 수출 중심으로 재편

    예컨대 그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주요 선진국은 무역 장벽을 남발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해왔다. 미국이 중국산 철강과 태양열 패널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위기 이전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급성장에 엄청난 탄력을 제공했던 글로벌 차원의 무역 자유화 흐름은 이제 교착상태에 빠졌고, 오히려 지역별 무역협정만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미국에게는 멕시코, 서유럽에게는 동유럽이 생산기지 구실을 하는 사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리적 근접성 측면에서 불리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우울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무역 구조가 상품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변화한다는 점도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불리한 부분이다. 서비스는 IT 발달에 힘입어 최근 국가 간 무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미국 기업들의 콜센터 대부분이 영어가 가능한 인도와 필리핀 등으로 이전한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상품 수출에서 강자로 군림해온 일본, 한국, 중국은 서비스 수출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워 보인다.

    정리해보자. 어제의 시장은 쪼그라들고, 소비자 입맛은 변했으며, 다시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시아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현 상황에서 가장 적합해 보이는 조언은 수출시장 다각화를 통해 아시아 역내를 포함한 신흥시장을 모두 아우르는 전략으로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북미 및 유럽 수출 실적 감소와 아시아 역내 수출 실적 증가가 마치 실패의 척도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러한 인식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해외 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는 내수를 진작해 균형을 찾는 작업이 급선무일 것이다. 바로 중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영어 원문은 www.globalasia.org/article/will-asian-growth-be-dragged-down-by-the-west/ 참조).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 문제 전문 계간 영문 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