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FC 구단주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 회부와 관련해 12월 2일 성남시청 율동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맹의 경기규정 제36조(심판 비평 금지)가 헌법의 표현의 자유와 국제축구연맹(FIFA)의 아시아축구연맹(AFC) 규정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하고 있다(왼쪽). 이재명 성남시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한 장문의 글.
최근 불거진 시민구단 성남FC 구단주 겸 이재명 성남시장의 납득할 수 없는 돌출 행동과 이에 대한 한국프로축구연맹(연맹)의 미숙한 대응은 왜 한국 축구가 십수 년째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이재명 시장의 돌출 행동
이재명 시장은 11월 28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대한축구협회장의 오기)이자 부산 구단주인 정몽규 회장이 직관한 가운데 부당하게 페널티킥을 선언해 2-4로 지고 말았다’ ‘승부 조작 등 부정행위가 얼마나 한국 축구계의 발전을 가로막았는지 실제로 경험했다’는 등 리그 비하 발언이 포함된 장문의 글을 올렸다. 상벌위원회 회부 가능성이 제기되자, 12월 2일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작심한 듯 강경한 어조로 일전불사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시장은 “경기·심판 규정 제3장 제36조 5항은 경기 직후 경기장 내 인터뷰에서 판정이나 심판과 관련해 부정적인 언급이나 표현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라며 “이를 장소와 시기를 불문하고 영구적으로 판정 비평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판정을 ‘성역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줄곧 ‘의도된 오심’ 문제를 지적하며 리그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납득시킬 만한 어떤 객관적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더구나 그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11월 28일은 K리그 클래식 최종 라운드가 열리기 하루 전이었다. 이 시장은 강등 위기에 처한 성남의 현실을 언급하며, 내년 시즌 챌린지(2부 리그)로 떨어진다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반납할 수 있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성남은 부산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1-0으로 이겨 클래식 잔류에 성공했지만, 이 또한 이 시장의 발언 탓에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성남의 짜릿한 잔류 스토리도 이 시장 주장에 따르면 ‘짜인 각본’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다수 축구계 인사는 “이 시장의 발언으로 K리그 전체가 범죄집단이 됐다”고 비난했고, 일부 기업구단 관계자는 “같은 회원사 처지에서 불쾌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이 시장의 발언은 연맹에 소속된 회원사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연맹 상벌위원회에 회부된 뒤 이 시장은 “이는 성남구단과 성남시민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전면전”도 선언했다. 소송은 물론 헌법소원 등 추가 법률적 절차까지 불사하겠다는 강경 자세로 일관했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연맹의 대응방식이다. 연맹은 이 시장의 처음 발언이 K리그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다고 판단해 ‘원칙에 따른 행정적 절차’를 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강공 드라이브를 펼친 이 시장에 굴복해 정작 ‘솜방망이 처벌’로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연맹 상벌위원회는 12월 5일 이 시장이 출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임직원(선수, 코칭스태프를 제외한 모든 구단 관계자)에 대한 징계는 해당 구단으로 부과한다는 상벌위 규정에 따라 성남구단에 ‘경고’ 처분을 내렸다.
구단에 대한 징계에는 구단의 권리 행사 제한, 하부리그 강등, 제재금 등이 있지만 연맹은 이 중 가장 수위가 낮은 경고 처분을 선택했다. 조남돈 연맹 상벌위원장은 “많은 고민을 거쳤지만 K리그 발전을 위해 향후 노력하겠다는 이재명 구단주의 모습을 높게 봤다”며 “K리그 전체를 위해 어떤 것이 더 유익할까라는 측면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적어도 제재금 이상의 징계가 유력할 것이라는 당초 전망과 달리 연맹 상벌위원회는 “차라리 징계하려면 나를 제명하라”던 이재명 시장에게 먼저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3월 심판 판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제재금 700만 원을 냈다. 의견 표출 장소가 공식 기자회견(최 감독)과 SNS(이 시장)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 시장에 대해 단순 ‘경고’에 그친 것은 최 감독에게 거금 700만 원을 부과한 것과 견줬을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평가다. 연맹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이중 잣대’를 적용했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이 시장은 단순 경고 처분에도 이에 불응한 채 향후 재심청구와 법적 투쟁을 예고하는 등 한껏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연맹을 재차 압박하고 있다.
12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성남FC 구단주인 이재명 성남시장(오른쪽)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축구계는 대부분 이번 사태에 대해 ‘정치인인 이 시장의 노련한 노림수에 연맹이 발목을 잡혔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구단의 존폐’라는 칼자루를 쥔 이 시장은 이를 무기 삼아 연맹을 강하게 압박했고, 평소 심판 판정에 불만을 갖고 있던 팬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얘기다. 반면 연맹은 이 시장이 ‘팀 해체 카드’를 들고 나올 것에 부담을 느껴 먼저 유화 제스처를 보이며 사태를 조기 수습하려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장은 12월 20일까지 연맹 상벌위원회 경고 조치에 대해 재심청구를 할 수 있고, 연맹은 재심이 청구되면 접수일로부터 15일 내에 이사회를 소집해 징계 내용을 재심의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향후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이와 별도로 이 시장에 대한 연맹의 솜방망이 징계로 축구계는 앞으로 더 큰 혼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제 오심이 나왔을 때 각 구단 현장은 물론, 프런트의 다양한 의견 표출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의도적인 오심’은 철저히 단죄해야 하지만, 객관적 증거 없이 경기 중 불가피하게 일어난 오심에 대한 지적이 봇물을 이룰 경우 한국 프로축구는 또 다른 위기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리그 존재 가치를 위협한 이 시장에 대해 ‘경고’에 그쳤으니,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져도 연맹은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명분을 잃었다. 기업 구단과 도·시민구단의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각 구단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물렸을 때, 또는 침체된 한국 축구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변화가 필요할 때 구심점 구실을 해야 하는 게 연맹이고, 커미셔너인 총재가 할 일이다. 이 시장의 헛발질에 연맹은 오히려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실책을 범했다. 안타까운 한국 프로축구의 슬픈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