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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와 KIA, 간섭과 원칙이 가른 차이

그룹 오너 눈치 본 롯데 vs 장기 전략 따라간 KIA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입력2017-07-03 17: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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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농구는 초특급 신인이 리그 전체 판도를 뒤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학에서 이미 프로급으로 완성된 신인들이 매년 각 팀의 주전 선수로 리그에 들어오기 때문. 그러나 프로야구는 전혀 다르다. 특급 신인도 1군에 데뷔하기까지 2~3년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전 선수가 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프로야구단 경영은 장기 전략이 필요한 영역이다. ‘화수분 야구’라는 별명을 가진 두산 베어스는 선수 육성에서 가장 큰 경쟁력을 자랑한다. 두산은 현재 1군 라인업에 있는 주전 선수들의 은퇴 시점과 자유계약선수(FA) 자격 획득까지 남은 기간, 기량의 하향 곡선 등을 계산해 신인을 선발하고 집중 육성한다.

    외부 FA시장은 신인 육성과 외국인 선수 전력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만 뛰어들어 과감한 투자로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을 완성한다는 것이 두산의 전략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 팀에 공헌한 프랜차이즈 스타라도 예비 전력이 완성돼 있다면 고액 연봉 계약을 보장하지 않는 과감한 결단도 수차례 보여줬다.



    야구계도 오너리스크? 롯데의 부진

    두산그룹은 구단 경영진에게 구단 운영을 전적으로 맡긴다. 박용곤 명예회장이 구단주였던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아버지 뒤를 이어 구단주가 된 박정원 회장 역시 간섭하지 않는다. 선수가 큰 기록을 세운 날이면 꽃다발을 보내고, 시즌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임원에게 세단이 아닌 레저용 차량(RV)을 지원하는 등 세심하게 구단을 챙긴다.



    반면 롯데 자이언츠는 그동안 오너 일가의 지나친 간섭이 구단에 큰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신격호 전 구단주의 5촌 조카인 신동인 전 구단주대행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사실상 롯데 자이언츠를 총괄 경영했다. 신 전 구단주대행은 구단 대표이사를 통해 감독에게 선발 라인업을 고치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 한 전임 감독은 “병원 경영진이 의사에게 진료 방법을 지시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며 항명하기도 했다.

    2015년 신 전 구단주대행은 그룹의 경영권 분쟁 속에서 퇴임했다. 그러나 ‘신동인 시대’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롯데 자이언츠는 또 다른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2015년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부회장의 경영권 싸움으로 시끄러웠다. 신 회장은 그해 9월 11일 부산 사직야구장을 찾았다. 경영권 싸움으로 손상된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였다.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의 경기를 관람했고 구장 앞 고(故) 최동원의 동상에 헌화도 했다. 선수들과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눴고, 경기 중 수차례 기립박수도 쳤다.

    그러나 그날 롯데가 삼성에게 역전패하는 모습을 지켜본 신 회장은 “불펜이 더 강해져야 한다”는 짧은 총평을 남겼다. 그룹 오너의 야구장 나들이에 맞춰 야구장 안에 있는 낡은 롯데칠성 자판기까지 바꿨던 구단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

    시즌 종료 직후 롯데는 FA시장에 나온 SK 와이번스 불펜투수 윤길현을 4년 38억 원에 영입했다. 파격 행보는 그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불펜을 보강했으니 이제 구원왕 출신인 넥센 히어로즈 손승락에게 4년 60억 원을 제시해 계약이 성사됐다.

    그러나 롯데는 불펜 전력만큼이나 선발투수가 부족한 팀이었다. 이종운 전 감독이 장성우를 kt 위즈에 내주고 박세웅을 영입한 것도 갈수록 부족해지는 선발진의 세대교체를 위해서였다. 현장에서는 선발진 육성에 공을 들이는 사이 경영진은 구단주 지시에 따라 불펜 수집에 공을 들인 것이다.

    롯데는 2015시즌 종료와 함께 계약 기간이 2년이나 남은 이종운 감독과 결별하고 SK 수석코치 출신인 조원우 감독을 영입하며 튼튼한 불펜을 안겼지만, 결국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7시즌을 앞둔 스토브리그에는 양현종, 차우찬 등 리그 최정상급 선발투수가 FA시장에 쏟아졌다. 롯데는 대형 선발투수 영입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 대신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 결별한 후 새 소속팀을 찾고 있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이대호와 4년 150억 원에 계약했다. 프로야구는 물론,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이었다. 이승엽이 2012년 삼성으로 돌아오면서 서명한 1년 11억 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금액이다.


    탄탄한 장기 전략으로 성공한 KIA 타이거즈

    그러나 롯데는 외국인 투수 영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 못해 이대호와 계약에 따른 후폭풍에 시달렸다. 팀 공격력은 분명 강해졌지만 투수 보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올해 성적은 7위에 머물러 있다. 시즌 개막 직후부터 6월 말까지 5인 선발 로테이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롯데의 전략적 판단 실수는 장기적 시각의 결여로 요약된다. 윤길현, 손승락, 이대호의 영입은 모두 단기적 판단 하에 이뤄진 대형투자였다. 협상 주도권도 빼앗겨 예상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출했다.

    롯데와 함께 전국구 구단으로 불리며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KIA 타이거즈는 개막 이후 꾸준히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다. KIA의 전략적 판단은 롯데와는 전혀 달랐다.

    KIA는 2015년 ‘비전 2020’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100만 관중을 돌파하고 3번 이상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었다. 발표 내용에는 없었지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2019년 이후에는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장기 전략으로 읽혔다.

    김기태 감독에게는 장기적인 선수 육성을 통해 매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강팀으로 육성을 부탁했다. KIA 타이거즈 경영진은 매년 우승 압박이 컸던 선동열 전 감독 재임 시절(2012~2014) 오히려 성적이 부진했다는 사실을 교훈 삼아 이 같은 전략을 수립했다.

    FA 전력 보강 역시 영리했다. 상위권 성적을 위해서는 좌타 거포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최형우를 4년 100억 원에 영입했다. 일본 진출을 고민하던 양현종에게는 계약 기간을 1년으로 줄여 22억5000만 원을 제시해 계약이 성사됐다. 다른 구단들이 거포 외국인 타자의 영입에 열을 올릴 때 KIA는 국내 선수들의 장타력에 확신을 갖고 타격 정확도와 빠른 발, 수비에 뛰어난 로저 버나디나를 영입했다. 전략적 판단은 주효했다. 리그 중반인 6월 28일 현재 KIA는 NC 다이노스와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2년간 KIA와 롯데는 전혀 다른 판단에 따라 각각 선수를 영입했다. 결과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10개 팀만 있는 KBO리그는 투자액이 많다고 우승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독자적인 경영 판단이 결여되고 장기적 시각을 갖지 못한 팀은 한 시즌이 아닌 수년간 어려움을 겪곤 했다. 올해는 롯데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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