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내수는 여전히 세월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수출은 세계 경기가 둔화하면서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경제를 곤경에 빠뜨릴 하방위험(downside risk)도 도처에 깔렸다. 이러다가 한국 경제가 더블딥(double dip) 상황, 즉 회복 경로에서 이탈해 다시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올 하반기는 경기 회복세를 되살리는 작업과 더불어 하방위험을 면밀히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될 듯하다.
내수 침체형 흑자
신기하게도 요즘 지표경기는 좋다.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크게 위축하면서 내수는 나쁘지만(그래프1 참조), 순수출(수출-수입)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다만 수출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내수 침체로 수입이 줄어들면서 순수출이 늘어나고 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그래프2 참조).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799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5월까지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수 침체형 흑자’인 셈이다. 내수 침체에도 지표상 경제성장률은 괜찮은 상황. 이렇다 보니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과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는 이 같은 괴리를 한눈에 보여준다. 지표상 경제성장률이 3.9%로 양호한 수준임에도 가계가 느끼는 ‘현재경기판단지수’는 세월호 충격으로 5월 15p나 급락해(91→76) 기준선인 100에서 더 멀어졌다. 기업의 ‘업황체감지수’도 제조업은 3p(82→79), 비제조업은 2p(71→69) 떨어졌다.
고용 상황은 괴리가 더 심하다. 지표상 신규 취업자가 2013년 39만 명에서 2014년 5월까지 64만 명으로 급증했지만, 가계의 ‘취업기회전망지수’는 5월 5p 하락했다(96→91). 구직단념자나 취업준비자처럼 사실상 실업자임에도 공식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물가는 또 어떤가. 지표상 소비자물가는 20개월째 1%대에 머물러 있으나,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민은 물가상승률을 3% 내외로 생각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서도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2013년 8월 5.4%, 2014년 2월 4.7%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계층 인식의 괴리도 유의해 살펴봐야 한다. 총인구 중 공식중산층의 비중은 2009년 66.9%에서 2013년 69.7%로 2.8%p 상승한 반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체감중산층의 비중은 같은 기간 54.9%에서 51.4%로 오히려 3.5%p 감소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식중산층 가운데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경우는 45%에 불과하고 나머지 55%는 저소득층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중산층의 자긍심이 무너져내린 상태라는 뜻이다. 이러한 체감경기 악화는 소비심리 약화로 이어져 내수 침체를 부추긴다.
신규 취업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저부가가치 업종과 50대 이상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도소매업과 음식점업, 보건복지서비스업 등 임금이 낮은 저부가가치 업종에서 취업자가 크게 증가한 반면,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이나 제조업, 금융업 등 고부가가치 업종은 정체해 있다. 올해 1~5월 신규 취업자가 64만 명이나 증가했지만 그중 50대 이상이 50만 명에 달하고 청년층은 8만 명에 불과했다.
6월 18일 서울 강북구청에서 열린 ‘2014 찾아가는 희망 취업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쓰고 있다.
대외경제 여건도 녹록지 않다. 최근 원-엔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도 1010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하반기에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외국인 자본이 유입하면서 환율 하락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환율 ‘1000-1000’ 붕괴는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을 약화해 순수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로 엔화 약세가 지속됨에 따라, 수출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나라 처지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3년 연평균 1124원이었던 원-엔 환율이 2014년 연평균 950원까지 하락할 경우 우리나라 총수출은 9.1% 줄어드는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환율 ‘1000-1000’ 붕괴 눈앞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오른쪽 서 있는 이)가 6월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를 찾아가 인사하고 있다.
게다가 금융당국의 감시 바깥에 있는 그림자 금융이 지난해 크게 확대됐고, 과잉투자가 심한 업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면서 경기 회복세가 약화되고 있다. 대(對)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총수출 중 대중국 수출의 비중은 2000년 10.7%에서 2013년 26.1%로 2배 이상 커졌으나, 대중국 수출 증가율은 2010년 34.8%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4월 현재 2.7%를 기록 중이다.
국제 원자재가격은 하락 추세지만, 중동 사태와 기상이변으로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의 공격으로 이라크가 내전에 빠져들면서 국제사회의 개입이 임박하고 있다. 한편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올 하반기 엘니뇨 발생 확률이 65% 이상이며 기상 사이클로 볼 때 17년 만의 초대형급 엘니뇨로 발전할 개연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국제 유가가 10% 상승하면 경제성장률과 설비투자 증가율은 각각 0.23%p, 0.59%p 하락한다. 소비자물가와 생활물가도 각각 0.33%p, 0.55%p 높아져 가계 부담이 커진다. 엘니뇨 또한 식탁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평상시에는 국제 곡물가격이 연평균 0.01% 상승하지만 과거 엘니뇨가 발생했던 시기에는 기상재해로 5.28%씩 상승했다.
경기 회복력 강화에 집중해야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2014년 하반기 한국 경제의 행로에는 도처에 지뢰가 깔려 있다. 우리 경제가 소프트패치에서 더블딥으로 악화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미약한 경기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먼저 재정 조기 집행 등 기존 재정정책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견지해야 한다.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 추세를 약화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특히 국내 경기가 급락할 경우 선제적인 기준금리 인하와 추경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환율 하락 속도를 조절하려면 정부의 미세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이제는 지표경기뿐 아니라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와 체감물가, 체감고용까지 고려해 정책을 구사해야 하는 시기다.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작업도 급선무다. 이와 함께 잠재성장률을 제고하는 정책이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하반기 한국 경제에 도사린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