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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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통한 부의 축적 상속재산 축적 잡을 수 없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 김계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kevinkim@kiet.re.kr

    입력2014-06-02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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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다룬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화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따온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족하지만 700쪽에 달하는 볼륨감에도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하나의 사회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사회학자 몫이 될 테고, 필자는 이 책의 주요 결론이 지니는 함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15년간에 걸친 이론과 실증 연구의 살아 있는 결실이다. 교과서격인 ‘불평등의 경제학’(1997), ‘20세기 프랑스의 고소득’(2001), ‘20세기 고소득 : 유럽대륙과 영어권의 차이’(2007), ‘고소득 : 세계적 차원’(2010), ‘조세혁명을 향하여 : 21세기 소득세’(2011) 같은 주요 저서에서 보듯 이미 저자는 분배와 불평등 연구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난 한 세기, 때로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에 걸쳐 분배의 변화를 세세히 다룬다.

    먼저 이 책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인 부의 분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자. 오른쪽 두 그래프는 부 분배의 장기 경향을 보여준다. ‘그래프1’은 미국 최상위 10% 소득의 국민소득 점유율 변화다. 최상위층의 소득 점유율이 높아지는 것은 주로 대기업 임원 소득의 급증에 주요 원인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진단이다.

    장기 데이터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연소득 대비 재산(부동산+금융자산+산업용 자산-부채)이 일정한 변화 패턴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비율이 저축률과 경제성장률의 비율에 의해 결정되며, 이를 자본주의 제2 근본법칙이라 했다. 국민소득 중 자본에 귀속되는 비중은 자본의 평균 수익률×재산÷소득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는 자본주의 제1 근본법칙과 함께 불평등을 결정하는 저자의 두 가지 핵심 법칙이다.

    최상위 10% 소득 점유율 변화



    ‘그래프2’를 보면 소득 불평등이 개선되는 시기는 재산÷소득 비율이 떨어지는 시기와 대체로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았던 19세기 유럽에서 600~700%에 이르렀던 재산÷소득 비율은 1950년대 200~300%까지 하락했다가 최근에는 다시 400~500%를 넘어 계속 상승해 제1차 세계대전 전야 수준으로 복귀했다.

    이처럼 재산÷소득 비율의 상승은 저성장시대의 도래와 관련돼 있다. 성장 정체기에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산이 소득 분배에 점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쳐 불평등을 심화하기 때문이다. 불평등화를 이끄는 이 두 가지 동력이 결합할 때 부의 불평등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는 자본수익률이 불평등화의 핵심 요인이며, 이 경우 상속재산의 양에 따라 소득 분배가 결정돼 재산의 집중이 극단적으로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 피케티의 진단이다.

    부의 분배는 역사적으로 불평등의 축소 또는 확대라는 두 종류의 강력한 힘이 순차적으로 교차하면서 변화해왔다. 예컨대 최근 중국의 부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지식의 확산과 숙련기술의 축적이 불평등 감소의 핵심 동력이라면, 자본과 노동의 이동에 따른 수요 공급의 상호작용도 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불평등을 확대하는 반대 동력은 무엇인가. 물론 앞의 논리와 반대로 인력에 대한 투자 감소에 따라 지식의 혜택이 사회 전체로 확산하지 못할 때 부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지식 확산이라는 가장 강력한 평등화 기제는 자동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훈련과 숙련기술에 대한 접근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제도 및 정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피케티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불평등화 동력은 고소득층 소득과 다른 소득계층의 소득 간 괴리가 점점 커지는 현상, 경제 전체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소득 대자산 계층에 재산과 소득이 집중되는 경향이다. 피케티가 위대한 점은 소득 수준에서의 불평등 증가 차원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불평등 원인을 규명해낸 데 있다.

    노동 통한 부의 축적 상속재산 축적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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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불평등의 심화

    결국 자본 축적이나 재산의 분배 과정은 불평등을 심화하는 매우 강력한 힘을 동반한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는 전쟁에 의한 자본 파괴나 국가의 재분배 정책처럼 불평등을 완화하는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불평등화 요인이 압도하게 된다는 것이 자본주의 운명이라는 우울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이 자본을 통한 부의 축적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상속재산이 점점 더 소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속재산 자본주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저자는 21세기 불평등의 심화를 예상하면서도 조세제도의 개혁으로 세습 자본주의화 경향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초고소득자에 대한 누진과세(부유세), 세계적 차원의 자본세 등을 도입함으로써 상속재산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불평등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부의 분배가 핵심 내용이긴 하지만 이 책은 19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세계 자본주의의 성장, 분배와 이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와 정책, 그리고 정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시작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열풍이 대양을 건너 한국에서도 부는 것은 그만큼 분배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시민의 관심사이기도 한 부의 분배와 관련해 광대한 시야를 얻기를 원하는 시민, 또는 분배와 성장을 아우르는 경제학의 핵심 문제를 새롭게 보려는 사람에게 ‘21세기 자본론’은 꼭 한 번 도전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우리가 사회와 경제학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고”, 이제 더는 “부와 불평등에 대해 과거 방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노벨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평가가 이 책의 가치를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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