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정치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아버지의 후광 효과(halo effect)를 바탕으로 ‘맹주(盟主)’로서의 존재감을 키웠다. 특히 2006년 서울 신촌에서 ‘길거리 테러’를 당한 뒤 수술에서 깨어나자마자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대전시장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을 선거 승리로 이끌었다. 그 힘은 2012년 대통령선거(대선)까지 이어졌다. 또한 그는 2006년 병상 장면을 담은 대선 광고 방송으로 많은 유권자에게 강한 권력 의지를 보여줬다.
과연 한국 정치사에서 이처럼 말 한마디로 선거 풍향을 돌려놓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데 지금도 그것이 유효할까.
한국 정치에서 ‘맹주’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특정 지지기반이 있어야 한다.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강한 권력 의지와 결정적인 선거 영향력이 보태져야 한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강한 지역적 배경을 지지기반으로 집권했다. 지도자의 이념적 태도 역시 한몫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지역을 세력 중심으로 삼았다. 19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15개 지역구 가운데 14곳을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이 차지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은 전남 신안군을 제외하고 호남 전 지역구를 석권했다. 맹주였던 YS와 DJ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맹주의 현 거주지뿐 아니라 출신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수도권과 충청권 표심도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지역, 이념, 세대의 지지기반
맹주는 지역, 이념, 세대에 따라 지지기반이 구분되는 특성을 갖는다. YS는 보수층 지지를 등에 업었고, DJ는 진보층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30세대의 압도적인 성원을 받았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40대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아이콘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거의 15년간 맹주 흐름을 이어왔다. 따지고 보면 민주화 이후 등장한 정치인이지만, 복합적인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TK(대구·경북), 이념적으로 보수, 연령대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효과가 공고한 50대 이상이 지지층이다. 흔히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박 대통령 이전 맹주들은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해갔다. 지지층에게 ‘대통령 당선’은 과업의 완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지지층뿐 아니라 대선에서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선 당시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PK(부산·경남) 지역과 50대 이상 지지층에서마저 국정 수행에 대해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때 지지층과 가장 낮을 때 지지층을 비교하면 그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는다(그래프 참조).
둘째, ‘권력 의지’가 필요하다. 이 권력 의지가 강하게 발동할 때 지지층뿐 아니라 당내 장악력, 즉 세력 결집이 이뤄진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내 세력이 미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권력 의지였다. 강한 권력 의지 아래 많은 전략가와 당내 야심가가 포진한다.
2012년 대선을 통해 차기 대권주자의 위용을 보였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과거 청춘콘서트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발언과 선택 시기마다 후퇴하던 모습은 세력 결집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여든 야든 권력 의지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인물이 맹주에 가까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무엇보다 맹주로 대접받는 결정적 기준은 선거 영향력이다. 정당 후보자를 공천하는 영향력도 중요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경합 중인 후보자를 본선에서 당선하게 하는 힘은 맹주만이 보여줄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공천된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는 강운태 무소속 단일후보에게 혼쭐이 나고 있다. 지역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전략공천한 데 대한 시민의 분노가 표출된 것. 과거 YS, DJ 두 거물 정치인이 맹주 구실을 하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박 대통령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이 탄핵 후폭풍 국면에서 개헌 저지선 이상 의석을 확보한 것도 박근혜라는 ‘포스트 3김 시대’의 맹주 덕분이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그가 지원 유세를 한 지역구와 유세를 하지 못한 지역구의 판세가 뚜렷이 달랐다. 18대 대선에서는 1577만여 표라는 역대 최다 득표로 당선하면서 ‘선거의 여왕’은 화려한 꽃봉오리를 피웠다.
시대의 요구 반영하는 지도자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의 맹주 자리는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선거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마저 세월호 참사로 급감했다. 박 대통령이 5월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이후에도 수도권은 물론, 전통적 텃밭인 부산에서조차 여권 후보들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
나아가 안 공동대표의 영향력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차기 대권 후보 지지율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20.9%), 문재인 의원(14.9%), 박원순 서울시장(10.8%)에 뒤진 4위(9.3%)로 밀렸다.
맹주의 존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맹주 정치가 사라지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의 자연스러운 섭리일 수 있다. 애당초 맹주의 탄생 배경은 유권자의 맹목적 지지와 시대적 상황이지 않았던가. 지금 이 시대가 전통적 맹주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지도자야말로 진정 우리가 갈망해왔던 맹주가 될 것이다.
과연 한국 정치사에서 이처럼 말 한마디로 선거 풍향을 돌려놓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데 지금도 그것이 유효할까.
한국 정치에서 ‘맹주’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특정 지지기반이 있어야 한다.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강한 권력 의지와 결정적인 선거 영향력이 보태져야 한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강한 지역적 배경을 지지기반으로 집권했다. 지도자의 이념적 태도 역시 한몫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지역을 세력 중심으로 삼았다. 19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15개 지역구 가운데 14곳을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이 차지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은 전남 신안군을 제외하고 호남 전 지역구를 석권했다. 맹주였던 YS와 DJ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맹주의 현 거주지뿐 아니라 출신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수도권과 충청권 표심도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과 ‘2012 황태자’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선거 영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과 안 공동대표.
맹주는 지역, 이념, 세대에 따라 지지기반이 구분되는 특성을 갖는다. YS는 보수층 지지를 등에 업었고, DJ는 진보층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30세대의 압도적인 성원을 받았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40대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아이콘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거의 15년간 맹주 흐름을 이어왔다. 따지고 보면 민주화 이후 등장한 정치인이지만, 복합적인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TK(대구·경북), 이념적으로 보수, 연령대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효과가 공고한 50대 이상이 지지층이다. 흔히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박 대통령 이전 맹주들은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해갔다. 지지층에게 ‘대통령 당선’은 과업의 완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지지층뿐 아니라 대선에서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선 당시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PK(부산·경남) 지역과 50대 이상 지지층에서마저 국정 수행에 대해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때 지지층과 가장 낮을 때 지지층을 비교하면 그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는다(그래프 참조).
둘째, ‘권력 의지’가 필요하다. 이 권력 의지가 강하게 발동할 때 지지층뿐 아니라 당내 장악력, 즉 세력 결집이 이뤄진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내 세력이 미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권력 의지였다. 강한 권력 의지 아래 많은 전략가와 당내 야심가가 포진한다.
2012년 대선을 통해 차기 대권주자의 위용을 보였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과거 청춘콘서트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발언과 선택 시기마다 후퇴하던 모습은 세력 결집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여든 야든 권력 의지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인물이 맹주에 가까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무엇보다 맹주로 대접받는 결정적 기준은 선거 영향력이다. 정당 후보자를 공천하는 영향력도 중요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경합 중인 후보자를 본선에서 당선하게 하는 힘은 맹주만이 보여줄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공천된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는 강운태 무소속 단일후보에게 혼쭐이 나고 있다. 지역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전략공천한 데 대한 시민의 분노가 표출된 것. 과거 YS, DJ 두 거물 정치인이 맹주 구실을 하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박 대통령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이 탄핵 후폭풍 국면에서 개헌 저지선 이상 의석을 확보한 것도 박근혜라는 ‘포스트 3김 시대’의 맹주 덕분이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그가 지원 유세를 한 지역구와 유세를 하지 못한 지역구의 판세가 뚜렷이 달랐다. 18대 대선에서는 1577만여 표라는 역대 최다 득표로 당선하면서 ‘선거의 여왕’은 화려한 꽃봉오리를 피웠다.
시대의 요구 반영하는 지도자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의 맹주 자리는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선거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마저 세월호 참사로 급감했다. 박 대통령이 5월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이후에도 수도권은 물론, 전통적 텃밭인 부산에서조차 여권 후보들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
나아가 안 공동대표의 영향력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차기 대권 후보 지지율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20.9%), 문재인 의원(14.9%), 박원순 서울시장(10.8%)에 뒤진 4위(9.3%)로 밀렸다.
맹주의 존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맹주 정치가 사라지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의 자연스러운 섭리일 수 있다. 애당초 맹주의 탄생 배경은 유권자의 맹목적 지지와 시대적 상황이지 않았던가. 지금 이 시대가 전통적 맹주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지도자야말로 진정 우리가 갈망해왔던 맹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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