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구인 등을 위해 경기 안성시 금수원 안으로 검찰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12일부터 ‘인간 방패’를 형성해 금수원 진입을 막았던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이 길 양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일부 서류만 압수해 나왔을 뿐 유 전 회장 등은 찾지 못했다.
5월 21일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이 은신한 곳으로 추정됐던 경기 안성시 금수원의 빗장이 9일 만에 풀렸지만 유 전 회장은 보이지 않았다. 검찰은 ‘허탕 수색’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뒤늦은 강제수사에 대한 변을 구구절절 늘어놨다.
검찰이 대균 씨에게 5월 12일 검찰에 나오라고 소환을 통보했지만 불응했고, 유 전 회장도 16일 소환 통보에 불응한 채 잠적했다. 12일부터 밤낮으로 금수원 출입문을 막아섰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측은 21일 돌연 “검찰의 구인장과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하겠다”고 태도를 바꿔 농성을 풀었다.
“유병언 있다? 없다?” 연막전 끝에 진입
구원파가 요구한 것에 대해 검찰이 직간접적으로 화답했기 때문이다. ‘결사항전’을 외치며 검찰의 금수원 진입을 막겠다던 구원파는 전날부터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조계웅 전 구원파 대변인은 “구원파가 세월호 사고 및 오대양 사건과 무관하다고 검찰이 밝혀주면 (검찰의 구인장 집행에) 따를지 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새롭게 ‘퇴각’ 명분으로 내세운 것.
금수원 한 관계자는 “잘 익은 것 같아 수박을 쪼갰는데 하얀 속살이 나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느냐. 대단한 게 있어 보이겠지만 결국 금수원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연막을 치기도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번 수사는 종교문제와 무관한 유 전 회장 일가의 개인 비리 규명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고,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이 구원파 측과 무관하다는 것은 과거 검찰 수사로 확인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유 전 회장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어왔던 검찰도 같은 날 이례적으로 “유 전 회장이 5월 17일 토요예배를 전후해 신도 차량을 타고 금수원 밖으로 빠져나가 인근 별장을 거쳐 현재 서울의 신도 집 등에 은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검찰은 △주변 인물 조사와 탐문 △유 전 회장 전용 별장의 냉장고 등에서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된 점 △17일 토요예배 때 신도들의 차로 나간다는 첩보 △관련자 통신기록 확인 등 여러 근거도 제시했다.
유 전 회장이 금수원 안에 있다면 ‘검찰이 판단을 잘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줘 안심하게 하고, 만약 서울의 신도 집에 있다면 ‘검찰이 위치를 파악했다’는 불안감을 심어줘 또 다른 은신처로 이동할 때 검거하려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한 것. 검찰은 구원파 측의 협조 의사가 전달된 직후인 5월 21일 정오부터 금수원에 진입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한 유 전 회장에 대한 법원 구인장과 검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잠적해 전국에 A급 지명수배가 내려진 대균 씨에 대한 체포영장, 금수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등 3건을 동시 집행했다. 밤늦게까지 금수원 곳곳을 수색했지만 유 전 회장과 대균 씨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이렇듯 유 전 회장 일가와 검찰의 숨바꼭질이 열흘 가까이 이어지자 검찰 주변에서는 각종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검찰이 애초부터 “유 전 회장과 장남, 차남 등에게 소환 통보를 하면 무리 없이 들어올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고 전략을 짜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오대양 수사 초기인 1991년 당시에도 조사를 거부했던 유 전 회장을 어떻게 불러들였는지 철저히 공부했어야 한다”면서 “잡범 수준의 인물을 기업 최고경영자처럼 대접한 것 자체가 오류”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검거 못지않게 금수원을 가로막아 선 신도들과의 물리적 충돌 등 불상사를 피하는 것도 중요했다”면서 “제보는 물론, 여러 채널로부터 정보도 받고 있으며 반드시 검거하겠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5월 21일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이태종 임시 대변인이 구원파 총본산인 금수원 정문 앞에서 “진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왼쪽). 금수원 정문에 걸린 ‘우리가 남이가’라는 현수막.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1992년 법무부 장관 시절 부산 초원복집 모임을 했을 때 나온 발언이다.
금수원 수색 작전을 허탕으로 마무리한 뒤 이날 밤 인천지방검찰청 수사팀은 통음을 하며 유 전 회장을 놓친 데 대한 분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을 찾아 엄벌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유 전 회장을 최대한 압박할 수 있는 카드이자 세월호 피해 구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유 전 회장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 환수하는 것도 과제로 보고 있다. 정부는 먼저 국민 세금으로 필요한 비용을 쓴 뒤 사고 책임이 있는 유 전 회장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전액을 받아낼 방침이다. 그러나 이를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인 유 전 회장에게서 모두 받아내는 과정은 산 넘어 산이다.
일단 유 전 회장 측이 피해 보상을 위해 내놓겠다는 재산은 실제 피해액에 턱없이 모자란다. 유 전 회장 측 변호사는 사고 초기 “100억 원대인 전 재산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추산하는 피해액은 이보다 55배 이상 많은 5500억 원 정도다. 세월호는 한국해운조합 공제상품에 가입돼 있어 인명피해를 입은 1인당 최대 3억5000만 원이 지급된다. 또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이 별도로 든 여행보험으로 상해·사망 시 보험금 1억 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300여 명이 희생된 인명피해 보상비만 1350억 원이 든다. 여기에 차량 등 화물보상금 1000억∼2000억 원, 구조 및 인양에 들어간 비용 2000억 원을 추산하면 최소 550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추가 보상금, 생존자 피해 보상, 예상치 못한 비용 소요를 감안하면 돈이 얼마나 더 들지 가늠하기 힘들다. 게다가 선사의 고의 또는 과실이 명백할 때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이 면책된다는 약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피해액이 정해진다 해도 청해진해운이 도산하거나 유 전 회장이 그만한 재산이 없다고 버틸 때는 국가가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사망 502명) 당시 서울시가 피해자들에게 치료비와 사고수습비 등 5755억 원을 보상했지만 삼풍백화점 측에 구상권 청구를 통해 회수한 금액은 3478억 원에 그쳤다. 2277억 원은 혈세로 충당한 것이다.
1996년 6월 29일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 모습(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구원파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영국 왕실에서 자신의 사진작품을 전시했다고 자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원파 신도 2500여 명이 금수원에서 농성을 벌이며 검찰 진입을 가로막고 있을 때 검찰 관계자는 “신도들이 내놓은 순수한 돈(헌금)이 어디로 갔고, 계열사의 신도들에게 월급을 적게 주면서 빼돌린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 알면 결코 ‘인간 방패’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뿐 아니라 그들 또한 유 전 회장 일가가 저지른 비리의 최대 피해자라는 얘기다.
검찰이 유 전 회장의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는 계열사로부터 허위 컨설팅 비용으로 받아낸 400여억 원과 유 전 회장의 사진작품 고가 매각 대금 300여억 원, 상표권료와 법정관리 과정에서 빼돌린 자금 등을 포함해 전체 1300억 원대의 배임과 횡령이다. 검찰은 구속영장에 담은 유 전 회장 일가와 계열사 간 자금 거래뿐 아니라 유 전 회장 일가와 구원파가 주고받은 돈의 흐름에도 주목해왔다. 신도들의 헌금으로 조성한 교회 자금을 직접 빼돌렸다는 의혹을 규명하고 비자금을 은닉 또는 세탁하는 데 교회 자금이 이용되지 않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교회 뒤에 가려진 재산 전액 환수”
그동안 검찰은 주택건설 및 분양업을 하는 계열사 트라이곤코리아가 2010년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 280억 원 넘게 빌린 자금의 용처를 수사해왔다. 자금 추적을 통해 이 중 40억 원 안팎이 대균 씨 쪽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파악했다. 또 검찰은 기독교복음침례회로부터 130억 원이 넘는 돈이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의 청초밭영농조합법인에 넘어갔으며, 상당액이 법인의 빚을 갚는 데 쓰인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구원파 수련 시설로 쓰는 제주 남녘수산의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신협과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수십억 원을 빌려준 것도 같은 맥락의 수사 대상이다.
유 전 회장 일가의 범죄수익, 즉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구원파의 자금 흐름과 직결돼 있다. 유 전 회장 일가가 빼돌린 회사 돈의 용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전국 곳곳의 영농조합 등 토지(농지)를 차명으로 구매하는 데 상당액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구원파 관계자 등 다른 사람 명의로 된 이 부동산들이 유 전 회장 일가에서 나온 돈으로 매입한 개인 재산으로 보이기 때문에 환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을 최대한 밝히는 것을 세월호 참사 피해 보상과 수습 비용 마련을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보고 있다.
[반론보도문]
2014년 06월 02일자(주간동아 939호) ‘구원파에 농락…검찰 ‘허탕 수색’ 참담‘ 기사와 2014년 06월 09일자(주간동아 940호) ‘유병언에 업무상 과실치사 기소 방침‘ 제하 기사 중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이라거나 실질적 운영자”란 표현과 관련해 유 전 회장측은 “유 전 회장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주식은 물론,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회사들의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으므로 실소유주가 아닐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운영하지 않았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