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찾아보기 힘든 접경지역
아무리 경제특구를 조성한다 해도 노동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들어올 기업이 없는 것이다. 당시 접경지역에서 제조업 분야의 중국 인력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북한 인력 공식 수입 움직임을 보이자 훈춘시 측은 어떻게 해서든 북한 인력을 수입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훈춘은 투먼처럼 북한 인력 수입 권한을 따내지 못했다(2013년 12월 기준으로 중국 정부가 허가한 북한 인력 수입 가능 도시는 투먼이 유일하다). 훈춘은 투먼보다 훨씬 큰 도시였기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인력 수급 문제가 ‘국제합작시범구’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다 보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훈춘은 북한 인력을 받아내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마침내 북한 측을 설득해 인력 수입 합의에 성공했다. 훈춘의 한 여성 의류 기업인이 북한 인력송출업체 ‘능라도’와의 각별한 인연을 활용해 계약을 따낸 것이다. 이는 정부 간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일종의 편법이었다.
중국 훈춘 취안허 세관과 북한 원정리를 잇는 다리.
북한 인력 고용 문제를 놓고 한바탕 충돌이 벌어진 후 투먼과 훈춘 간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사이 훈춘은 훈춘대로 북한 인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투먼시 정부가 상부인 옌볜조선족자치주(옌볜자치주) 정부에 훈춘의 북한 인력 수입 중단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투먼시 정부는 크게 2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투먼이 시 정부 차원에서 힘들게 일궈놓은 북한 인력 수입을 훈춘이 기업 차원에서 뒤늦게 뛰어들어 가로채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이렇게 편법으로 고용한 북한 인력에게 훈춘이 투먼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점이었다.
중국 훈춘 시내 한 봉제 공장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여유를 즐기는 북한 여성 인력들.
결국 이 문제는 절충점을 찾으면서 해결됐다. 모든 북한 인력은 투먼시 정부에서만 수입하고, 훈춘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있으면 투먼시가 배분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투먼은 훈춘으로 인력을 송출하는 과정에서 행정 처리를 대행하는 조건으로 일정 비용을 받게 돼 그나마 타협이 이뤄질 수 있었다.
우수 기업들 중국 이탈 속출
필자는 특파원 기간 투먼과 훈춘 등 북·중 접경지역 소재 제조업체들의 심각한 인력난을 취재한 적이 있다. 유명 A 업체는 전 세계로부터 주문이 답지하지만 노동력 부족으로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다. 이 기업의 근로조건은 웬만한 중국 기업에 비해 상당히 우수한 편이었다. 급여도 높은 편이었고, 근로자들이 쾌적하게 일하고 쉴 수 있는 공간과 휴식 시간을 충분히 제공했다.
그럼에도 젊은 근로자의 이탈이 끊이지 않았다. 한 번 이탈하면 새로운 젊은 노동자를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젊은이 대부분이 대도시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찾는 것이 교도소 수감자였다. A 기업은 수시로 여러 감옥을 돌며 우수한 수감자를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마저도 충분한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며 하소연했다. 이처럼 인력난이 심각하다 보니 북·중 접경지역 기업은 북한 인력에 대해 경쟁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북한 인력이 수입되기 시작하자 투먼 경제개발구로 “북한 인력을 쓸 수 있느냐”는 접경지역 소재 기업들 문의가 쇄도했다.
제조업 분야의 인력난은 비단 접경지역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 거의 전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였다. 중국 남단 광둥성 둥관시는 세계 각국 전자업체가 밀집해 전자산업 메카로 불려온 곳이다. 필자는 2011년 6월 하순 이 도시를 찾았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일본과 타이완 기업을 중심으로 ‘둥관 이탈’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었다. 싸고 풍부한 노동력, 저렴한 원자재 가격 등의 매력 때문에 둥관을 찾았는데, 그 매력이 사라지니 더는 둥관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중국 대안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가 떠올랐다. 톱클래스 기업이 ‘둥관 이탈’을 시작하자 다른 기업들도 영향을 받아 이탈 행렬에 동참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떠날 테면 얼마든지 떠나라’는 식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중국 정부도 기업 이탈이 계속되자 더는 팔짱을 끼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됐다. 필자가 취재 차 둥관에 가 있던 때 마침 중국 정부가 실태 조사에 나섰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 국무원 정보처 부처장 일행이 둥관시를 직접 찾은 것이다. 이들은 둥관시에 있는 유력 전자업체들을 방문했다.
방문에 앞서 이들은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내용에는 인건비 상승과 면세, 전력 문제 등 업체들의 애로사항이 상세히 포함됐다. 중국 정부가 매우 세심하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설문조사 맨 마지막 항목에서는 다른 나라로의 이전 계획 여부를 물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관심을 보인 업체는 대부분 기술력을 갖춘 우수 기업이었다. 일반 기업의 이탈에 대해서는 ‘어서 나가라’는 식이었지만 기술력을 갖춘 우수 기업만큼은 잡고 싶은 중국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정부 당국은 떠나는 우수 기업의 팔을 잡아끌며 설명회를 갖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는 때늦은 행보였다. 사라져가는 ‘세계의 공장 중국’, 둥관은 그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1년 뒤 필자는 둥관을 다시 찾았다. 인력난에 따른 기업 고충은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인력 채용도 특정 시기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중무휴로 필요할 때마다 진행했다. 당시 한 기업의 인력 채용 현장을 방문했는데, 면접을 보려고 젊은 여성들이 줄을 선 채 대기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일주일에 월·수·금요일 세 차례 인력을 채용한다고 했다. 이렇게 자주 채용하는 이유는 워낙 잦은 이직 현상 때문. 이 기업은 2006년 월평균 3%대 이직률이 2011년엔 월평균 15%로 5배 가까이 뛰었다.
인력난으로 문을 닫은 중국 둥관시 한 기업. 인력난에 대해 조사한 중국 국무원 설문지. 둥관시 구직자들(왼쪽부터).
면접 온 여성들을 상대로 취재해보니 이미 다른 직장에 다니다가 온 이가 적지 않았다. 이직 이유도 단순했다. 토요일에 일하는 것이 힘들어 이직하게 됐다거나 월급을 좀 더 준다고 해서 옮기려는 경우 등이었다. 이처럼 신세대 노동자들이 이 회사 저 회사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취업하기 때문에 ‘여행식 취업’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었다. 업무가 힘들다고 느끼거나 관리자가 조금이라도 나쁜 소리를 하면 곧바로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고향으로 가는 일이 많아졌다. 2011년 중국 전체 제조업 부문 이직률은 20.5%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험이 자산인 중소기업에서의 잦은 이직 현상은 중국 경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됐다.
유력 업체의 ‘둥관 이탈’도 속도를 냈다. 둥관에 진출한 우리 기업 역시 마찬가지. DVD 부품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한 한국 기업은 둥관 공장에서의 생산 규모를 축소하고 필리핀에 공장을 신설했다.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저렴한 인력을 찾다 보니 필리핀을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둥관 한국상공인회 사무국장은 “둥관 이탈 현상은 특정 업체나 업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둥관에 진출한 우리 기업 가운데 이탈을 시작한 기업이 전체의 30%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세계의 시장 중국’으로의 변화. 이는 필자가 베이징 특파원 기간 실감한 중국의 대표적 변화였다. 세계 빅2의 위상을 가진 중국은 더는 넘쳐나는 저렴한 노동력의 국가가 아니었다. 아무리 힘들고 더러운 일이라도 시켜만 달라는 사람으로 넘쳐나던 중국은 옛말이 됐다. 이는 여전히 여러 지역에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중국 정부로서도 골치 아픈 문제다. 인력이 없다면 그 많은 개발은 누가 담당할 것인가.
필자가 둥관, 칭다오, 다롄, 상하이 등 중국 각 지역에서 만난 제조업 분야 기업들은 북한 인력을 쓰겠느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일하겠다는 사람은 누구든 반기는 마당에 북한 인력은 더더욱 환영의 대상이었다.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을 잘할 뿐 아니라, 이직 우려도 없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북한 인력 수입을 결정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중국 내부의 다급한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필자는 본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한국 기업 관계자 역시 우리 정부가 북한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