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이 10월 21일 오전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후 민주당은 호기를 잡은 듯 “대선 개입 실체가 객관적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윤 팀장을 특임검사로 임명한 뒤 재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새누리당은 “윤 팀장의 국정원 직원 체포와 압수수색, 공소장 변경은 검찰청법과 국가정보원법을 어긴 잘못된 수사다. 민주당이 이를 빌미로 대선 불복 움직임을 보인다”고 맞받아쳤다.
지휘부 vs 평검사, 공안 vs 특수부
정쟁 와중에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트위트나 리트위트를 통해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이를 직접 지시했는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대선 직전 수서경찰서의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의 댓글 사건 축소 수사 발표에 외압을 행사했는지 등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윤 전 팀장의 국정감사장 ‘폭탄 발언’은 지난해 검란 사태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파동으로 자존심을 구긴 검찰 내부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검찰 지휘부와 평검사 간, 공안통 검사와 특수통 검사 간 골만 깊어지게 만들었다.
이번 사태는 10월 17일 특별수사팀에서 윤 전 팀장이 배제된 사실이 다음 날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 발단이었다. 언론은 윤 전 팀장이 16일 ‘대선 트위터 여론조작’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 4명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3명을 긴급체포한 사실도 함께 보도했다. 압수수색 또는 긴급체포는 법원 영장청구나 체포 집행 등 그 과정에서 언론에 드러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그 어떤 언론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만큼 압수수색과 긴급체포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언론은 18일까지 수사팀이 체포한 국정원 직원과 압수품을 조 지검장 지시로 그 전날 오전 모두 돌려보낸 사실도 알지 못했다.
사실 특별수사팀의 ‘대선 트위터 여론조작’ 수사는 6월 11일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기소한 후 중간수사 결과 발표(6월 14일) 과정에서 이미 예고됐다. 당시 검찰은 “대선을 전후한 국정원의 조직적인 댓글 작업에 대해선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및 비방 글 320여 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간 트위터 계정 아이디와 e메일 주소가 실제 국정원 직원들의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해오다 5만5689건의 대선 개입 혐의가 있는 트위트, 리트위트를 확인한 뒤 17일 국정원 직원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해당 직원을 긴급체포해 조사한 것이다.
언론은 10월 19일과 20일 주말을 지나면서 윤 전 팀장의 수사팀 배제가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 간 불협화음에서 비롯됐다”는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런 보도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윤 전 팀장의 ‘폭로’로 기정사실화됐다. 윤 전 팀장은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긴급체포와 압수수색, 그리고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공소장 변경 과정에서 조 지검장과 나눈 대화를 여과 없이 증언하면서 조 지검장이 실질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지검장은 구체적인 발언을 삼가면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가족은 알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0월 22일 조 지검장은 유례없이 대검찰청에 자기 감찰을 의뢰했고, 대검은 즉각 조 지검장과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윤 전 팀장,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부장에 대한 감찰을 시작하기로 했다. 윤 전 팀장은 23일 한 발 더 나아가 “조 지검장이 아프다고 하고 국정감사장에도 나오지 말라고 간부를 통해 압력을 넣었다”고 해 또 한 번 파장을 일으켰다.
유례없는 자기 감찰 의뢰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이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의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먼저 조 지검장의 수사 방해 및 외압 의혹과 관련한 대목이다. 윤 전 팀장은 국정감사장에서 “10월 15일 저녁 (국정원 직원 체포와 압수수색, 공소장 변경) 수사 계획을 적은 보고서를 댁에 들고 가 보고했지만 검사장이 격노했다” “야당이 이걸(수사 계획) 가지고 얼마나 이용하겠느냐. 수사의 순수성이 얼마나 의심받겠느냐” “내가 사표를 낸 후 수사하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조 지검장이 말하는 15일 밤의 상황은 다르다.
“15일 밤 9시쯤 윤 전 팀장이 온다고 전화를 해와 기다렸는데 11시 넘어 왔다. 수사 보고를 하러 온다는 말은 없었다. 맥주와 소주를 놓고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새벽 1시쯤 돼 윤 전 팀장이 갑자기 수사계획서를 꺼내놓고 이렇게 저렇게 수사하겠다고 말하기에 나는 ‘이런 식으로 할 게 아니다. 정식 보고 절차를 밟아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윤 전 팀장은 ‘이런 식으로 하면 수사 못 합니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6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국가정보원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 지검장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윤 전 팀장이 그다음 날인 10월 16일 국정원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를 강행하자 17일 오후 윤 전 팀장의 여주지청장 복귀를 결정하고 즉시 수사팀에 압수수색으로 가져온 물품과 직원을 모두 돌려보낼 것을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윤 전 팀장은 국감장에서 “17일 국정원 직원 조사 중 직무에서 손을 떼고 직원들을 석방한 뒤 압수물도 돌려주라는 지검장의 지시가 왔기에 공소장 변경 신청만이라도 허가해달라고 보고해 승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조 지검장의 말은 달랐다.
“공소장 변경에 대해 내가 승인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공소장을 보지도 못했다. 다만 ‘(공소장 변경) 요건이 맞으면 해봐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윤 전 팀장은 내가 무조건 승인을 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국감장에서 흘린 눈물 의미는?
윤 전 팀장의 국정감사 출석과 관련해서도 두 사람의 말은 완전히 엇갈린다. 또 윤 전 팀장은 “조 지검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아프다는 이유를 대고 국정감사에 나오지 마라’고 했다. 조 지검장은 검찰 간부 등을 통해 윤 전 팀장의 국정감사 불출석을 수차례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 지검장은 “윤 전 팀장이 먼저 ‘국정감사 기관 증인으로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나가면 여러 가지 묻고 시끄럽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윤 전 팀장이 ‘저도 안 나가고 싶습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도 그렇다’고 했을 뿐인데 그런 식으로 말을 돌렸다. 국정감사장에 나가지 말라거나 아프다고 핑계를 대라고 한 적은 절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윤 전 팀장은 일부 언론에 “처음에는 국정감사장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수사라인에 있는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기밀이 정치권으로 유출된 것 같아 참석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 수석부대표가 국정감사 전날인 10월 20일 수사팀 내부만 알 수 있는 ‘5만6000여 건 중 2233건만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확인한 직접 증거’라는 내용을 공개한 게 영향을 미친 것. 윤 수석부대표가 밝힌 내용은 법무부가 여야에 제출한 공소장 변경 신청서에는 없는 것이어서 검찰 내부 누군가가 정치권에 수사 기밀을 누설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지검장은 윤 전 팀장의 국감장 폭로 발언이 자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윤 전 팀장은 윤 수석부대표에게 내가 수사 기밀을 흘린 것으로 오해하는 듯하다.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나에 대해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거기서 비롯된 듯하다. 하지만 나는 절대 윤 수석부대표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수사 상황을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트위터(리트위트)가 몇 개 있는지, 그 자세한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윤 전 팀장이) 정식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 전 팀장은 평소에도 선배 앞에서 ‘내가 알아서 하고 내가 책임진다’는 말을 했다.”
조 지검장은 국감장에서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 지검장과 윤 전 팀장은 대학 학과 선후배 사이로 평소 사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하는 후배가 내게 돌을 던지고 싸움을 걸어오는데 국정감사장에서 똑같은 식으로 실랑이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전부 윤 전 팀장 말만 믿는 분위기였다. 솔직히 분하고 억울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정말 억장이 무너지더라.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