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철 교수<br>● 1955 경기 안성 출생<br>● 1977 감리교신학대 졸업<br>● 1986 감리교신학대 공동박사과정 수료<br>● 1992 미국 드루신학대 박사<br>● 저서 ‘종교다원주의의 유형’ 등
교회 세습, 신도 사고팔기, 추문…. 요즘 목도하는 기독교의 현실이다. 이처럼 추락한 기독교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인간 예수’를 배우는 현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9월 24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 건너편에 있는 사단법인 ‘함께 나누는 세상’ 사무실에 2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심 있는 목회자와 평신도들로, 이날 가을학기를 시작한 한국기독교연구소 예수학당에 참석한 ‘학생’들이다.
2009년 시작한 예수학당은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학기를 운영한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모임을 갖고 한 학기에 인간 예수 관련 책 1권을 통독한다. 매주 발표자가 한 장을 읽고 발표하면 청중과 좌장이 그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한다. 결석한다고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아닌데 참석률이 높다. 누구나 이 강좌의 학생이 될 수 있지만 현실적인 논의를 위해 대학 학부생을 제외한 일반인만 참가할 수 있다.
역사적 맥락에서 예수 행적 연구
이날은 첫 수업이라 분주했다. 목회자, 회사원, 신경정신과 의사, 군사학 교수 등 다양한 사람이 진지하게 토론에 임했다. 이번에 새로 참석하는 이가 반이고, 나머지는 지난 학기를 수강한 사람들이다. 총무는 즉석에서 책값 1만 원을 거뒀고, 한 학기 동안 쓸 간식(컵라면, 김밥)비 3만 원을 다음에 가져오라고 공지했다.
예수학당 좌장인 한인철(58·사진) 연세대의료원 교목실장(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의 짤막한 강의가 시작됐다. 한 교수는 “오늘날 교회 설교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회중에 겉돈다”면서 “대체 누가 사회 변화를 위해 교회에 기대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 학기의 텍스트인 ‘언더그라운드 교회’ 저자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이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도대체 누구를 비난할 수 있나”라는 질문도 던졌다.
이번 강의 전 한 교수를 미리 만나 예수학당을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한 교수의 연구실은 서울 신촌 연세대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건물 6층에 있었다. 매일같이 이곳을 오가며 삶과 죽음이라는 큰 문제를 생각한다는 그가 말문을 열었다.
“감리교신학대 동문인 김준우 교수가 1995년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했고, 저는 한국기독교연구소 이사를 맡았어요. 그때부터 메시아 예수가 아닌 인간 예수에 주목했습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지금껏 관련 책 50여 권을 번역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학당을 만들었습니다. 인간 예수를 탐구하며 ‘한국 교회 갱신운동을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한 교수는 감리교신학대 대학원 시절부터 인간 예수에 관심이 많았다. 존 도미니크 크로산의 ‘예수는 누구인가’, 마커스 보그의 ‘새로 만난 하느님’, 루벤슈타인의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등 인간 예수를 탐구한 책도 번역했다.
과거에 그는 신학 공부를 해도 인간 예수의 삶은 알지 못했다.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뒤인 ‘메시아 예수’에 대해서만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가와 겐조가 지은 책 ‘예수라는 사나이 : 역설적 반항아의 생과 사’를 읽고 역사적 맥락에서 예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역사적 사실을 각색한 성경에서는 볼 수 없던 인간 예수를 발견한 것이다.
“성경에 적시된 예수의 행적을 받아들이는 것과 ‘김일성이 태양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믿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예수를 진짜로 알려면 역사적 사실도 알아야죠. 가령 성경에는 예수가 ‘어떤 사람이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을 내주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밀라’고 말했다는데 이를 실천하는 건 무리잖아요. 제정신 가진 사람이 왼뺨 맞은 상태에서 오른뺨을 내밀 수 있겠어요? 이 상황은 로마제국 치하라는 역사적 배경을 파악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런 발언은 순응이 아닌 크나큰 저항이었던 거죠.”
예수학당 2013 가을학기에 목회자와 일반인이 참석해 인간 예수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렇듯 한 목사는 인간 예수에 관심이 있었지만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교회 주류가 ‘메시아 예수’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 예수에 주목해 그의 행동을 본받자’는 주장은 신도들을 불편하게 할 개연성도 컸다. 한 목사는 “불의에 저항하는 예수의 삶을 가슴 치며 듣고도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경우가 더 많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부, 권력, 명예에 집착하지 마라’는 예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분처럼 살려면 자기 삶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그래선지 교회에서는 ‘예수처럼 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당 가자는 논리’를 내세우죠. 별다른 노력 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잘된다는데 누가 굳이 예수처럼 힘들게 살겠어요. 우리는 병을 낫게 해준다거나 부, 명예를 얻게 해주는 메시아 예수를 따릅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셈이죠.”
실제로 그는 교회 현실과 지인들의 만류로 인간 예수를 연구하는 일을 단념했다. 그러던 차에 1995년 미국 서점에서 인간 예수를 탐구하는 수많은 책을 발견하며 다시금 인간 예수에 주목한다. 때마침 대학에서 5년간 서울, 경기 지역의 교회 설교를 분석하며 ‘우리가 메시아 예수에게 기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터라 반가움이 앞섰다.
이후 그는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신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수청년학교, 기독교 가치를 실천하는 이들의 강연으로 구성된 예수포럼,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예수목회세미나, 예수학당을 추진하면서 인간 예수를 연구했다. 지금은 예수목회세미나와 예수학당만 남은 상태다.
일반인이 중심이 된 예수학당이 수년간 건재한 비결은 뭘까. 한 교수는 “신도들에게 교리적으로 채색된 예수가 아닌, 진짜 예수를 알고 싶다는 ‘지적 요구’와 교회는 물론 자신이 달라지면 좋겠다는 ‘변화 요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예수학당에서 자기 삶을 되돌아보며 변화의 모티프를 찾은 사람이 늘고 있다. 한 교수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메시아 예수가 아닌, 불의에 저항한 인간 예수를 따르면 돈, 권력, 명예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길을 따르면 고난과 함께 좋은 일도 생긴다”며 빙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