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선수의 부진과 부상의 악령을 떨치지 못한 KIA. 윤석민, 김주찬, 양현종(왼쪽부터).
예상대로 우승 후보 KIA는 시즌 초반 거침이 없었다. 4월 한 달간 13승1무5패로 월간 성적 1위를 달리는 등 5월 6일까지 17승1무8패로 선두를 내달렸다. 4월 3일 김주찬이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이탈하고, 윤석민은 어깨 통증으로 합류가 늦어졌지만 그래도 순항했다. 그러나 방망이는 항상 좋을 수 없는 법. 4월 한 달간 장타율 0.413의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던 방망이가 조금씩 식어갔고, 마운드엔 서서히 균열이 나타났다.
불펜 등판 두 번을 거쳐 5월 16일 선발로 복귀한 윤석민은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선 감독이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용병 마무리 앤서니는 시즌 초반 보여주던 안정감을 점차 잃어갔다. 5월 초 중심 타자 김상현을 내주고 SK에서 데려온 송은범은 웬일인지 기대 이하였다.
우승 후보 KIA가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위로 5월을 마친 KIA는 전반기 종료 시점인 7월 17일 36승32패2무로 5위였고, 8월 13일 급기야 7위로 추락했다. 1위에서 7위까지 떨어지는 데 딱 100일이 걸렸다. 7월 월간 성적(5승9패·8위), 8월 월간 성적(6승16패·9위)에서 보듯 순위싸움이 본격화한 여름 들어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6월 26일 이후 8월 말까지 연패는 밥 먹듯 하면서 2연승 이상은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할 만큼 무기력했다. 6위 SK까지 가세한 4위 싸움이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되지만 KIA는 이제 8위 NC의 추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마운드의 기둥 윤석민 부진 뼈아파
KIA의 몰락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마운드 기둥 윤석민의 부진이 뼈아팠다. 시즌 첫 등판한 5월 4일 목동 넥센전에서 윤석민은 두 번째 투수로 나서 3.2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이때만 해도 어깨 부상으로 인한 지각 합류의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는 선발로 복귀한 후 오랜 시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앤서니, 박지훈, 송은범에 이어 8월 초 마무리로 보직을 바꾸기 전까지 그는 11번의 선발 등판에서 고작 1승5패 방어율 4.16에 그쳤다. 보직 이동은 팀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팀 에이스이자 한국 대표 우완인 그에게 ‘선발 1승’은 기대 밖이었고, 이는 전반적인 KIA 투수진 부진으로 이어졌다.
이효봉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은 “우승 후보 KIA의 몰락은 주전들의 잇따른 부상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윤석민의 부진”이라며 “윤석민이 선발로 10승 이상을 거두며 중심을 잡아줬다면 KIA의 시즌 흐름 전체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즌 도중 갑자기 튀어나오는 주축 선수의 부상과 이에 따른 성적 하락, 그리고 시즌 말미 부상 릴레이까지…. 최근 수년간 KIA를 힘겹게 했던 패턴이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김주찬 효과’란 말을 만들어내며 팀에 활기를 불어넣던 김주찬은 개막 후 4경기 만에 손등에 공을 맞고 두 달 가까이 자리를 비웠고, 8월 중순 허벅지 부상으로 두 번째 이탈했다.
전반기에만 9승을 올리며 에이스 구실을 했던 좌완 양현종은 옆구리 부상으로 7월 한 달간 빠져 있다 후반기 복귀 후 두 경기를 던진 뒤 다시 옆구리 근육파열 진단을 받고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4강 싸움의 마지막 희망을 살려야 했던 8월 들어서도 최희섭, 김선빈이 연이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져나갔다.
KIA는 왜 매년 부상 악령으로 고전하는 것일까. 올 시즌을 앞두고 선 감독이 가장 우려했던 점도 부상이다. KIA는 주전과 백업, 1군과 2군의 실력 차가 다른 팀에 비해 유독 크다. 주전에 대한 의존도가 특히 높다. 야수들의 경우, 대체 불가능한 주전 한둘이 빠지면 전력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되면 선수들은 직감적으로 팀에 위기가 찾아왔음을 깨닫게 되고, 나머지 선수들은 더 큰 책임감에 무리를 하다 또 다른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선수층이 두텁지 못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코칭스태프 쇄신 처방도 무위
시즌 개막 전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던 KIA의 선동열 감독.
황 수석코치의 말대로, 팀이 어려울 때 벤치 리더는 더 필요하다. 그러나 KIA에는 올 시즌 이 구실을 해줄 선수가 없었다. 투수에선 서재응, 야수에선 김상훈이 프랜차이즈 스타로 팀의 중심을 잡아야 했음에도 두 선수 모두 부진 탓에 2군을 오르내리는 등 스스로를 감당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렇다면 나이로 볼 때 이범호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지만, 그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닌 데다 지난해까지 부상으로 고전했던 터라 스스로 앞장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선 감독은 급기야 8월 17일 코칭스태프 대거 보직 이동이라는 쇄신책을 내놨다. 코칭스태프 보직 이동은 ‘안 되는 팀’에서 나오는 마지막 선택. 1군에 있던 조규제 투수코치와 김용달 타격코치, 정회열 배터리코치를 2군으로 내려 보내고, 김평호 주루코치는 아예 3군으로 이동시켰다. 그만큼 선 감독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절박했지만 여전히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선 감독은 1985년 해태(KIA 전신)에서 프로에 입문한 뒤 현재까지 소속팀이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85년부터 95년까지 해태 시절에는 늘 ‘가을야구’를 했고, 일본 생활을 거쳐 2004년 삼성 수석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초보감독으로서 2005~2006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선 감독은 고향 팀 KIA의 사령탑으로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을잔치에 나서지 못하는 ‘아픈 첫 경험’을 앞두고 있다. “올 시즌 또 다른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곱씹는 선 감독이다.